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기호적 해석 (Symbolic Interpretation)
사진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아름다움이나 특별한 대상에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사진을 읽는다. 그러나 사진읽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진언어는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사진가가 자신이 갖는 생각을 사진으로 재현하기도 어렵지만 독자가 그것을 읽어내기도 어렵다. 특히 사진 한 장만으로는 더욱 그렇다. 사진은 단독으로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언어는 그 특성상 논리의 문법을 가지고 의미를 제시한다기보다는 보는 사람만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적합하다. 그 감성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것도 때와 장소 혹은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광수. 사진인문학 p144~145)
사진은 사진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사용되어질 수 있다. 그것이 정치 사회적 해석이든, 정신분석학적 해석이든, 기호적 해석이든 사진은 다의의 지표를 담고 있다. 퍼스는 기호의 세가지 유형을 도상(icon), 지표(index), 상징(symbol)으로 제시한다. 사진에는 현실의 이미지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기호적 요소들이 모두 담겨져 있다. 소쉬르는 기호의 근본을 이루는 두 성분으로 기표(記標,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시니피에)를 말한다. 나무라는 문자의 의미는 기표이며, 나무라는 대상체, 문자의 의미를 기의라 구분한다. 사진에서 기표인 나무 그자체가 사진에 담겨져 있지만, 이것은 많은 기의를 내포하기 때문에 외연의 의미와 내연의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진 상징일 수도 있기에 많은 해석을 낳게 한다. 롤랑 바르트는 ‘이미지-텍스트-수사학’의 관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사진기호학의 체계 또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은 사물의 기호일 수도 있고 또 사건의 기호일 수도 있다. 여기서 사건이란 ‘사고(事故)’와는 다른,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 무엇이 일어났다는 흔적”이다. 사진은 자체로만 보면 쉽게 소통 가능한 기호이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모호성은 어쩔수 없는 것이라 했지만 자체로만 보면 항상 어떤 지시체를 향하고 있다. 사진기호학이 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분명한 지시체 때문이었다. 또 사진이 만국공통어란 유장한 수식어를 달게 된 것도 기표와 기의가 분명한 언어적인 명료성 때문이었다. 물론 특수한 독해를 요구하는 예술사진도 있었고, 또 매우 난해한 현대사진의 모습도 있었으나 그러나 대부분 사진은 이해 가능한 사진들이었다.](진동선, 사진기호학) 사진 이미지들이 아마도 난해가 해독되는 것은 비언어적 상징 때문일 것이다. 라깡은 상징을 언어적 상징과 비언어적 상징으로 구분하며 개념표현과 감정표현에 있어서 두가지 기능을 가질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비언어적이고, 많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구체적 형상으로부터 추상성으로 전개를 끊임없이 추구하기 때문에 의미정보와 미적정보를 담고 있다.
셰리 레빈(Sherrie Levine, 1947~)은 '차용(appropriation)'이라는 방식을 통해 예술의 원본에서 주는 의미에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워커 에반스의 다큐멘터리 흑백사진을 재촬영하고 프린트하여 《워커 에번스를 따라서 After Walker Evans》라는 작품을 보여준다. 그의 재촬영된 사진은 어떤 의미정보와 미적정보를 가지는가? 예술작품이라고 말하는 현대사진은 어떤 기호적 해석이 가능할지는 비평가마다 다르다. 또 다른 개념예술가인 더글라스 고든(Douglas Gordon, 1966~)의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영화 '싸이코'(1996)를 느린 속도로 재생하여 24시간동안 상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원작 <사이코>의 익숙한 장면들이 오히려 이해불가능하고 낯선 장면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장면들이 시간의 정상적인 프레임의 외부에서 작용함으로써, 서사적 연속성이 와해되고 모든 영화적 장치들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Stefano Basilico, ““The Editor””, Cut. Film as Foune Objet in contemporary Video, Milsaukee Art Museum, 2005,16.)
"장자가 잠에서 깨어나, 나비가 자신이 장자라고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자문할 수 있다. 그의 생각은 옳다. 첫째 그가 정신이상이 아니라는 점, 그는 스스로 절대적으로 장자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이고, 둘째로는 그 자신이 어느 정도 옳은지 그 스스로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사실 그의 실체의 본류를 이해한 것은 그가 나비가 되었을 때이다. 자기 자신의 빛깔로 스스로를 그리는 그 나비야말로 본질적으로 그 자신이었으며 또한 현재의 그 자신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마침내 장자가 되는 것이다." -자끄 라깡Jacques Lacan-
예술 역사가인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지적처럼, “사진에 나타난 메시지 전체를 파악하기 위한 핵심적인 열쇠이다.” 사진의 기호적 해석의 몫은 “감상자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예술 이론가인 로게르 드 삘레(Roger de Piles)의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그 작품에 포함된 메시지가 모호해서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다하더라도, 감상자 자신의 상상력에 따라서, 하나의 작품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예술 작품으로부터 자신이 발견하는 의미는 전적으로 그 작품을 완성시킨 작가가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Photographer’s e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