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225
정중동[靜中動]
사진은 정중동[靜中動]이다. 찰나를 잡아내는 행위가 움직임속에서 고요함을 찾아내는 것이고, 고요함속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말한다. 사진에서의 조형성은 정중동이라고, “사진에는 새로운 종류의 조형성, 즉 주체의 움직임에 의해서 만들어진 순간적인 선들의 결합이 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이 삶 그 자체가 전개되는 방식에 대한 예감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움직임에 조화를 맞추어 일한다. 그러나 움직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한 순간이 있다. 사진은 이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의 균형을 부도의 것으로 고정시켜 두어야 한다.”이처럼 그는 움직임을 포착하였고, 그 움직임은 점, 선, 면의 기하학적인 구성과 균형을 이루는 정(靜)으로 표현한 셈이다.
음악에서 박자인 비트[beat]는 심장의 맥박과 같아 움직임을 나타낸다면, 멜로디는 호흡의 숨결과 같다. 호흡을 멈추면 고요한 순간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맥박과 호흡이다. 긴 호흡 중간의 멈춤, 비로소 멈추었을 때 보이는 순간이 사진으로 남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맥박이 뛰고, 숨이 드나드는 것이다. 생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듯이, 자연은 조금씩 활동한다. 고정된 사진이 화석(化石)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고되어지고, 생동한다. 그 속에 내러티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변화되어진다. 사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꿈틀거릴 것이다. 죽은 사진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진은 숨결을 전한다. 아마도 정은 동을 말하고, 동은 정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6세기 중국 남제의 사혁(謝赫)이 그의 저서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주장한 화론육법(畵論六法)은 현대까지도 그 영향이 지대하다. 육법은 기운생동(氣韻生動)·골법용필(骨法用筆)·응물상형(應物象形)·수류부채(隨類賦彩)·경영위치(經營位置)·전이모사(傳移模寫)이다. 이 육법의 처음은 기운생동이다. 기(氣)란 우리 몸의 호흡이며, 기운과도 같다. 날숨과 들숨은 기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기는 움직임(動)이자 고요함(靜)이다. 성리학을 대표하는 이황과 이이의 이기론(理氣論)은 존재와 운동의 개념을 설명한다. 주리론((主理派))과 주기론(主氣派)은 다같이 이와 기를 세계의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며, 이와 기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와 기는 서로 떠날 수 없으나,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理氣不相離 理氣不相雜) 이와 기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이와 기는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가 선행하고 중요한 것인지, 기가 선행하고 중요한 것인지의 논란에서 보면,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논쟁과 비슷하다. 내용과 형식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한다. 마찬가지로 정과 동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상호작용한다.
정릉천에서 오리 암수의 사랑장면을 포착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암컷의 위에 수컷이 올라타고 있는 장면이다. 얼핏 보면 화려한 색의 수컷만 보이지만, 그리고 움직임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움직임이 있다. 스토리는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서술로서의 재연[再演]은 정중동을 표현한다. 자연에 완전한 흑백이 존재하지 않듯, 절대 정(靜)은 없고, 절대 동(動)은 없다. 정과 동은 함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