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94
사진은 영어로 Photography라고 하고, 그 어원은 Photo(光)+graph(畵)이다. 우리말로 말하자면 빛그림인 셈인데, 사진[寫眞]이란 용어를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던 개화 문물로 우리가 사용하는 사진의 한자의 뜻은 진실을 묘사한다는 뜻이다. 실물과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사(寫)적인 측면과 내면의 정신도 나타내야 한다는 진(眞)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우리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혼이 빠져나간다고 여겼듯이, 사진은 그 얼굴을 통해서, 찍히는 대상의 마음을 훔쳐내는데, 강력한 힘이 있는 듯싶다.
2023년 3월6일부터 3월12일까지 <갤러리공간 미끌>에서 고 서원10주기 추모전 “그가 담은 그 길을 가다”의 전시기획을 했다. 2019년 내창형 30주기 기획이 끝나고, 내가 광화문을 찍은지도 어느덧 1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원이형도 우리 곁을 떠난지도 10년이 되어가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사진의 가장 큰 속성은 기억과 진실이 아닐까.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그 기록은 언젠가 떠난 사람의 마음, 진실이 담겨 있는 충분히 강력한 도구이다. 증명사진이, 여권사진이 그 신분을 증명하고, 보증하고, 문서화(document)된 사인(sign)이 기록을 하듯이, 사진은 그것을 재현하고, 표현하고, 대표(represent)한다. 사진은 그 자체 존재했던 뭔가(that has been)를 증거하는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칫 우리는 수정하고, 변경되고, 왜곡해서 바라본다. 사진은 진실이 아니고 거짓을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포토샵으로 바뀌어진 왜곡된 상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이다. 어쨌든 쓰는 이의 용도에 따라서 달리 보여지고, 해석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사진이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정직하지 못하면, 그 어떤 기교나 스타일로 멋져 보일수 있지만 그것은 허구의 가면이지 아닌가. 원이형 사진은 정직한 사진이고, 나도 그런 정직한 사진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2년여 가량 전시를 위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했다. 과연 나는 무엇을 담아야 하나.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다. 원이형이 찍었던 사진들은 2000~2002년 사이의 흑백사진이고, 그 중 장소를 알 수 있었던 곳, 6군데 장소를 2020~2022년 사이에 그 장소에 가서 내가 다시 찍어보기로 했다. 2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곳에서 그의 숨결을 다시 느껴보고, 물론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서 있었고, 그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고, 나도 그 무엇이 무언지 잘은 모르지만, 나도 그 공간의 냄새, 공간의 소리를 들었다. 4군데를 나 혼자서 촬영했고, 두 군데가 남았고, 임자도의 사진은 김성희형과, 정선은 후배 고두현감독과 동행했다. 마지막 촬영 정선 삼굿(삼찌기) 행사 사진을 찍으면서 삼굿(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삼을 넣고 찌는 구덩이나 솥)에 삼을 찌는 과정에서 고온의 수증기 하얀 연기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하얀 연기는 마치 구름과 비슷하다. 인생이 구름처럼, 아니면 연기처럼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 같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을 지나쳐 간다. 구름처럼, 연기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그 속에서 나는 서 있고, 나도 언젠가는 그 자리를 떠나지만, 그 공간은 어쩌면 영원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 길을 다시 찾을 것이다. 처음 전시는 2인전으로 생각했었는데, 작년 10월, 전시는 3인전이 되었다. 서원의 딸 서해도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시는 일회적이지만, 기억은 점점 흐려지겠지만, 기록은 남을 것이라고,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나는 그 기록을 전달하는 우체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