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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24. 2022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영화 <제르미날Germinal> 1993

<제르미날Germinal>은 1885년 출판된 에밀 졸라의 소설이다. 루공 마카르 총서의 13번 도서. 〈루공 마카르〉 총서 제13권. 졸라는 전부터 정치적 민중봉기의 모습을 쓰고 싶었고 20세기 최대의 문제가 될 노사(勞使)분쟁을 쓰려고 했다. 그리하여 1884년 북프랑스 앙장 탄광의 스트라이크를 직접 돌아본 뒤에 이 대작을 썼다. 줄거리는 주인공 에티엔 랑티에는 실업(失業)으로 북프랑스의 몽수 탄광에 가서 갱부(坑夫)로 취직을 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지도자가 되어 파업을 일으켜 군대의 처참한 탄압을 받는다. 그때 러시아인으로 망명한 아나키스트 수바린이 갱(坑)내의 수도(水道)를 파괴하여 갱(坑)은 순식간에 수몰(水沒)한다. 에티엔은 살아났지만 애인 카트린은 그 속에서 죽는다. 영화 제르미날은 19세기 탄광촌에서 착취당하던 광부들의 노동쟁의를 서사적으로 그린 드라마다. <마농의 샘>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끌로드 베리 감독이 연출했다. 노동자의 파업에 관한 영화로는 1990년대 장산곶매가 제작한 <파업전야>도 떠오른다. <파업전야>(1990)는 <오! 꿈의 나라>(1989)에 이은 장산곶매의 두 번째 16mm 필름 장편 독립영화다.    

 

갱은 한입에 이삼십명의 사람들을 집어삼킨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단번에 꿀꺽 삼키는지 목으로 넘어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채탄부들은 새벽 네시부터 갱으로 내려갔다. 허름한 광부 탈의실에서 나와 손에 램프를 하나씩 든 채 맨발로 모여든 그들은 필요한 인원이 채워질 때까지 소그룹을 지어 기다렸다. 야행성동물이 소리도 없이 슬그머니 솟구쳐오르듯 캄캄한 갱도에서 강철 케이지가 올라와 킵스에 고정되면서 딸깍하고 멈춰 섰다. 네 칸짜리 케이지의 각 칸마다 석탄이 가득 찬 탄차가 두 대씩 실려 있었다. 하역부들은 각 칸에서 탄차들을 끌어 낸 다음, 빈 탄차나 미리 갱목(坑木)을 실어놓은 탄차를 실었다. 채탄부들은 다섯 명씩 짝을 지어 빈 탄차에 올라탔다. 케이지가 통째로 비었을 경우에는 한 번에 사십 명까지 탔다. 소의 숨죽인 울음소리처럼 웅얼거리는 지시 사항이 왁성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사이 신호기 줄을 네 번 잡아당겨 인간 가축이 아래로 내려갈 것임을 알렸다. ‘고깃덩이’를 실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케이지는 살짝 덜컹거리더니 아래로 내던진 돌멩이처럼 쏜살같이 조용히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세차게 풀리면서 요동치는 케이블을 뒤로한 채.

“깊은가요?” 에티엔은 그의 옆에서 졸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한 채 탄부에게 물었다.

“깊이가 오백오십사 미터나 되는걸요.” 남자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적치장이 네 군데 있어요. 첫 번째 적치장은 지하 삼백이십 미터 지점에 있고요.” 

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올라오는 케이블을 눈으로 쫓았다. 에티엔이 다시 물었다. 

“그러다 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아, 그거 말이오? 그러다 줄이 끊어지면.....”

채탄부는 몸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그의 차례가 되었다. 케이지는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움직임으로 다시 위로 솟구쳤다. 채탄부는 동료들 틈에 쭈그리고 앉았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 케이지는 사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위로 올라와 또다른 무리들을 실어 날랐다. 삼십여 분간, 갱도는 그런 식으로 채탄부들이 내리는 적치장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왕성한 식욕으로 인간 가축들을 집어삼켰다. 결코 달래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 모두를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창자를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갱도는 인간 가축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졌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으며, 케이지는 여전히 탐욕스러운 침묵 속에서 허공을 뚫고 또다시 위로 솟구쳤다.

