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와 로버트 프랭크

소설과 영화, 그리고 사진

by 노용헌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세계 사진계에 주목을 받은 것은 1958년 '미국인들(The Americans)'라는 사진집을 출간하면서이다. 그는 1955년과 56년에 걸쳐 로버트 프랭크는 구겐하임기금을 받아 구입한 중고 폭스바겐을 몰고 미국 전역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라이카 카메라로 거의 500통에 달하는 필름을 찍었고 수천 장의 사진 가운데 83장을 뽑아 책으로 엮었다. 운집한 군중 속의 고립, 냉랭한 현관들, 밀폐된 창문들, 자동차에 대한 숭배와 고속도로, 일상생활에 대한 침울한 권태와 절망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인들(The Americans)>이라는 미국의 삶에 있는 고민과 아이러니들을 포착하였다. 구겐하임이라는 거대한 미술재단의 후원을 받았음에도 미국을 조롱하고 냉소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출판이 거부당했고, 프랑스의 델피르(Delpire) 출판사에서 1958년 출판하게 되었다. 이듬해 미국 그로브 프레스(Grove Press)에서 당대 비트세대의 선두주자였던 잭 케루악(Jack Kerouac)이 쓴 서문을 실어 출판되었지만 ‘해롭고 악랄하며 반미국적’이란 비평가들의 악평과 더불어 판매도 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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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침내 쥬크박스가 관보다 더 슬픈지 아닌지에 대해서 더 이상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항상 쥬크박스와 관을 찍은 이유이다. – 그리고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흑인 성직자와 같은 중간적인 미스터리들 – 배턴루지에 미시시피의 맑고 깨끗한 메르의 불룩함, 어떤 이유로 황혼이나 이른 새벽에 하얗게 눈 쌓인 십자가와 지류 바깥으로는 절대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런 주문 – 또는 성스러운 후광은 의자 위에 떨어지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은 어떤 카페의 의자 그림, 나는 결코 그 아름다운 시각적 완전성을 말로써 서술한 것보다 필름 속에 더 적게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머, 슬픔 그리고 모든 것과 이 사진들의 미국성! 로데오 시즌 동안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 외곽에서 키가 크고 마른 카우보이는 몸을 흔들며 걷다가 부딪친다. 슬프고, 갸냘프고, 믿기 어렵다. – 견딜 수 없는 단조로움과 무한한 공간 속으로 절망이 흐르는, 밤길의 긴 샷 – 감옥의 달 아래서 뉴멕시코 내의 미국은 믿는다 – 쿵쿵거리며 기타 치는 스타 아래 – 로스엔젤리스의 노부인은 어느 일요일, 올드 포의 차 오른쪽 앞 유리 밖으로 기울여 응시하며 뒷 자석의 어린아이에게 미국에 대해서 설명하고 비판한다. – 클리블랜드 공원 잔디 위에서 자고 있는 문신을 새긴 녀석은 너무 많은 풍선과 보트들이 있는 일요일 오후의 세상에서 죽도록 코를 골고 있다. – 겨울의 호보켄, 당신의 오른쪽 저 끝에 보이는 정치인들 중 하나가 갑자기 그의 입술을 오물거리며(아마 하품일거다) 영혼의 아무런 근심 없이 정치적인 설교를 할 때까지는 플랫폼에 가득 찬 정치인들은 모두 평범해 보인다. – 노인은 긴 지팡이를 늘어뜨리고 황급히 움직이기 전까지 망설이며 서 있다 – 미친 사람이 환상적인 베니스 캘리포니아 뒤뜰에 있는 오래된 차 시트에서 성조기를 지붕 삼아 쉬고 있다. 나는 그 안에 앉아서 대략 3만 단어를 적을 수 있다. (철도 제동수처럼 나는 오래된 스팀 포트 밖의 경사면에 걸터앉았다) (야자나무 잎 속의 토케이 포도주 병이 비었다) – 로버트는 두 명의 하이커를 태우고 밤에, 그들에게 운전을 시켰다. 사람들은 그들의 험상궂은 두 얼굴을 어둠 속에서 보았다. (“전설적인 인디안 천사들이 있다면 그들이 전설의 인디안 천사들이다”라고 알렌긴스버그가 말했다) “오, 그들이 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무언가 약탈해서 얻은 뒤로는 그 길을 화살처럼 내려가길 원한다. – 로버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 성 페케스부르크 플로리다의 분주한 번화가의 벤치에 앉아 그들의 지팡이를 비스듬히 기댄 퇴직한 괴짜들이 사회 보장과 믿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세미놀 피의 반을 가진 흑인 여자가 재즈의 뛰어난 테너 솔로 같은 사진처럼 순수한 그녀 자신만의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는 것을 생각했다.” - 잭 케루악의 <미국인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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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적(私的)인 것을 포함한 나의 삶과 애당초 공적(公的)활동인 내 사진 작업을 조화시켜 줄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렇듯 양분된 삶의 두 극이 때에 따라 어떻게 서로 보완하는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어떻게 서로 결합하고 교차하고 모순되고 상치되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내 사진들에 대해 설명을 한다거나 그것들에 어떤 독특한 의미, 역사적인 의미를 덧붙일 의도는 없다. 이런 종류의 소개는 나로서는 흥미 없는 일이다. 지난날에 찍은 사진들을 이용하여 책을 만든다는 사실에서 오는 착잡함과 난처함을 내가 수락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나는 이 옛날의 사진들을 오늘 영화 속에서 나타나 보이는 것과 똑같은 기이하고도 흐트러진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나의 일상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한 그는 1959년 이후 영화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첫번째 영화 〈내 데이지를 꺾어라 Pull My Daisy〉(1959)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케루악의 희곡에 기초한 것으로 시인 앨런 긴즈버그, 조지 코르소, 피터 올로프스키, 화가 래리 리버스 등이 출연했다. 〈내 데이지를 꺾어라〉는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그의 후기 영화들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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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가 구겐하임 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었다면, 1957년 히피와 비트 문화를 잭 케루악은 소설 <길 위에서>에서도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는 뉴욕에서 미국 서부로 향하는 여행, 덴버, 샌프라시스코, 텍사스, 멕시코시티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미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횡단 여행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은 내 평생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아주 독특하고도 묘한 순간이었다. 나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여독에 지쳐 뭔가에 홀린 듯한 상태였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싸구려 호텔 방 안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증기기관의 씩씩거리는 소리, 호텔의 오래된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위층의 발소리, 그리고 온갖 종류의 슬픈 소리들을 들으며 금이 간 높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상하게도 한 십오 초 동안 내가 누군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겁이 나진 않았다. 나는 그저 다른 누군가, 어떤 낯선 사람이 되었고, 나의 삶 전체는 뭔가에 홀린 유령의 삶이 되었다.” <잭 케루악,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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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 2차 세계대전 후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사회 언저리를 부유했던 '비트 세대'의 이야기, 그들은 <길 위에서>에서 방황을 한다. 이들에게 술과 마약, 섹스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영화는 젊은 작가 셀의 시점에서 바라본 딘과 메리루, 카밀(커스틴 던스트), 카를로(톰 스터리지), 불 리(비고 모텐슨) 등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온더로드>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방대한 이야기를 샘 라일리, 가넷 헤드룬드, 크리스틴 스튜어트, 커스틴 던스트, 톰 스터리지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 할리우드에서 '핫'한 배우들로 촬영되었다.


