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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과 다름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24

by 노용헌

같음과 다름

사진이란 매체는 그 틀에서 프레임(frame) 안에서의 봄(view) 이다. 네모난 사각형의 틀 안에 무언가를 구성하기도 한다. 그 구성은 각각의 정보이기도 하고, 대상이기도 한, 오브제의 배치에서 그 구성을 하게 된다. 그 수사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대비와 유사이다. 서로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대비이고, 서로 같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유사이다. 같음과 다름의 속성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비슷하다. 가령 모네의 <수련> 연작은 빛과 수련이 만나 만들어지 차이들을 다르게 반복되어 그려진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의 다름을 그린다. 빛과 어둠은 그 성질이 다르고, 흑백사진에서처럼 흑과 백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수련1과 수련2는 그리고 수련3은 반복되어진다. 반복되어 보여지는 <수련> 연작은 같은 주제를 전달한다. 각각 수련1과 수련2, 수련3이 더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모네는 수련을 더 그릴수 없을 것이다. 똑같은 그림에 지나지 않는 것, 그것은 반복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세상은 같거나 다른 것으로 되어 있다. 나(我)와 너(非我)는 다르고, 낯선 타자를 만난다는 같음과 다름을 만나는 과정이다. 나무와 돌은 그 물성[物性]이 다르다. 한 화면에 나무와 돌이 같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다름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다른 것들이 서로 공존해 존재한다. 정릉천에 오리들이 쌍쌍이 반복되어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수컷과 암컷이다. 그 차이는 수컷은 화려하고, 암컷은 그렇지 않다. 이 둘은 다르지만, 같은 오리이다. 푸른 하늘만을 찍은 사진은 재미가 없지만, 구름이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 하늘과 구름은 서로 다른 물성[物性]인 셈이다. 사람들의 행동 또한 같거나 다르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기도 하고, 다른 행위를 하기도 한다. 사진은 같음과 다름을 프레임에 구성함으로써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하는 사진>의 기본은 같음과 다름을 보는데서 출발할 것이다.


같음과 다름에서, 부분에서 전체로 우리는 세상을 인지한다. 좌와 우의 다름에서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우리는 무한히 반복되어 바라본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것을 유유상종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나와 동일한 것, 같음을 통해 동질감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르다고 해서 배척할 이유도 없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서 오히려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들이 있다. 성격이 다른 부부가 오히려 잘 사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은 다름을 통해서 세상은 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같아야 짝을 짓지만 같으면 짝지어지지 않는다. 같음과 다름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음속에 다름이 있고, 다름속에 같음이 있다.


같은 공간도 시간이 흐르면 변화되고, 그것은 다름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위도, 오랜 시간 풍화작용[風化作用]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변화하는 다름과 같은 공간은 서로 같으면서 다르다. 사진가는 같음과 다름을 관찰하는 관찰자이며, 그것을 프레임이라는 사진에 담는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같음과 다름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사진속 프레임안에서 구성된 오브제의 같음과 다름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상상력은 같음과 다름으로 만들어지고, 차이와 반복은 무한히 반복함으로서 같음과 다름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사진의 힘이고,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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