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1965년
이 영화는 196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그리고 의상상까지 5개 부문을 석권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모리스 자르의 사운드 트랙은 최고의 인기음반이 되어 수십 만 장이 팔려나가기도 했는데, 가장 유명한 〈라라의 테마(Somewhere, My Love)〉는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곡이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강렬한 오마 샤리프의 눈빛과 두 연인이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멋진 얼음궁전이 떠오른다. 영화의 의상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또다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함께 작업한 바 있는 디자이너 필리스 달튼(Phyllis Dalton)이 담당했다. 북구의 추운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피가 다양하게 선보인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그 무렵 크리스찬 디올이나 입생 로랑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은 ‘지바고 룩’을 발표했다. 이후 모피 트리밍과 부츠가 다시 유행하면서 영화가 트렌드를 만드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닥터 지바고>는 20세기 초 러시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의사 지바고의 삶과 사랑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담았다. 소설은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지바고’라는 성에 ‘삶’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장례 행렬은 ‘산 자를 매장하다.’라는, 말 그대로 러시아의 암담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11월 초의 건조하고 추운 날이었고, 납같이 짙은 잿빛 평온한 하늘에서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성긴 눈발이, 땅에 떨어져 잿빛 솜털 먼지로 도로의 움푹한 곳들에 박히기 전에 한참 동안 망설이는 듯이 흩날렸다.
거리 아래쪽으로 군중이 흘러나왔고, 엄청난 혼란, 얼굴들. 얼굴들. 또 얼굴들. 솜 누빈 겨울 코트들과 양가죽 모자들. 노인들. 여학교 학생들과 아이들. 제복 입은 철도 노동자들. 전차 기지 노동자들과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장화에 가죽 재킷 차림의 전화국 노동자들. 김나지움 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한동안 <바르샤반카> <너희는 희생물이 되었나니> <마르세예즈>를 불렀는데, 행렬의 선두에서 뒤로 걸으며 쿠반카 쥔 손을 흔들며 지휘하던 남자가 갑자기 지휘를 중단하고 걸음을 멈춘 채 모자를 쓰더니 행렬에서 등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 나란히 나아가던 다른 시위 지도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노랫소리는 흐트러지다 이내 끊어졌다. 얼어붙은 포장도로를 걷는 수많은 군중의 발소리만 저벅저벅 들렸다. 동조하는 사람들은 시위 지도자들에게 앞쪽에 카자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누군가 이 근처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전화해 복병이 있다고 알려준 것이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지도자들이 말했다. “중요한 건 평정심이고 당황하지 않는 겁니다. 가다가 가장 먼저 보이는 공공건물을 점거하고,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뿔뿔이 분산시켜야 합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가장 좋을지 입씨름했다. 누구는 상점판매원협회로, 누구는 고등공업협회로, 또 누구는 외국특파원학교로 가자고 제안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1, P60-61>
그러나 언제나 똑같은 하나의 생명이 끊임없이 우주를 채우면서 무수한 결합과 변화 속에서 시시각각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부활할까 걱정하시지만, 당신은 이미 태어날 때 부활했고,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아픔을 느끼고, 세포조직이 자기가 붕괴되는 것을 느낄까요? 바꿔 말하면, 당신의 의식은 어떻게 될까요? 대체 의식이 뭐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자야 한다고 의식하면 - 진짜 불면증에 걸리고, 소화기능을 의식적으로 신경쓰면 - 진짜 소화기관의 신경들이 망가집니다. 의식은 - 독이라서, 자신에 대한 의식이 지나치면 독이 되고 자가중독의 원인이 되죠. 의식은 - 밖을 두드리는 빛이라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게 앞길을 밝혀주죠. 의식은 달리는 증기기관차 앞에 달린 헤드라이트 같은 겁니다. 그 빛을 안으로 향하게 되면 큰 재앙을 맞게 돼요.
그렇다면 당신의 의식은 어떻게 될까요? 당신의 것. 당신의 것이요. 당신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모든 난점이 있어요. 알아볼까요. 당신은 무엇으로 자신을 기억하나요. 신체의 어떤 부분을 의식합니까? 신장인가요. 간인가요, 아니면 혈관? 아니요. 아무리 기억해내려 하셔도 당신의 존재는 항상 외적인 것들 속에서만. 즉 활동적인 일상. 일. 가족. 다른 사람들 속에서만 발견될 거예요. 그럼 좀 더 살펴볼까요. 사람은 다른 사람들 속에 있고, 거기에 사람의 영혼이 있어요. 바로 그것이 당신이며, 그것이 당신의 의식이 호흡하고 삶의 양분으로 삼켜온 것이죠. 당신의 영혼. 당신의 불멸. 당신의 삶. 대체 그게 뭐냐고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 속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 속에 남게 된다는 겁니다. 나중에 그것이 기억이라고 불린들 당신에게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미래의 구성원 속으로 들어간 당신일 겁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1, P110-111>
그의 머릿속은 오랫동안 떠돌던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며 혼란스러웠는데, 달리 말하면 그것은 두 개의 원. 엉켰다 풀렸다 하며 뇌리를 떠나지 않는 두 개의 실타래였다.
