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을 읽고
이 책은 재즈 뮤지션 레스터 영, 텔로니어스 멍크, 버드 파월, 벤 웹스터, 찰스 밍거스, 쳇 베이커, 아트 페퍼의 이야기이다. 제프 다이어는 이들의 사진 한 장면을 통해서 이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소설의 형태로 다룬다.
“유화는 브리튼 전투나 트라팔가 해전을 묘사할 때마저도 기이하게 고요함을 남긴다. 반면에 사진은 빛뿐만이 아니라 소리까지도 느끼게 한다. 좋은 사진은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들리는 것마저 갖고 있다. 사진은 훌륭할수록 그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아름다운, P14>
“그들이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나타난 것이다”
“곧 선택은 분명했다. 프레즈Pres냐 호크냐. 다시 말해 레스터 영인가 아니면 콜먼 호킨스인가. 두 가지 접근이었다. 그들의 소리는 비슷하게 들릴 리가 없었으며 모습은 더욱 달랐다. 하지만 결국 같은 길로 치닫고 있었다. 술을 퍼마시며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P26>
여러분은 사진을 볼 때, 사진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사진은 동영상이 아니어서 소리가 들리진 않는다. 흑백사진이든, 컬러사진이든 사진의 장면은 사진의 공간만을 보여주지만, 그 속의 소리들, 바람소리, 사람들의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자동차의 소음 등은 상상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렴풋이나마 그 소리들을 기억한다. 사진가는 그 소리를 듣고 사진을 담는다. 그리고 사진에 소리를 담아 전달한다.
“언제가 그가 말한 것처럼 그의 연주에는 세단계가 있었다. 첫 번째는 그가 색소폰의 고음역, 그러니까 그가 알토 테너라고 불렀던 영역에 집중했던 단계다. 그다음이 중음역 -테너 테너- 단계였고 그 후에 바리톤 테너로 내려갔다. 그는 자신이 이 점을 말했던 걸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 이 다양한 단계가 생각에 자리 잡았는지 확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에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진 시기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바리톤 단계는 그가 세상을 멀리했을 때 벌어졌다. 하지만 그게 언제 시작되었나? 서서히 그는 자신과 함께 연주한 동료들과 어울리기를 멈추고 방에서 밥을 먹었다. 함께 식사하지 않으니 그는 실질적으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며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자기 방을 나서지도 않았다. 그에게 말이 건네질 때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더 거리를 두었다. 그 고립이 환경적인 것에서부터 내면화된 무엇이 될 때까지. 하지만 일단 그렇게 되자 그는 ‘그것’이 늘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로움. 그의 연주 속에는 그것은 늘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P36>
사진에서도 그러한 단계가 있을 듯싶다. 기술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찾아서 다니던 단계가 첫 번째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그리고 힘을 뺀 자신만의 언어를 스타일화하는 단계이고, 세 번째 단계는 자신의 내면화된 슬픔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경지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를 어떻게 담을까가 문제이다. 그의 사진 속에는 그것이 늘 있었다.
“여기 또 한 장의 사진이 있어. 1965년에 찍은 거야. 그때 자넨 단 한 곡도 연주할 수 없었어. 피아노란 불가능한, 정신 이상의 악기가 되었지. 자네가 의자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테이텀Art Tatum과 같은 콧수염에, 역시 테이텀처럼 조금 퉁퉁해진 얼굴로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야. 자넨 자네 방에서 여러 날 동안 계속 이렇게 앉아 있었지. 맞아, 그랬어. 사람들이 자네를 만나러 와도 저렇게 앉아 있었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세상을 향해 상냥하게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사진이란 시간의 최면에 빠진 이미지야. 그 이미지가 최면에서 깨어나 되살아나길 기다린다는 것은 자네와 방에 앉아서 자네가 최면에서 깨어나 움직이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지. 마치 자네가 있는 곳에서 여기저기에 알아보고 자네와 함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 <그러나 아름다운, P105-106>
사진은 시간의 최면에 빠진 이미지처럼 말이 없다. 가족사진에서도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에서도 말이 없다. 나를 보며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는 기억속에 있을 뿐이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또는 얼어버린 이미지는 액체가 응고된 얼음처럼 동결[凍結]되어 있다. 나는 사진을 보면서 말을 걸지만 사진 속 인물은 항상 그대로 동결되어 있다.
