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예술가는 우리에게 뭔가 이해할 거리를 제시하는가
프랑스의 대입시험이자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의 문제중의 하나이다. 2015년 계열별로 주어진 3개의 문제 중 1개를 택해 작성해야 하는데 이중 2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뭔가 이해할 거리를 제시하는가?’에서 예술가에 관한 나의 생각과 ‘예술작품은 언제나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서 예술작품에 관한 나의 생각을 논하고자 한다.
<자연계>
1. 예술작품은 언제나 의미를 갖고 있는가?
2. 정치는 진실에 대한 요구에서 비껴나 있는가?
3. 키케로의 텍스트 발췌본 읽고 의견 적기
<사회경제계>
1. 개인의 의식은 그 개인이 속한 사회를 반영하는가?
2. 예술가는 우리에게 뭔가 이해할 거리를 제시하는가?
3. 스피노자의 텍스트 발췌본 읽고 의견 적기
<인문계>
1.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존중은 도덕적 의무인가?
2.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온 나의 결과물인가?
3. 알렉시 드 토크빌의 텍스트 발췌본 읽고 의견 적기
예술가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어떻게 예술가가 되는 것일까?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과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예술가의 인격과 생애, 심리 구조는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창조성을 지닌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창조성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명확하고 확실한 대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19세기의 중요한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아돌프 멘첼(Adolph Menzel)은 1834년 열여덟 살에 괴테가 1773년에 쓴 시 <예술가의 인생 역정>에 넣을 연작을 동판화로 제작했다. <예술가의 인생 역정> 작품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예술가의 모습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재능, 재능을 방해하는 주변 환경, 시민적 관습에서 벗어난 삶, 가난,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 소명과 밥벌이 사이의 간극, 비극적인 요절, 죽은 뒤에 비로소 얻게 되는 명성 등이다.1) 이처럼 우리는 예술가에 대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의 밥벌이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작품만을 고집스럽게 추구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자신이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해서 비평가 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어떻게 홍보하고 있는 것일까? 예술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message)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
1) 예술가란 무엇인가 P13
베네치아의 작가이자 예술비평가였던 피에트로 아레티노(Pietro Aretino)는, 진정한 예술가는 타고난 ‘창조적 정신(genius)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했다.2) 이러한 창조적 정신을 가진 예술가는 예술적 영감에 의해서 자신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예술적 영감에 관한 생각은 고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 뮤즈가 예술적 영감을 준다는 신화적 사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뮤즈는 아폴론을 수행하는 여신들이다. 자신을 상징하는 표시로 칠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아폴론은 무엇보다도 음악과 다른 예술의 신으로 숭배받는다. 헤시오도스가 아홉 명의 뮤즈에 대하여 언급한 이후 그들은 하나의 규범이 되었는데, 대개 그 뮤즈는 특정한 예술을 책임지는 존재로 여겨졌다. 음유시인의 수호신이었던 뮤즈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말은 영감의 결과물로 나타난 예술이 정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암시이다.3)
2) 예술가란 무엇인가 P31
3) 예술가란 무엇인가 P38
16세기 예술가의 특성과 예술창작이 지닌 신적인 특성은 예술가를 창조자로서 부여하였다.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의 모상을 하느님의 영감을 예술작품에 반영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과의 소통을 하는 예술가의 행위(영감)는 과연 창조자인가. 예술가들은 과연 창조적 정신과 예술적 영감을 가진 천재들인가. 예술적 천재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 후천적으로 교육을 받아 만들어질수 있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재능은 타고나는 것인가. 노력하면 가능한 것인가라고 묻게 되며, 우리는 이러한 예술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르누아르(P. A. Renoir)가 "화가는 박물관에서 배운다"라고 말했듯이 예술적 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어느 정도의 노력을 통해서도 창조성과 독창성을 갖게 된다. 에디슨(T. Edison)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고, 시인 발레리는 "영감의 일차적인 재료들은 참을성 있는 노력에 의해서 완성된 작품인 '미래의 잔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술가의 천재성은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모차르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데 반해 살리에르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재능을 살리지 못했다.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D. Diderot)는 "천재란 노력의 산물과는 구분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처럼 예술가의 천재성은 선천적 재능으로 설명되어진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예술은 상품이 아니며 예술적 활동은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고 했다. 예술가는 단순하게 합목적적이고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보다 더 높은 것, 즉 아름다움과 진실을 통찰하기 위해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4)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한다.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무한 자유정신 때문에 그들은 다수의 무관심 속에서 고독한 삶을 살기도 한다. 예술가는 사회규범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사회적 무관심과 물질적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한다. 