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78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는 철학을 왜 하는지, 욕망은 무엇이고 왜 추구하는지를 그의 저서 <왜 철학을 하는가?Pourquoi Philosopher>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철학의 삶과 죽음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리에게 철학은 있기도 하고 동시에 없기도 합니다. 어쩌면 철학의 존재의 비밀은 이 모순적이고 대조적인 상황에 있는 듯합니다. 철학하는 행위와 현존-부재 구조의 우연적 관계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다소 앞서가는 감이 있지만 욕망(desir)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철학(philosophie)에는 사랑한다는 것(philein), 즉 ‘좋아하다, 욕망하다’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1. 왜 욕망하는가?’ 중에서
욕망이 있기 때문에 철학을 하고, 그래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철학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현존 속에 부재가 있기 때문에, 생체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또한 아직 권력이 아닌 우리의 권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소외되고 상실됨으로써 사태와 행위, 말해진 것과 말하기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을 통하여 결핍의 현존을 증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말해서, 어떻게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있답니까?”
- ‘4. 철학과 행동에 대하여’ 중에서
사진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한다. 사진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장면들을 스쳐지나가면서 힐끗 보기도 하고, 유심히 관찰해서 보기도 하고, 멍하니 쳐다보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의해서 보기도 하지만, 욕망과는 별개로 보고 싶지 않은 장면도 보게 되고, 보고 싶은 장면을 찾아서 보기도 한다. 리오타르는 욕망에 대한 물음에서 “욕망에 대한 물음은 욕망할 만하기에 욕망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할 만한 것이 되는가의 물음으로 금세 넘어가 버립니다. 어떤 여자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사랑스러운 것인가를 알 수 있느냐 없느냐와 마찬가지죠”-<왜 철학을 하는가, p14>라고 말하듯이, 사진은 과연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담고자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사진을 찍으려 하는가?, 어떻게 찍으려 하는가?,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 근원적으로 되돌아와서 왜? 왜 의미도 없는 것들(또는 의미가 있는 것들)을 찾아서 다니고, 기록하고, 사진찍는 것인가? 나에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만, 남들에게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은 나에게 있어서 나의 시선이자, 세상과의 만남이다. “회광반조(回光返照)”,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으로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하여 진실한 자신,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카메라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창문이기도 하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