<에밀 졸라, 제르미날1, P46-48>     


에티엔은 열을 올리며 협회를 두둔했다. 반골 성향이 있는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본가에 맞서는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무지에서 비롯된 환상이 그를 부추겼던 것이다. 그는 런던에서 막 창립된 그 유명한 국제노동자협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지금 드디어 정의를 실현하게 될 멋진 계획을 세우고, 그를 위한 선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이제 국경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다 함께 들고일어나 한데 모여 노동자들이 마음놓고 빵을 먹을 수 있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조직인가. 맨 아래에는 코뮌을 대표하는 지부가 있다. 그 위에는 같은 주의 지부들을 모은 연맹이 있었고, 또 그 위에는 국가, 그리고 맨 위쪽에는 중앙평의회가 주관하는 인류가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각 나라는 그곳을 관할하는 사무국장을 두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반년도 지나기 전에 온 세계를 정복하고, 고용주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들에게 자신들의 법칙을 따르라고 강요하게 될 것이다.

“웃기는 소리 말라고 해!” 수바린은 거듭 외쳤다. “당신네들의 카를 마르크스는 아직도 그런 것들이 자연적으로 이뤄질 거라고 주장하고 있지. 정치도 음모도 필요 없다고 하면서. 안 그런가? 모든 걸 백주에 드러내놓고, 오직 임금 인상만을 주장하면서.... 그런 게 그들이 말하는 단계적인 혁명이라면, 지나가는 개가 다 웃겠군! 전 세계 도시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다 죽여 없애고, 모든 걸 깡그리 밀어버려서 이 썩은 세상에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면, 그때는 어쩌면 지금보다 좀더 나은 세상이 다시 생겨날지도 모르지.”

에티엔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동료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진 못했다. 수바린이 말하는 파괴 운운하는 이론은 그에게 허세처럼 보였다. 에티엔보다는 좀더 실리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의 양식을 지닌 라스뇌르는 언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무엇이든 분명히 해두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래서, 어쩌려고? 자네가 몽수에 지부라도 만들 생각인가?”

그것은 북부연맹의 연맹장인 플뤼샤르가 바라는 바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광부들이 언젠가 파업을 하게 되면 협회에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무렵 에티엔은 파업이 임박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갱목 건은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키고 말 터였다. 탄광 회사에서 한 번만 더 지나친 요구를 하면 그때는 탄광 전체가 들고일어날 것이었다.

“문제는 기금이야.” 라스뇌르는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일반 기금 마련을 위한 회비로 일 년에 오십 상팀. 지부에 이 프랑씩 내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납부를 거부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게다가 이곳에서는 공제조합 기금까지 거둬야 할 테니 더욱 문제죠.” 에티엔이 덧붙여 말했다. “만약의 경우에 그걸 투쟁 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말이죠..... 어쨌거나 그런 것들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건 확실해요. 나는 다른 사람들만 준비돼 있다면 언제라도 좋습니다.”

<에밀 졸라, 제르미날1, P223-225>    

 

89년 이후로 탐욕스럽게 살을 찌운 것은 부르주아들뿐이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백 년 전부터 부와 삶의 안락함이 엄청나게 중대했지만, 그 누가 노동자들이 그들의 합당한 몫을 분배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선언했을 뿐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p226)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요!” 청년이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선한 신과 신의 천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 스스로가 이 땅에서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거죠?”

그는 열정적인 목소리로 끝없이 이야기했다. 그러자 닫혀 있던 미래의 문이 갑자기 활짝 열리면서, 한줄기 빛이 가난한 이들의 우울한 삶을 환히 비추었다. 끝없이 대물림되는 가난, 짐승처럼 억척스레 해내야 하는 일, 가죽을 벗기고 끝내 멱을 따서 죽이는 가축처럼 살아가는 삶. 이 모든 불행이 환한 햇살에 씻겨나가듯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마법에 나오는 것처럼 눈부신 빛 속에 하늘에서 정의가 도래했다. 선한 신은 죽고 없으므로. 이제 정의가 신을 대신하여 이 땅에 평등과 박애를 실천하면서 인간의 행복을 만들어갈 것이었다. 새로운 사회는 마치 꿈속에서처럼 단 하루 만에 화려한 신기루와도 같은 거대한 도시를 자라나게 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시민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살아가며 공동의 행복에 한몫을 했다. 낡은 세상은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죄과를 씻어낸 젊은 인류는 오직 노동자들로만 구성될 터였다. 그들의 지켜야 할 좌우명은 ‘자신의 공로만큼 대우받고, 자신이 이룬 성과만큼 그 공로를 인정받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꿈은 계속 커지고 미화되면서, 불가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더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에밀 졸라, 제르미날1, P264>     