“이는 늘 펌프 힌턴Fump Hinton이 1950년대 텔레비전 스튜디오 뒤에서 그와 피 위 그리고 레드를 함께 찍은 사진을 떠오르게 했다. 제기랄. 펌프는 늘 갑자기 카메라를 꺼냈다. 그는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사진을 찍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그는 누군가가 일반적으로 사진을 찍는 방식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통상적으로 많은 사진가들은 상대로부터 무엇인가를 몰래 챙겨 간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펌프가 사진을 찍는 것은 마치 한 파산한 친구가 돈을 빌림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빌려 주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이건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 주는 것이란 점을 말해야 하고 이 점이 그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 동의를 구해야만 할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P143>
사진가가 많은 시간을 할애할 때는 이유가 있다. 좀 더 자연스러운 표정을 잡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몰래 그의 이미지를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소통을 통한 감정을 교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다이어는 당당하게 돈을 빌려 달라고 말하듯이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은유하고 있다. 당당하게 돈을 빌려 달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그와 친구가 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진가는 피사체인 대상과 친구가 되지 않고서는 좋은 사진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밍거스는 블루스란 바로 그런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음악은 죽은 자들에게 연주되어 그들을 불러내고 죽은 자에게 살아 있는 자들과 닿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블루스의 일부가 정반대에 있음을 알았다. 스스로 죽기를 갈망하는 음악. 산 자가 죽은 자를 찾도록 해 주는 음악. 그 외침은 에릭을 부르는 것이자 그에게 길을 묻는 것이고 그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의 솔로는 더욱 무거워졌고 무덤을 파는 자의 삽질과 같이 스윙했으며 축축한 흙처럼 무겁게 누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P185>
“-블루스요? 이런, 엄청난 질문이네요. 블루스는 많은 걸 담고 있어요. 느낌도 있고...
-무슨 느낌요?
-음, 그건... 한 남자가 홀로 있다고 칩시다. 어디에 갇혀 있는 거죠. 어떤 문제에 엮였는데 그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죠. 그는 애인을 생각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그녀로부터 소식 하나 없었어요. 면회 날 다른 수감자들은 부인 혹은 여자 친구를 만나려고 내려갔는데 그는 감옥에 홀로 앉아 그녀를 생각하는 거죠. 그녀가 보고 싶고, 정말 떠난 것인지 알고 싶죠. 그녀를 제대로 떠올리려고 해도 잘 떠오르지도 않아요. 오랫동안 그가 본 여자들은 벽에 붙인 사진 속 모델들이 전부였거든요. 진짜 여인이라고는 전혀 없었어요. 자신을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내 인생은 흘러갔으며, 내 인생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생각해 보는 거죠. 모든 것을 바꿀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때... 그게 바로 블루스에요.
그의 말이 끝났을 때 그녀는 더욱 집중해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마치 사귀는 애인이 그의 부모님 사진을 보여 줬을 때 미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나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모든 게 상처와 고통뿐이네요.
결구 그녀가 입을 뗐다.
-그러나....
-그러나 뭐요?
-그러나.... 아름다워요. 마치 눈물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요.“ <그러나 아름다운, P247-248>
산 자가 죽은 자를 찾도록 해 주는 음악. 상처와 고통뿐이지만 블루스의 음악처럼 사진에 담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름다운... 사진. “사진은 너의 경험이고, 너의 생각이며, 너의 지혜다.”
찰리 파커는 말했다, “음악은 너의 경험이고, 너의 생각이며, 너의 지혜다. 그것과 살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너의 색소폰을 통해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P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