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마 VS 궁금해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37

by 노용헌

광화문광장을 찍기 시작한지도 8년이 되었다. 그동안 거리에서 사진을 찍다보면 찍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찰관, 시위자, 그들 중에는 공사장 인부도 있다. 광화문광장은 2020년 11월부터 시작된 공사로 한창이다. 공사는 올 12월에서 내년 4월로 마무리된다고 하지만 언제 끝날지는 미지수다. 도로를 바꾸고, 중앙은 공사 가림막으로 가려놓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로수를 옮기고, 그 과정에서 포크레인의 앞부분 버켓(bucket)에 탄 인부가 가로수의 윗부분에 줄을 거는 작업을 사진으로 촬영했었다. 촬영을 하고 돌아서자 인부가 달려왔다.

‘이거 사진 찍은거 삭제해주세요’

‘왜 그러는데요?’

‘이거 사진으로 나가면 안되요’

굴삭기 바구니에 올라타는 것이 불법인 셈이었다. 어쨌든 사진을 삭제해주고 돌아섰다. 공사중인 곳에서 사진 촬영을 할려면, 작업반장이나 감독관에게 허락을 맡고, 안전모를 쓰고 작업장에 들어서면 언제든지 찍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감독관들을 현장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어렵게 만나도 여러 가지 이유로 사진을 찍게 허락을 받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공사현장에서 그들의 자재나 작업조건등이 노출되는 것은 여러 가지 자신들의 불리함을 노출시키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사비를 떼어 먹는 것인지, 어떤 작업 과정을 하는 것인지 사실 일반인의 눈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혹 그들의 약점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어서는 안되겠지. 약점을 잡자고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지만, 사진은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된다. 찍지마와 궁금해서 찍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그 사이의 간격이다. 찍지 말라면 더 찍고 싶은 나는 청개구리과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기록을 하다보면 매 순간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된다. 마치 낮과 밤이 다르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이 다르고, 빛이 비치는 각도가 다르고, 나의 마음도 시시각각 다르고, 보고자 했던 것도, 보이는 것도 다르고, 다르다라는 것은 새로운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 다를까?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듯,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여전히 궁금하다. 왜? 예전에는 월급을 누런 봉투에 넣어 주었는데 그때는 왜 누런 봉투에 줬을까?, 하얀 봉투가 더 튼튼한데 말이다. 지나가는 일상은 모두 기록이 된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삐삐를 사용했던 것처럼.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고, 모든 것이 조금씩 변화한다. 공사장에서도 풍경은 조금씩 바뀐다. 광장의 거리에 나온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닐지 누가 예상했을까. 세월은 조금씩 나이가 들어간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 궁금한게 많은 사람?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사람? 오지랖이 많은 사람? 나는 어떤 사람? 보고 싶지 않은데 보이고, 듣고 싶지 않은데 들리고, 나의 오감(五感)의 안테나는 사방으로 작동한다. 사회현상이든 건물의 모양이든, 사진은 많은 정보를 담고,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고, 궁금한 것을 이해하려고 사진은 기록한다.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은 때론 지루하게 보일수도 있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 무엇을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것이다. 물이 끓는 주전자의 입김이든,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이든, 우린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본다. 그 눈의 연장이 사진으로 남는다. 찍는 사진가의 마음의 중심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움을 찾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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