하나의 원은 토니와 집과 예전의 조화롭던 생활이었는데, 그 속에서는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모든 일이 시정(詩情)에 지배되어 성실하고 순수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닥터는 그 생활이 걱정되지만, 그런 것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길 바라면서, 이 년 넘게 떨어져 있었던 그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애타는 마음으로 야간급행열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혁명에 대한 충성과 열광도 이 원 속에 있었다. 중산 계급이 받아들인 의미에서의 혁명이었고, 1905년. 블로크를 숭배하던 아직 학교를 다니던 젊은이들이 부여한 의미에서의 혁명이었다.
익숙하고 친근한 이 원 속에는 새로운 것과 그 약속들, 징조들이 있었고, 그것은 전쟁 전인 1912년과 1914년 사이의 지평선상에 나타났던 러시아의 사상, 러시아의 예술, 러시아의 운명, 러시아 전체와 지바고 그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것이었다.
전쟁 후에는, 그것을 더욱 혁신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오랜 부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그 조류로 돌아가려 했다.
새로운 것은 나머지 또 하나의 원에 속한 주제였는데, 완전히 다르고 완전히 새로웠다! 그것은 구세대가 준비한 것도 아니고, 익숙하지도 않고, 자기의 것도 아닌 것으로, 의지와 상관없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명령한 충격과도 같은 갑작스러운 새로움이었다.
그런 새로운 것은 전쟁이었고, 그것의 유혈과 공포, 집 잃음과 황폐화였다. 이 새로움은 전쟁의 시련. 전쟁이 가르쳐준 생활의 지혜였다. 이 새로움은 전쟁이 데리고 간 변방의 땅이고, 전쟁이 만나게 해준 사람들이었다. 이 새로움에는 혁명도 있었는데, 그것은 1905년 대학생들이 이끈 이상화된 혁명이 아니라 현재의, 전쟁에서 태어나 피투성이가 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병사의 혁명이며, 이 자연력의 전문가들인 볼셰비키가 주도한 혁명이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1, P250-252>
삼 년 동안의 변화. 불확실함. 이동. 전쟁. 혁명. 충격. 포격. 파멸의 광경. 죽음의 광경. 폭파된 다리. 파괴. 화재 -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알맹이를 잃어버린 거대하고 텅 빈 공간으로 변했다. 기나긴 중단 후에 일어난 최초의 진정한 사건은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 온전히 살아남아 돌멩이 하나까지 그리운 집을 향해 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고, 그것이 바로 경험이며, 그것이 바로 모험하는 자들이 좇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술이 추구하는 것이었다 - 혈육에게 돌아가는 것, 자기 자신으로의 복귀, 존재의 회복.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1, P257>
나는 예술은 수많은 개념과 파생되는 현상을 포괄하는 영역 또는 범주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반대로 더 집중적이고 제한적인 명칭.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한 요소의 표지이자, 그 속에 적용된 힘이나 거기서 탐구된 진리의 명칭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그리고 예술은 형식의 대상이나 그 일면이 아니라, 오히려 내용의 숨겨진 은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햇빛처럼 자명해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그런 개념을 어떻게 표현하고 정의해야 할까?
