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영화 <일 포스티노The Postman> 1996년

by 노용헌

네루다는 마리오의 팔꿈치를 움켜쥐고 자전거를 대 놓은 외등 쪽으로 단호하게 끌고 갔다.

“생각을 하려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말인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혹시 존 웨인처럼 걷는 것과 껌 씹는 걸 동시에는 못 하는 거야? 당장 포구 해변으로 가라고. 바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메타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예를 하나 들어 주세요.”

“이 시를 한번 들어 보게.”

여기 이슬라 네그라는 바다, 온통 바다라네.

순간순간 넘실거리며

예, 아니오, 아니요라고 말하지.

예라고 말하며 푸르게, 물거품으로 말발굽을 울리고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네.

잠잠히 있을 수는 없네.

나는 바다고

계속 바위섬을 두드리네.

바위섬을 설득하지 못할지라도.

푸른 표범 일곱 마리

푸른 개 일곱 마리

푸른 바다 일곱 개가

일곱 개 혀로

바위섬을 훓고

입 맞추고, 적시고

가슴을 두드리며

바다라는 이름을 되풀이하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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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가 녹음한 일곱 가지]

1. 종루의 바람소리, 2.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 3. 바윗가의 파도소리, 4. 갈매기 울음소리, 5. 벌집, 6.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 7.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 군, 아기의 울음소리


작중의 네루다가 메타포의 뜻을 가르쳐 주기 위해 비를 하늘이 우는 것이라 비유해서 설명하고, 바다를 관찰하면 메타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마리오는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따분한 일상 혹은 평범한 삶을 시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 네루다야말로 진정한 시인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p163)


시의 메타포(metaphor)는 소리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소리를 통해서 기억은 상상되어지고 은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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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는 우표 수집광처럼 바다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녹음했다.

과부가 있는 대로 화를 냈지만 마리오는 밀물과 썰물, 바람에 상큼하게 부서지는 파도만을 쫓았다.

소니 녹음기를 줄에 매달아 게가 집게를 비벼 대고 해초들이 달라붙어 있는 바위 틈새에 밀어 넣었다.

나일론 천 조각으로 녹음기를 감싸고 아버지 배를 이용해 부서지는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3미터짜리 파도가 투우사의 단창처럼 해변에 내리꽂히기 직전의 스테레오 음향을 잡아냈다.

파도가 잔잔한 어느 날에는 갈매기가 수직으로 하강하여 정어리를 쪼는 소리와 팔딱거리는 정어리를 부리로 제어하며 물 위를 스치는 소리를 녹음하는 행운을 잡았다.

불평이나 일삼는 무정부주의적인 펠리컨 몇 마리가 해변을 따라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소리도 녹음할 수 있었다. 마치 다음 날 엄청난 정어리 떼가 해안으로 몰려올 것을 예측이라도 한 것 같았다. 어부들의 아이들은 백사장에서 모래성 쌓는데 쓰던 장난감 물통을 바다에 담그기만 해도 물고기를 잡을수 있었다. 그날 저녁 사람들은 투박한 석쇠 위에다 엄청난 정어리를 숯불로 구웠다. 고양이들은 보름달 아래서 관능적으로 몸을 부풀리며 나름대로 기회를 잡았다. 과부는 밤 10시경 대대 병력의 어부들이 사하라 사막 주둔군보다 더 갈증에 허덕거리며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정말로 별들의 움직임을 녹음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부는 그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과부는 어부들이 포두주 항아리를 비워 대기 시작한 지 세 시간 만에 그들 틈에 섞여 있던 마리오의 아버지에게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이로써 사하라 사막 주둔군이라는 이미지가 완결되었다.

“당신들, 오늘 낙타 똥보다 더 바싹 말라 있군요.”

해변의 야생 들국화 꽃받침에 앉아, 쫑긋거리는 주둥이로 태양의 오르가슴을 만끽하는 날렵한 벌 떼 소리가 마법의 녹음기에 빨려 들어갔다. 태평양 밤하늘을 수놓은 칠레의 전통적인 신년 축제 때의 불꽃놀이처럼 쏟아져 내리는 별똥별을 보고 개들이 하릴없이 짖는 소리도 녹음했다. 네루다 집의 종들을 쳐서 녹음하기도 하고 바닷바람이 자아내는 변덕스러운 오케스트라 종소리도 녹음했다. 안개 낀 망망대해를 떠도는 유령선의 비애를 연상시키듯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등대 사이렌의 신음 소리도 녹음했다. 베아트리스 배 속에서 나는 가녀린 심장 박동 소리를 귀 기울여 듣자마자 냉큼 녹음기를 들이대기도 했다. 그러나 마리오가 온갖 소리를 녹음하는 데 매달려 있는 동안, 로드리게스 동무가 미친놈처럼 가슴 털을 말아 대면서 역설하던 ‘사회적, 정치적 모순’이 풍족하지 못한 마을에 어려움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P106-108>


국내에서는 영화 <일 포스티노>로 더 유명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배경이 되는 이슬라 네그라는 산티아고에서 12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해안 마을이다. ‘검은 섬’이라는 뜻을 지닌 지명이지만 바닷가에 거무스름한 바위들이 있는 한적한 곳이라서 ‘검은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섬은 아니다. 이슬라 네그라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43년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원래 단 두 집만 있던 외딴 곳이었는데, 네루다가 바다를 벗 삼아 조용히 창작할 수 있을 곳을 찾다가 그중 한 채를 사들여 몇 년 동안 오가며 지내다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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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가 부인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마리오가 도용했다고 화를 내자 우체부 마리오는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리오는 민초들도 시를 읽고 인용할 권리를 주장했지만, 스카르메타는 이 장면을 통해 네루다의 시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칠레인 전체의 것, 즉 일상의 삶 그 자체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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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가 떠난 다음 혼자 남은 마리오는 시를 쓰게 되고 인민과 노동자들을 위해 자신이 쓴 시를 집회때 연단에 올라가 읽기로 한 날 진압이 있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걸로 영화에서는 끝을 맺고 있다. 소설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에서는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이슬라 네그라에서 병을 앓는 네루다가 감시를 당하자, 마리오는 네루다의 망명을 돕겠다는 내용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전보를 그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네루다는 곧 숨을 거두고, 마리오는 ‘불온 잡지’에 시를 투고했다는 이유로 군부의 조사를 받게 되고 실종된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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