지금도 여전히 부르주아들을 떨게 만드는 프로파간다로 전 세계 노동자들을 흥분시켰던 국제노동자협회는 자만심과 지나친 야심에서 비롯된 내부 갈등에 잠식당하면서 날마다 조금씩 와해되어갔다. 무정부주의자가 주도권을 잡은 뒤로 초기의 점진주의자들을 몰아내면서 모든 게 흔들렸고, 초기 목표였던 임금제개혁은 당파 간 갈등 속에 묻혀버렸으며, 지식인들은 엄격한 규율을 증오하며 조직에서 이탈했다. 그리하여 썩어빠진 낡은 사회를 단숨에 쓸어버릴 듯 위협적이었던 집단적 움직임의 궁극적인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플뤼샤르는 몹시 절망하고 있지.” 라스뇌르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노동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네. 그러면서도 연설을 멈추지 않고 파리에까지 가서 지지를 호소하고 싶어하지. 그리고 우리의 파업은 실패라고 내게 세 번씩이나 거듭 말했어.”

에티엔은 눈을 내리깐 채 그의 말을 중단시키지 않고 끝까지 모두 들었다. 전날 그는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그들에게서 자신을 향한 원망과 의혹의 숨결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궁극적인 패배를 예고하면서, 그의 인기가 사그라졌음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였다. 에티엔은 라스뇌르가 얘기하는 내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군중이 실망과 환멸을 느끼게 되는 날에는 그에게 그 앙갚음을 하게 될 거라고 예고했던 남자 앞에서 자신의 절망감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요, 어쩌면 파업은 실패한 건지도 모르죠. 그건 나도 플뤼샤르 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에티엔이 자기 생각을 얘기 했다. “하지만 실패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우린 이 파업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던 겁니다. 결코 회사측과 끝장을 보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다만 모두들 차츰 거기에 도취되면서 희망을 품게 되었고, 그게 잘못될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재앙이 갑자기 닥친 것처럼 탄식하면서 서로 다투게 된 거란 말입니다.”

<에밀 졸라, 제르미날2, P173-174>     


“우릴 죽여봐. 어디 한번 죽여보라고! 우린 우리 권리를 되찾으려는 것뿐이야.”

르바크는 칼에 찔릴 것을 무릅쓰고 두 손으로 총검 세 자루를 한꺼번에 쥐고 흔들면서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빼앗았다. 그러는 동안 옆으로 비켜나 있던 부틀루는 동료를 따라온 것을 후회하며 그가 하는 짓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자, 어서 찔러보시지,” 마외도 거듭 외쳤다. “용기가 있으면 어디 한번 찔러보라니까!”

그러고는 윗도리를 열어젖히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 석탄 자국으로 얼룩진 털복숭이 가슴팍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대담하고 용맹하게 총검 끝에 가슴을 갖다대며 그들을 주춤주춤 뒷걸음질치게 했다. 그러다 검 하나가 자신의 한쪽 가슴을 찌르자 길길이 날뛰면서, 검을 더 깊이 찔러넣어 갈비뼈를 부러뜨려보라며 가슴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겁쟁이들, 찌를 용기도 없는 주제에..... 내 뒤에는 만 명의 동료들이 버티고 있다고. 그러니까 우릴 얼마든지 죽여보시지, 그러려면 만 명을 모두 죽여야 할 거야.” (p215)    

 

대위는 세 번씩이나 병사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릴 뻔했다. 두려움이 목을 죄어오면서, 영원처럼 느껴지는 몇 초 동안 그는 개인적인 생각과 의무, 한 인간으로서의 믿음과 군인으로서의 믿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사이 벽돌은 우박처럼 그들의 머리 위로 점점 더 세차게 쏟아졌고, 마침내 그는 입을 열어 “발사!”를 외치려고 했다. 그 순간, 총이 마치 저절로 발사된 것처럼 총성이 커다랗게 울려퍼졌다. 처음에는 세 발, 그다음에는 다섯 발, 그러더니 일제사격이 가해졌고, 한 참 뒤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마지막 한 발이 더 발사되었다.

