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50. 본질과 현상

by 노용헌

본질이 ‘나’라는 사람 그자체이라면 현상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혹은 나의 겉모습, 비쳐진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질을 얼마만큼 꿰뚫어 보고 있는가.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본질 또한 그러한 현상에 영향을 받게 된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서 본질적인 것을 끌어내고자 한다. 모방과 현상을 재해석함으로서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넘어서 과연 본질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대학시절 '사진집단 현장'에서 사진에 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하며 열띤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질문은 유효하다. 데모하는 현장을 사진을 담는 것(현상을 찍는 것)과 데모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삶의 현장을 담는 것(본질을 찍는 것)으로 많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사회 현실에서 노동자나 농민의 투쟁현장을 촬영하면서 부딪치는 많은 질문들이 다가온다. 과연 나는 본질을 촬영하고 있는 것인지.

50-1.jpg


플라톤의 동굴에서 바라보거나, 고층빌딩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세상은 우리가 사유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현상이다. 우리들의 세상 현상은 눈으로 보이는 현상이지만, 여기에서 본질적인 것은 시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A가 A이고, A가 B이다 또는 C이다” 보편적 사실, 추상적인 비언어, 사진은 과연 본질을 재현하고 있는 것일까. 소외와 고독, 자아상실과 개인주의 등과 같은 개념적인 본질은 사진에서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여지고, 메시지와 울림은 어떻게 전달되어지는가. 시각적인 앎, 시각적인 받아들임은 과연 본질을 꿰뚤어 볼수 있는 것인가. 코끼리의 다리를 볼지, 코를 볼지, 몸통을 볼지 사진에서 찍혀진 기호들에 의해서 우리는 본질을 유추한다. 그것도 개인적인 판단과, 경험에 근거해서.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감각적인 사진기호들로 판단하게 되고, 지시기호는 의미기호로 해석 분석하게 될 것이다.

50-2.jpg


그리스 철학에서는 감성적 인식의 대상이 곧 현상이고, 이성적 인식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이 본질이라고 한다. 감성적 인식이든, 이성적 인식이든 주관적인 의식에 의해서 파악된 현상은 인간 사유와 인식으로 판단된다. 헤겔의 논리학에서 ‘본질’이란 ‘존재(Sein)’와 ‘개념(Begriff)’ 사이에 놓인 영역이며, ‘매개’ 혹은 ‘관계’의 존재양식을 나타낸다. 주체는 객체와의 관게속에서 자립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본질을 전제하며 상호 부정=상호 전제=상호 매개적인 상관적 통일을 진행하고 이 운동을 헤겔은 ‘반성(Reflexion)’이라고 부른다. 본질이란 현상의 총체를 나타내며, 현상이란 본질의 한정된 형태들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어쨌든 어려운 말이다. 과연 우리는 본질을 꿰뚫수 있기 위해선 삶의 경험에 근거한다. 실증주의이든 현상학이든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질문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와, 과연 사진은 현상의 껍데기만을 촬영하는 것인가? 사진은 기본적으로 프레임을 통해서 삶의 현상을 담는다. 작가는 어떠한 프레임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그의 관점이 드러난다. 또한 우리는 이 프레임에 갇혀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과연 사진이란 사각 프레임안에 우리는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일까? 본질인가, 현상인가. 프레임은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인 것인가?

제목 없음.jpg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먼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인이나 내 주변의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떠나 그저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순간, 일종의 화합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정의 교류가 생기게 되면, 우리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 사람은 카메라를 의식하기보다 그저 마음이 열려있는 그대로의 편안한 자아를 보여준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 내가 통하는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고, 그 순간을 필름에 담을 뿐이다.”-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이전 03화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