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적인 것'과 '표현적인 것'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74

by 노용헌

'narrative'와 'construct’

'서술적'과 '회화적’ ‘storytelling’ ‘pictorial’

‘묘사적’과 ‘표현적’ ‘descriptive’ ‘expressive’


존 자르코스키(John Szarkowski)의 유명한 기획전의 <거울과 창Mirrors and Windows>은 사진을 두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내면의 모습을 다룬 거울파와 외부의 모습을 바라본 창문파로 나눈다. 미술의 역사도 또한 리얼리즘의 계열과 모더니즘의 계열은 사실적 관점과 낭만적 관점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철학에서도 이어졌었다. 정신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또는 정신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 세계를 관념론적인 시각으로 보느냐, 유물론적인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계는 달라진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도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으로 오랜 논쟁을 했었다. 두 양극단 사이에도 많은 부분이 겹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할 것이다. 그 출발에 따라 도착하는 결과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서술적인 것과 표현적인 것.jpg

다큐멘터리와 예술사진의 양 극단에서 보면, 다큐멘터리는 원原 소스(source), 또는 원 자료(data)의 출발은 Document이다. 가공하지 않은 Raw Data로서 도큐멘트인 셈이다. 나무라든지, 사람이라든지, 건물이라든지 촬영된 대상은 도큐멘트로서 존재하고, 도큐멘트는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시각으로 다루었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 방식은 포토 스토리로 포토 에세이로 여타의 방식으로 서술(narrative)하게 되어진다. 르포르타주나 포토저널리즘, 그리고 다큐멘터리 양식은 세가지 내용을 어떻게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표현되어진다. 그것은 과정(process), 사건(event), 상태(state)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회적 과정, 그 안의 행위자(사건)와 그것이 일어나는 조건(상태)을 보여줄 수 있다. '중립적인' 유형의 사진은 어떤 사물의 상태, 그것의 '조건'을 보여주는 반면, 르포르타주는 사건과 과정을 모두 사용하여 그것들을 삶의 이야기로서 '경험experience'을 보여준다. 포토저널리즘의 사진의 경우 저널리즘의 기초아래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 육하원칙(5W1H)에 의해 사진이 쓰여지고, 읽혀진다. 따라서 포토저널리즘의 사진은 설명적이다.


다큐멘터리의 서술적이고, 서사적이고, 스토리텔링에 의한 내용들은 표현양식에 따라 변화를 해왔다.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로버트 프랭크의 이방인의 시각은 극히 작가의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대의 개인적, 사적 다큐멘터리들은 현대 예술의 시각도 수용하게 되고, 구성주의Constructivism, 팩토그라피Factography로 시작된 러시아 아방가르드에서부터 현대의 컬러를 사용한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의 작업(민주적 숲The Democratic Forest)이나 미국의 난 골딘Nan Goldin(성적 의존의 발라드The Ballard of Sexual Dependency)과 함께, 예술적 표현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본래 취지에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야기를 해체하고, 단지 그림으로, 이전의 사진의 역사에서 보았던 리얼리티Reality의 논쟁, 그리고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의 회화주의에 대한 논쟁에서처럼 그림같은 사진, 회화적인 사진, 살롱사진의 영향은 다큐멘터리의 전통과 이론을 애매하게 만든다. 광화문 광장에 5월 1일 노동자 집회로 많은 노동자들이 모였다. 사진은 프레임안에서 노동자의 행진을 느린셔터로 흘려 찍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 표현의 스타일은 사실 내러티브 면에서는 상실된 사진이다.


재현의 문제를 떠나서, 사실(Fact)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데에는 기술적 표현이 따른다. 그것이 전체 상황의 문맥(context)과 맥락상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과 표현의 스타일, 때론 회화적인 풍경은 다큐멘터리의 내용과는 별개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으로, 우리는 어떤 두 양극단 사이의 절충을 하던가, 새로운 모색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회화주의 예술사진의 헨리 피치 로빈슨(Henri Peach Robinson)의 자연주의 사진을 따를지, 알프리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사진분리파(Photo-Secession)의 스트레이트(Straight)한 사진을 따를지는 작가에게 달렸다. 그것이 자신의 표현의 양식, 도큐멘트로서 출발하는지, 예술로서 출발하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서술적인 것과 표현적인 것-예시.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무엇에 꽂혀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