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75
사람들은 무엇에 꽂히게 되면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 집착을 하기도 한다. 인생은 집중했던 시기, 그리고 집착했던 시기, 수많은 선택의 시기를 지나간다. 나 또한 사진을 전공하고, 사진을 하게 된 것도 아마도 사진에 꽂혀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무언가에 꽂히면 수집벽이 생기기도 하고, 무언가에 우리는 홀리기도 한다. 아마도 남녀의 사랑도 그럴 것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결혼까지 하니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내가 그에게 꽂혀있을 때, 그는 나의 사진에 담겼다. 사진은 그 꽂혀있는 것들을 찍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 나무들, 사람들, 이런 주제에 꽂혀 있다보면 그 대상체를 쫓아서 찾으러 다니고, 사진을 찍게 된다. 사진은 그런 주제에 대한 사진가의 꽂힘을 보게 된다. 그 사진가는 이런 것에 꽂혀 있었구나하고.
꽂혀 있다라는 것은 속된 말로 빨대를 꽂았다고 말한다. 내가 광화문광장을 8년을 넘게 찍었던 것도 광화문광장의 기록에 매달렸고, 꽂혀 있기 때문이다. 주사 바늘로 찌름을 당하는 것, 꽂힌다는 것은 롤랑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Punctum)이다. 그가 말한 푼크툼은 ‘작은 구명’ 혹은 ‘뾰족한 물체에 찔려 입은 부상’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살 같이 날아와 박히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을 의미한다. 푼크툼은 스투디움(Studium)과 함께 롤랑바르트의 <밝은방Camera Lucida>의 주요 개념이다. 롤랑바르트에 따르면 스투디움은 좋아하기이고, 푼크툼은 사랑하기이다. 좋아하기와 사랑하기를 사진에 적용한다면 ‘찌르기’의 있고 없음이다. 찌르기란 다름 아닌 찌름을 당함, 감상자이든, 촬영자이든, 찌름을 당함으로서 사진은 생성된다. 찌름을 당한 사람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는 오래 간다. 그 시각적 장면들은 상처로, 흔적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오랜 여운을 남기듯이 말이다. 사진은 무언가를 찌르고, 바늘로 찌르는 그 순간을 포착하게 된다. 무언가 꽂힌다는 것은 나에게 필(feel)이 꽂히는 순간인 셈이다.
“아이디어를 찾는 비결은 모든 사람과 사물에는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비결’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믿음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세상사물, 사람, 일이 흥미롭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텔레비전 채널을 열 번이나 바꾸다가 열한 번째에 겨우 멈춘다. 서점에 가면 열두 권의 소설책을 뒤적인 후에야 겨우 한 권을 고른다. 우리는 걸러내고 순위를 매기고 판정한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말콤 글래드웰, 당신이 무언가에 끌리는 이유, p.13>
무언가에 끌린다는 것은 무언가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끌리는 많은 것들 중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집중하게 된다. 집중은 목표를 향하고, 집착은 욕심을 향한다고 말한다. 감정에서 출발하든, 이성에서 출발하든 우리는 꽂힘의 대상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영토를 확장하는 군인들은 깃발을 꽂는다. 조 로젠탈(Joe Rosenthal)의 유명한 1945년 2차세계대전 중 미군의 유황도(이오지마)에 섬 정상에 성조기 깃발을 세우는 사진은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꽂히든, 홀리든, 우상화에 꽂히게 되고, 그것은 과도한 믿음에 달려 있다. 믿음이 과도하면 맹신이 되고, 그것은 정치적으로 파시스트가 된다. 맹신자들 광신자들,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그것이 신념을 넘어서 무언가에 과도한 집착은 자칫 위험하다. 우리는 그 점을 경계하고, 항상 물음을 던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