예술가는 상품화되어 가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작품을 만들며 자신만의 예술적 활동을 펼칠 수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은 손재주’, ‘천재성이 없는 그림’, ‘철저히 계산된 작품’,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모습‘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과 예술관을 가진 예술가들은 정치, 사회적 환경속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4) 예술가란 무엇인가 P71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예술가는 정신적인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한다. 칸딘스키는 1912년에 출간한 저서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는 무엇인가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예술가의 임무라는 것은 형식을 지배하는데 있지 않고, 내용에 적합한 형식을 만드는데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형태의 재현을 넘어서 정신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라며 칸딘스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정신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 메시지는 감상자로 하여금 큰 울림으로 반향되어진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화가는 눈앞에 보이는 것만 그려서는 안 되고, 자신의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그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일도 그만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더 많은 것을 보도록 요구한다.”5)
5) 예술가란 무엇인가 P80
1855년 짧은 <리얼리즘 선언문>을 쓴 쿠르베는 낭만주의든 고전주의든 이상화하는 모든 회화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리얼리즘을 정의했고, 예술가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의 내린다. 예술지향주의든, 아니든 간에 그는 반시민적 태도를 보일지는 자신의 계급적 존재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1929년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2차 선언문>을 발표이후, 초현실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공산주의에 ‘혁명적 봉사’를 하였지만 그들은 보수적인 예술관과 같은 반이데올로기에 비판하면서 갈등을 일으켰다. 아나키스트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어떠한 정치적 해방에서 벗어나는 것을 꿈꿔왔던 사람들처럼 예술가도 정치적인 것과 미적인 것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자유로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는 종교적 구원자인지, 정치적 혁명가인지, 그러한 긴장 사이에서 존재한다.
예술가는 사회의 주변인이면서, 유목민이다. 그들의 모습은 ‘괴짜’로 비춰진다. 천재와 광기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위대한 예술가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겪는다는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생각의 기원은 고대 플라톤적 열광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6)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주요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는 “천재성과 광기는 한 가지 측면에서 서로 맞닿아 있으며,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동시대인들과는 다른 별종으로 인식된다. 그들은 괴팍하며,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광기의 소유자로 인식된다. “광기가 조금도 없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없다”는 라틴어 격언은 광기와 천재성의 상호관계를 말해준다. 화가 고흐는 광기에 시달려 자신의 귀를 잘랐고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 절망, 특이함, 가난, 광기 등 이러한 요소들은 천재는 불운한 삶을 살게 되며, 또 그렇게 드라마틱해야만 천재적인 예술가로 말하게 된다. 그러나 과연 예술가는 고독해야 하며, 불운해야 하며, 미치광이와 같아야만 하는 것일까?
6) 예술가란 무엇인가 P171
니체는 <음악정신에서 생겨난 비극의 원천>에서 창조적인 것을 두 가지 힘의 산물로 파악했고, 그 두 가지는 ‘디오니소스적인 힘’과 ‘아폴론적인 힘’으로 말했다. 디오니소스적인 감성과 아폴론적인 합리적 이성사이에 예술가는 그 경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 둘 사이의 합일이나 조화는 사실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또한 감성적인 열정과 합리적인 이성은 완전히 다른 성격일수도 있다. 지네트 파리스는 “과도한 기술화와 지나친 합리주의는 과도하게 저항적인 록의 문화만큼이나 광적”이라며 “우리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디오니소스적인 성격과 아폴론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한, 우리 모두는 예술가이다.
영국의 미술사학자이자 작가인 허버트 리드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방식대로 예술가이다. 창조적으로 활동하고, 유희를 하거나 일을 할 경우에.... 그는 자신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생활이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할지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말했다.7) 우리 모두는 예술가이지만,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예술적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러한 표현을 담은 예술작품이 관객(또는 감상자,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할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작가의 의도)는 관객에게 이해할 거리를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 말경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1968)과 미셸 푸코의 <저자란 무엇인가?>(1969)가 출간되었다. 저자(예술가)는 이제 주체로서의 역할보다는 수용자로서의 작품의 수용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가다머에 의하면 “문학작품은 완성된 미적 대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에 의해 인지되어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작가(예술가)와 독자(관객) 사이에 작품(예술작품)을 통해 이해되고, 소통되어진다. 작가는 생산자로서, 독자는 수용자(소비자)로서의 관계에서 작품은 그 소통의 연결을 해주는 매개가 된다. 현대는 이러한 생산자와 수용자의 해체에 의한 경계가 모호해졌다. 예술가에 대한 정의는 변화해왔고, 예술작품을 받아들이는 개념 또한 변화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현대예술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열린 예술작품(Opera apertas)’을 제시한다. 예술작품은 작가(예술가)가 가지는 이념, 정서, 성향 등의 모든 생각들의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이 메시지이며 예술작품의 ‘형식’과 수용자(해석자)의 ‘열림’ 사이의 미적가치는 판단될 것이다. 예술은 단지 인간의 미적관심과 충족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보여줄 수 있으며, 아는 만큼 이해할 것이다.
7) 예술가란 무엇인가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