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음'과 '사라짐’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73

by 노용헌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제시한다. 인간의 ‘거기-있음’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시공간의 존재를 프레임에 담고 있다. 사진을 찍는 동시에 그 프레임안에서 인간은 현존한다. 전통철학에서 ‘있음’이란 모든 존재자에게 다 똑같이 적용된다고 이야기된다. 거기에 ‘있음’은 우연적인 것이다. 그것들이 필연적으로 꼭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 아니다. 책상의 있음이나 우리들의 있음이나 다 같다. 우연하게 프레임안에 있다. 우연적이지 않은 유일한 것은 하느님, 곧 신뿐이다. 각각의 ‘있음’은 프레임안에서 관계맺고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존재자의 본질은 바로 그 시간적인 ‘있음’에 있다고 말한다. 존재에 대한 인식은 ‘있음’에서 출발한다. 또한 하이데거는 그러한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기-있음Dasei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 현존재Dasein라는 존재양식의 특징은 실존Existenz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인간은 실존하는 존재인 것이다. 또한 ‘거기-있음’의 ‘거기’는 ‘세계’라고 말한다. 인간의 ‘거기-있음’이란 곧 ‘세계-안에-있음’을 말한다.


사진을 거리에서 찍다보면 날아가는 새, 움직이는 구름, 횡단보도에 서있는 사람들,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이 모든 객체들은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거기-있음’이다. 거기 있기 때문에 사진에 찍힌다. 포토샵으로 만들어내지 않은 이상, 그것은 현존했던 것들이다. 500분의 1초로 찍혔던 대상들은 잠시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사진은 '거기-있음'과 '사라짐’의 연속이다. 영정사진을 보면 그가 내 앞에 현존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사진속 프레임 안에서만 현존한다. 사진은 프레임안에서 ‘거기-있음’이다.


사진은 그림보다 훨씬 더 재현력을 가진다.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이라 불리우는 현대의 사실주의는 실재의 대상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사진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사진의 오래된 믿음은 ‘거기-있음’을 증명한다. 마치 신앙처럼 보이는 것은 ‘거기-있음’이다. 허구를 만들어 냈을 지라도 ‘거기-있음’인 셈이다.

또한 사진 이미지는 형상을 담아내고 있지만, 소리와 냄새는 담고 있지 않다. 소리와 냄새는 사진의 형상과 ‘거기-있음’ 안에 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다. 소리와 냄새는 휘발성이 강하여, 액체가 고체가 되는 과정에서 기화되어 사라진다. 담배나 향의 연기를 찍은 사진에서 연기와 함께 소리와 냄새는 사라진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순식간에 포획한다. 따라서 사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험적으로 찍을 대상이 마련되어야 하며 그것이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사진은 대상과 시간을 동시에 겨냥한다. 레디메이드이미지를 다루는 사진은 대상을 발견하는 일이고 그 대상을 낯설게 보는 일이다, 그리고는 프레임에 가둔다. 촬영 후에도 대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진 속에 들어와 박힌 대상은 어느 한 순간의 것이기에 그것은 있음과 없음 사이에 기이하게 걸쳐있다. 이미 사라져 버린 어느 한 순간을 애도하는 것이다. 인류는 특수한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 종이라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그는 실제 세상이 존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세상은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사물을 재현하고, 명명하며, 개념화하면서 인간은 그것을 존재하게 하고, 동시에 사라짐 속으로 떠밀며, 그 생경한 현실성으로부터 절묘하게 멀어지게 했다고 한다. 하나의 사물이 명명되고, 재현과 개념이 그 사물을 포박하는 순간은 바로 사물이 그 에너지를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사물은 그 개념이 나타나면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는가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사라짐의 기초 위에서 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드리야르는 사물을 정말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라짐과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하며 그보다 더 나은 분석들은 없다고 말한다. (장 보드리야르, 『사라짐에 대하여』, P39)


광화문 광장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70년대 광화문광장은 2000년대 광화문광장, 그리고 현재의 공사가 한창인 광장은 다를 것이다. 기억은 사람들 각자에게 다르게 존재하고, 때론 망각되기도 한다. 기억은 오래 남아 있을 수도 있고, 기억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다는 것. 사진은 사라지는 것을 남겨둔다. 모든 사라진 것들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한다. 사라진 것은 이전에 ‘거기-있음’을 말한다.


필름film 시절 사진은 촬영된 필름을 현상과정을 통해서 네가티브를 만든다. 찍혀진 네가티브 필름은 현상(Development)-정지(Stop Bath)–정착(Fixer)의 과정을 거친다. 그럼으로써 빛에 노출되어도 노광된 필름이 고정되어진다. 정착액에 담겨지기 전까지는 빛에 노출되면 상(像)은 사라진다. 검게 변한다. 필름 현상은 잠상을 화학적 처리를 통해서 가시상으로 변환시켜 고정시키는 것이다. 사라짐이 ‘거기-있음’으로 고정되어진다.


보드리야르는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두고, “내가 시간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아직 없으며 / 한 장소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사라져 버렸고 / 한 인간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이미 사망했으며 / 시절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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