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47. social과 personal의 경계에서

by 노용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대명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였다. 개별자로서의 개인은 이미 사회적 조건속에서 존재하므로 굳이 따질 필요가 있냐고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에서 많은 질문들을 해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석가의 말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때론 일반적으로 개인성이 강한 사람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되어진다. 대학 2학년 때 수업을 들었던 성완경선생의 ‘사진과 사회’는 그 고민들의 연장이었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어쩌면 극히 개인적이다. 카메라를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취미이고, 예술이라는 놀이 또한 개인적인 놀이에 그칠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전달되는 가에 대한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경계에서 우리는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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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아동의 문제를 사회에 제기했던 루이스 하인이나 빈곤의 문제를 제기했던 자콥과 같은 social 다큐멘터리스트와는 달리 극히 개인적인 관점을 보여준 현대 personal 다큐멘터리 사진가들(fine art와의 경계에 있는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확장할 수 있을까? ‘사진과 사회’ 책에서는 정치적 도구로서의 사진과 예술적 표현으로서의 사진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과연 사진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경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역사는 각 순간 그 나름의 정치적 성격, 사고방식 및 취향에 부합하는 고유한 예술적 표현양식의 탄생을 보여준다”고 프로인트는 말한다. 또한 그는 “사진은 오늘날 1만여 명의 전문적 사진가를 갖고 있으며, 상당수의 작가들의 작품이 기록적 성격, 예술적 감각, 창조적 정신으로 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의 조류 중에서 두 가지의 큰 흐름을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들 자신의 감각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관심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택하는 사진작가들이 있다. 즉 참여파이다. 다른 한편, 사진은 그들의 개인적, 예술적 열망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이 두 가지 경우에서 그들은 창작인, 또는 단순한 기술인이 될 수 있으나 어떻든 모두가 반세기의 침체를 끝내고 사진에 다시 권위를 부여한 사람들의 후예이다. 이 사진의 선조들은 20년대의 정치적, 예술적 운동에 밀접하게 개입했었다.”1)라고 말한다. 당시의 사회적 변화는 예술적 표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1) 지젤 프로인트, 성완경, 사진과 사회, 1989, P.183


1928년 「새로운 시각(The New Vision)」에서 모홀리 나기는 “사진 덕택으로 인류는 새로운 눈으로 그의 존재와 환경을 알아볼 수 있는 힘을 획득했다. 진정한 사진작가는 커다란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을 택해 작업해야 한다. 그 작업은 왜곡과 변경이 없는 일상사의 정확한 복사이다. 사진의 가치가 단순히 미적 관점에서만 측정되어서는 안 되며 그가 표현하는 시각의 사회적, 인간적 강도에 의해 측정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은 단지 현실을 발견하는 수단이 아니다. 카메라에 의해 보인 자연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자연과 다르다. 카메라는 우리의 보는 자세에 영향을 주고 새로운 비전을 창조한다.”2)고 말한다. 사진의 사회적인 성격 보다는 예술적인 성격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사진의 예술성은 이제 그 시대처럼 논란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경계는 남아 있다.


2) 지젤 프로인트, 성완경, 사진과 사회, 1989, P.186


“르네상스 시대에는 분별 있는 사람을 <그는 코가 밝다>고 표현했다. 우리 시대에는 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 <그는 눈이 밝다>고 말한다. 오늘날은 본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선동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영상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또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 그 특성은 감수성에의 호소력이다. 대화나 독서와 같은 반추(反芻)의 시간, 추론(推論)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 위력은 순발성에 있으며 동시에 그것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사진은 수천 억의 무수한 영상을 복사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세계는 이제 일깨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제시되는 것이다.”3) 이처럼 사진은 너무나 친숙한 대중적인 매체가 되었다.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것이 사진으로 복사된다. 그리고 또한 주민등록증의 사진처럼 우리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것이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시위대의 모습을 경찰들로 하여금 채증을 하면서 예비 범죄자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는다. 사진이 국가폭력의 정보로 활용된 사례라고 프로인트는 한탄했다. 주민등록증에 사진 또한 국가의 통제에 의한 속셈이 있는 것이다. 시위현장에서 마치 사진기자처럼 행사하는 경찰들의 채증 사진은 예비 범죄자들의 데이터베이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리풍경이나 일상생활의 모습들을 마구잡이로 촬영하다보면 개인들의 얼굴이 찍히게 된다. 낯선 사람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신의 예술작품으로 이용되고, 그들의 초상권, 특히나 그들의 인권은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방치되고 침해된다. 과연 그들과 우리는 그들과 얼마만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가.


3) 지젤 프로인트, 성완경, 사진과 사회, 1989, P.201


‘사진과 사회’ 맨 마지막장에서 언급한 ‘포토마추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작가를 꿈꾸는 아마추어 사진가’는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이젠 대중화되었다. “<좋은>사진은 그렇게 희귀한 것이 아니리라. 매일처럼 신문 잡지에 실리는 수백만의 이미지 가운데에서 단순한 재현 이상을 표현하는 것은 단 몇 장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인간이 새로운 각도에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을 도와준다. 공간적인 거리를 없앤 것이다. 사진이 없다면 우리는 달의 표면을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식을 평준화했고 따라서 인간과 인간을 가깝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수요를 창조하고 상품을 팔고 정신을 가공하기 위한 조작자로서 위험한 역할을 하고 있다.”4)고 프로인트는 경고한다.


4) 지젤 프로인트, 성완경, 사진과 사회, 1989, P.203


“작은 화면을 매일 들여다보는 것이, 이미 수백 수천만 인구가 피할 길 없는 일종의 마약이 되었다.”5) --- <지젤 프로인트, 사진과 사회>


5) 지젤 프로인트, 성완경, 사진과 사회, 1989,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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