그러자 모두가 경악했다. 그들이 정말로 총을 쏜 것이다! 여전히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군중은 입을 벌린 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다. 이내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발포 중지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모두가 총 맞은 짐승들처럼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진흙탕을 헤치며 사방으로 정신없이 달아났다. (p224-225)      


“뭐든지 잘될 거라고, 조금만 애쓰면 다 잘될 거라며 허황된 말로 우리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약은 작자들이 어디든 있기 마련인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흥분하면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로 인해 고통받다못해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을 바라게 되지. 나 또한 어리석게도 허튼 꿈을 꿨던 거야. 온 세상 사람들과 서로 도와가며 잘살수 있는 삶을 꿈꿨지. 그래! 잠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던 거야. 그러다 된통 당하고는 다시 똥통 속으로 떨어진 거지..... 그러니까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어. 저 위에는 우리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도 없었던 거야.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여전히 진저리 나는 곤궁한 삶이었어! 그래! 우린 주체하지 못할 넘치는 가난으로도 모자라 총알 세례까지 받은 거라고!” (p240-241)    

 

기계공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청산유수로 말하는 달변가들과, 그럴듯한 말 몇 마디로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가 되는 사람들처럼 정치판에 뛰어드는 경박한 자들을 경멸했다.

에티엔은 이제 다윈의 진화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5수짜리 책에서 통속화된 요약본을 부분적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내용을 생존을 위한 투쟁을 뒷받침하는 혁명적인 이론으로 삼았다. 그는 살찐 사람들을 잡아먹는 야윈 사람들, 나약한 부르주아들을 집어삼키는 강력한 민중에 관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수바린은 벌컥 화를 내면서, 과학적인 불균등을 주창하는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인 사회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을 공격했다. 다윈이 주장하는 그 유명한 자연선택설은 귀족적인 철학가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티엔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서 계속 따지고 들었다. 그러고는 하나의 가설을 가지고 자신의 의문점을 설명했다. 가령 낡은 사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쓸어버렸다고 치자. 그런 후에 새로운 세상 역시 서서히 똑같은 불공정성으로 썩어들어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약한 자와 강한 자, 어디서나 자신의 배를 불릴 줄 하는 꾀바르고 영리한 자와 또다시 그런 이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러자 기계공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비참한 삶의 가능성 앞에서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인간과 함께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면 그 인간은 사라져야만 한다. 부패한 사회가 남아 있는 한 살육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사라져버릴 때까지.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에밀 졸라, 제르미날2, P253-254>     


“나는 오랫동안 여러 가지 제목을 두고 망설인 끝에 최종적으로 ‘제르미날’이라는 제목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새로운 인간의 자라남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일하면서 발버둥치는 노동자들의 노력을(무의식적으로라도) 담을 수 있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우연처럼 제르미날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혁명의 4월, 4월의 봄날에 낡은 사회가 해체되어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나는 차츰 그 제목에 익숙해졌고, 다른 어떤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모호하게 들릴 수 있다 해도, 내게는 마치 작품 전체를 환히 비추는 햇살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르미날’은 말 그 자체로 역사적이고 혁명적인 울림을 담고 있다. 제르미날은 공화력의 일곱 번째 달(3월21(20)일~4월19(20)일)로서 ‘싹트는germer 달’을 의미하며, 굶주린 민중이 국민공회에 빵을 요구한 것도 혁명력 3년, 제르미날의 열두번째 날(1795년 4월1일)이었다. 배고픔과 반란을 상징하는 ‘제르미날’은 소설 <제르미날>을 혁명의 위대한 신화가 되게 했다. 또한 ‘제르미날’이라는 말은 그것이 포함한 암시적인 의미 외에도 단어 구성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Germinal'이라는 단어에는 싹이 튼다는 의미의 ’germer', 탄광을 뜻하는 ‘mine', 그리고 공화력을 의미하는 ’al(almanach)'이 포함되어 있다. ‘제르미날’이 의미하듯, 소설 첫머리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매섭게 불어오는 3월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르 보뢰 탄광에 도착한 에티엔은 소설의 마지막에서 4월의 찬란한 태양이 대지를 따사롭게 비추는 가운데 그곳을 떠난다. 봄날의 따뜻한 기운이 초목을 땅위로 솟아나게 하듯, 혁명은 노동자들에게 어두운 땅속을 벗어나 이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던 것이다. (p387-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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