작품은 테마, 상황, 주제, 주인공 등 많은 것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속에 담긴 예술의 현존으로 말한다. <죄와 벌>에 담긴 예술의 현존이 라스콜니코프의 범죄보다 한층 놀라운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윈시시대,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우리의 예술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변하지 않고 유일무이하게 예술로 남은 것이다. 그것은 삶과 생명에 대한 어떤 생각이고 주장이며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개의 낱말로 분해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진술이며, 그 힘의 입자가 더욱 복잡한 혼합물의 구성요소로 들어갈 때 예술의 혼합은 다른 모든 것의 의미를 압도해 그 작품의 본질과 정신과 토대가 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2, P54-55>
“하지만 첫째로, 10월 혁명 이후에 등장한 전체의 개선이라는 이념은 나를 불타오르게 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실현까지는 아직 먼데도 아직도 그것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만 하며 피바다가 되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셋째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인데, 삶의 개조니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자제심을 잃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삶의 개조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인생 경험은 많이 쌓았을지 모르지만 삶이 무엇인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 그 정신, 그 영혼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이라는 것은 아직 자기들의 손이 닿아 좋아지지 않는 것. 그래서 이제부터 그들이 가공해야 할 원재료 덩어리일 뿐입니다. 하지만 삶은 지금까지 원재료였거나 물질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삶이 그렇단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영원히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것. 삶 그 자체는 당신과 나의 어리석은 이론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2, P143>
격동기의 러시아에서 유리와 라라는 각각 가정이 있는 유부남 유부녀이다. 이 둘의 상황은 전쟁으로 의사와 간호사, 백군과 적군의 소용돌이 속에서 빨치산 부대에 끌려가고 그곳에 도망쳐 나와 둘의 사랑이 전개된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사랑을 하게 된다.
“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나같이 부족한 여자가 당신같이 똑똑한 사람에게 지금 러시아의 삶에, 인간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리고 왜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지, 그건 당신이나 나의 가정도 마찬가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그래요. 그건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성격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같아요. 모든 창조된 것과 완성된 것, 일상의 모든 습관과 인간의 보금자리, 모든 질서, 그 모든 것이 사회 전체의 대변혁과 개편으로 무너져버렸어요. 모든 일상이 근본에서부터 뒤집히고 파괴됐어요. 남은 건 오직 한 가지, 비일상적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힘, 벌거벗은 채 입을 것마저 빼앗긴 인간의 영혼뿐이에요. 그러나 그것만은 전혀 변함없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 어느 시대에서나 추워서 얼어붙은 채 덜덜 떨고 있었고, 바로 옆에 있는 역시나 벌거벗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손을 뻗고 있었으니까. 당신과 나는 최초의 인간, 몸에 걸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아담과 이브 같아요. 지금 우리도 이 세계의 종말 속에서 몸에 걸칠 것도 몸을 누일 집도 없이 떨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과 나는 수천 년에 걸쳐 이 세상에서, 그 세월과 우리 사이에서 창조되어온 끝없이 위대한 것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고. 우리는 이 사라진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 숨쉬고, 사랑하고, 울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로에게 매달려 있어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2, P244>
“아이들이란 거리낄 것이 없고 정직해서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게 두려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배반하고, 싫으면서도 찬양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 동의해요.” (p293)
첫 번째 죽음은 유리 지바고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머니로 상징되는 러시아의 구체제는 종말을 예고한 것이다.
두 번째 죽음은 파샤의 자살이다. 파샤는 스트렐리니코프라는 가명을 쓰며 혁명가의 삶을 살지만, 소비에트 당국으로부터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도피하는 삶을 살다가 라라를 다시 찾아온 그는 코마로프스키가 라라를 차지하고자 거짓말을 하고 극동을 떠나고 파샤는 결국 괴로움과 피로감으로 자살을 택한다.
세 번째 죽음은 유리 지바고의 죽음이다. 지바고는 시간이 흘러 모스크바로 돌아와 마리나라는 여자를 만나 아이까지 낳고 살면서 의사 생활과 저술 활동을 하지만, 극심한 고생으로 인해 건강은 악화되고, 결국 어느 날 전차에서 쓰러져 죽고 만다. 그의 장례식에는 극동에서 돌아온 라라가 참석하는데 그 이후에 그녀의 소식이 끊기는 것으로 줄거리는 마무리 된다.
그는 역사, 역사의 과정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자신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파악하고 있다고 다시금 생각했고, 그에게는 그것이 식물계와 비슷한 것으로 그려졌다. 눈 덮인 겨울에 앙상한 활엽수림의 나뭇가지들은 어느 노인의 사마귀에 난 털처럼 가냘프고 초라하다. 그러나 봄이 되면 불과 며칠 사이에 숲이 달라져 구름에 닿을 듯 자라고 잎이 무성해진 숲속에서 우리는 숨을 수도,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동물의 생장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것은 동물이 식물만큼 빨리 자라지 않기 때문이지만, 식물의 경우에도 우리가 식물이 자라는 순간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숲은 움직이지 않으며, 우리가 그 변화의 순간을 포착할 수도 없다. 숲은 언제 봐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원히 성장하고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변화를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사회의 삶과 역사가 우리의 눈에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그러한 까닭에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2, 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