잭 케루악,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공허감에 빠진 젊은 작가 샐 파라다이스에 담았고, 닐 캐서디(1926~1968)를 어려서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 헤매며 길거리 생활을 하는 딕 모리아티로 만들었다. '도둑일기'를 쓴 프랑스 작가 장 주네처럼 그도 끊임없는 도둑질로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15세에 닐 캐서디와 첫 번째 결혼을 하는 루앤 헨더슨은 메리루, 두 번째 아내인 캐럴린 캐서디(1923~2013)는 카밀로 형상화된다. 유대계 동성애자 시인이었던 앨런 긴즈버그(1926~1997)는 카를로 막스, '네이키드 런치'의 작가인 윌리엄 S 버로스(1914~1997)는 불 리, 그와 사실혼 관계였던 조앤 불머(1923~1951)는 제인으로 각각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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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된 것도 극적이다. 잭 케루악은 1957년 말론 브랜도(1924~2004)에게 편지를 보내 이 소설의 영화화를 제안했다. 자신이 샐 역을, 브랜도가 닐 역을 맡았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받지 못했지만 워너브러더스가 11만 달러에 판권을 사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에이전시가 15만 달러에 파라마운트픽처스에 팔려다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요구로 결국 계약이 무산됐다.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75)가 1979년 판권을 사들여 작가들을 고용해 각색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스스로도 아들 로만 코폴라(49)와 함께 시나리오를 써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1995년에 16㎜ 흑백필름으로 찍겠다며 앨런 긴즈버그를 참석시킨 오디션을 열기도 했으나 무산됐고, 몇 년 뒤 에단 호크를 샐 역에, 브래드 피트를 딘 역에 캐스팅하려했던 프로젝트도 엎어졌다. 코폴라는 2001년 급기야 소설가 러셀 뱅크스에게 각본을 쓰게 하고, 감독 조엘 슈마허와 배우 빌리 크루덥, 콜린 패럴의 조합으로 영화화를 시도했으나 이 또한 보류됐다. 장 뤽 고다르와 구스 반 산트도 연출자로 언급됐던, 그야말로 수십 년에 걸친 고투였다.

마침내 '중앙역'(1998)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로 칸영화제 에큐메니컬상을 타는 등 로드무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 출신의 월터 살레스(58)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됐다. 2004년부터 각색 작업과 캐스팅에 들어가 8년 만에 완성하며 2012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 감독은 원작의 여러 버전을 조사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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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새로운 종류의 조형성, 즉 주제의 움직임에 의해서 만들어진 순간적인 선들의 결합이 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이 삶 그 자체가 전개되는 방식에 대한 예감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움직임에 조화를 맞추어 일한다. 그러나 움직임 속에는 움직이고 있는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한 순간이 있다. 사진은 이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의 균형을 부동의 것으로 거정 시켜 두어야 한다."

-로버트 프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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