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31. 나는 아웃사이더인가?

by 노용헌

나는 어떤 사진가인가? 사물의 현상을 어떻게 기록하고, 표현하고, 전달하기 전에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나의 정체성, 나의 철학이 나의 사진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기라고 본다면, 나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려 한다.


초등학교 시절 TV에서 자주 등장했던 조경철박사나 김정흠박사 영향으로 천문학과를 꿈꿔왔던 평범한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진을 접하게 된 이후로 별 사진을 찍으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사진학과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과에 있던 나에게는 기술적인 면에서 사진, 카메라의 과학적 속성이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카메라 렌즈의 물리적인 특성과 사진인화의 화학적인 특성, 사진의 기계적인 면은 내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시작하게 된 원인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던 것, 돈을 모아 문방구에서 아카데미 과학사에서 만들어진 장남감을 사고 만들었던가. 중학교때인가 과학시간에 라디오 키트를 조립하기 위해 고데기로 납땜을 하며 신중을 기하고, 수학여행시절 집안에서 하나둘씩 가져왔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필름을 잘못 끼어 사진도 망쳤던 그때의 경험들을 당시 아이들 모두 느꼈을 법 한 경험이다. 단지 그런 경험의 연장선에서 카메라를 들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사진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이해해야할 많은 것들(기술적인 면, 미학적인 면)로 방황과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88년 사진학과에 입학할 당시에는 다큐멘터리 사진보다는 과학사진이나 특수사진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 많은 선배들을 만났었고, 자연스럽게 '사진집단 현장' 선배들이 많았었고, 학교에 들어와서 학습모임을 통해서 학생운동에 접하게 되었다.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과제보다는 학생운동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교내 중앙동아리들도 많았지만 그중 '사진집단 현장'은 사진학과 내의 과내 동아리였고, 당시 과내 동아리는 '사름'과 '현장'이 있었다. '사름'은 순수사진을 지향했지만 '현장'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지향했었다.


대학시절 '현장'에서 이론과 실천면에서 많은 고민들을 했었다. '현장'을 좋아하고 다큐멘터리 사진을 좋아했지만, 사실 사진으로 전달하고, 표현하는 면에서는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내가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학생시절 사진으로 말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내가 왜 이 사진을 찍는지? 나는 이 사진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고민해야 되고, 그것을 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수업도 사진학과 수업보다는 철학, 신문방송학, 타과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사진으로 무엇을 말할수 있는가?하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항상 고민하고 있다. 내가 사진의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록에 대한 것이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이 기록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사진기로 기록하는 자가 사진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세월호 사진들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광우병 때에도 1년간 촬영을 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매일 같이 기록하는 사진을 보고 묻는 다면, 사진가는 사진가로서 현장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을 때 항상 고민하는 것은 피사체와 사진가 사이의 거리의 문제(첫번째)이다. 기술적인 면(노출은 어떻게 하고, 렌즈는 무엇을 쓰며, 플래시는 어떻게 사용할까? 등)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사진을 촬영할 때 피사체와의 거리를 많이 생각한다. 피사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사체와의 대화가 많을 때에는 사진기를 가까이 가도 정말 서로간의 공유된 느낌을 많이 받지만, 피사체와의 거리가 멀면 그 느낌은 관조된 느낌, 방관자의 느낌, 훔쳐보는 자의 느낌, 여러 다른 느낌들이 교차할 것이다. 사진에 담는 내용은 찍는 사진가와 찍히는 대상간의 거리감은 사진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자세(태도)의 문제(두번째)이다. 사진을 하게 된 동기나 의도가 불순하다면 사진은 진정성이 없는 껍데기를 찍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애정을 갖고 촬영한다면 그 진정성은 사진에 녹아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대하는 태도, 사진을 담는 사진가의 자세는 무엇을 전달하고자 할 때 그 출발선에서 선행되어야 할 문제이다.


나는 아웃사이더인가?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경계에 서 있다. 군중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 가 있기도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이나, 옥상과 같은 곳, 유리창 너머로 구경꾼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항상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아웃사이더란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미국인을 촬영한 로버트 프랭크 또한 미국인을 개인적인 느낌으로 바라본 이방인일 뿐이다. 내집단(內集團)이 아닌 외부인으로서의 이방인은 내집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도, 또는 그래서 객관적으로 관여할 수 있고 자유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인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크라카우어는 사진과 영화를 연구하면서 영감을 얻어 저술한 ‘역사History’라는 저서에서 역사가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례로 인도되는 이방인에 비유한다. 사진가의 속성은 과연 이방인인가?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자라난 곳, 그리고 나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는 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 안에서 나는 꿈을 꾼다.


사진가는 정처 없이 떠도는 유목민인가? 필름을 장전하고 사냥꾼처럼 떠돌아다니는 사진가는 이제 디지털로, 그리고 모바일로 어디든 자유롭게 촬영을 한다. 제한된 곳, 촬영금지구간도 있지만 쉽게 촬영이 가능하다. 21세기는 새로운 유목민(遊牧民, Nomad)의 시대라고 한다. 디지털 기기(사진기)를 들고 어디든 자유롭게 유랑한다. 들뢰즈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디즘(nomadism)에는 역사가 없다.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 탈영토화의 유목민의 삶은 정체성이 없는 삶이자 역사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무언가의 행동을 한다. 마치 전철이나 버스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나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이다. 무언가를 찾고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나는 전생에 역마살이 있어 이렇게 방랑을 하는가? 사진가는 여행의 순간을 남기기 위해, 인증샷을 남기고 떠나는 유목민의 한 사람이다. 나는 과연 유목민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사진을 찍고 사진을 남기려고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온 나의 결과인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과거의 만들어진 가치관과 주변환경들은 변화해 왔다. 그리고 나또한 변화 속에 적응하기도 때론 거부하기도 하며 살아왔다. 이 모든 것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 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미래는 불확정적이지만. 하지만 나름 나의 삶에서 원칙을 세우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자주적이고, 창조적이고, 의식적으로 나의 삶을 영위(營爲)한다. 모든 역사는 나에서 시작한다. 존경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라고 정의하였다. 조선민족 중심의 역사인식이 [낭객의 신년만필]이란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입에 대한 경고로서 오늘날에도 교훈적이다.


“우리 조선은(…)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


내가 어떤 생각, 어떤 행위를 할지는 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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