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추상주의 (Abstraction)
20세기 초반 등장한 유럽의 추상미술은 보통 우리에게 뜨거운 추상(칸딘스키, 클레), 차가운 추상(몬드리안, 들로네)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순수한 조형의 요소와 원리에 의해 표현된 미술작품은 예술사진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이 있어왔다. 초현실주의와 결합한 추상주의, 또는 표현주의와 결합한 추상표현주의, 알버트 랭거파춰가 시도한 신즉물주의 사진들은 직간접적으로 추상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칠이 벗겨진 낡은 벽, 벽에 부착된 포스터의 흔적등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아론 시스킨드의 사진 또한 추상을 이야기한다.
영국 사진작가 앨빈 랭던 코번Alvin Langdon Coburn은 비구상주의 사진제작 실험을 처음으로 실시한 사람 중 하나다. 코번은 이렇게 물었다. “어째서 카메라는 현재를 표현한다는 굴레를 벗어던져서는 안 되는가?” 코번은 역동적인 힘을 보여주어 경직된 입체파에 활기를 불어넣을 필요성을 강조한 예술 운동인 소용돌이파Vorticism에서 영향을 받아 보르토스코프Vortoscope라고 부르는 만화경과 비슷한 장치를 제작했다. 또한 다중노출 기법을 이용해 불안함에 떠는 투명한 절지동물처럼 보이는 사진을 제작했다. 코번의 실험은 다리와 가로등 같은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물건들의 기하학적 형상을 강조했다. 추상주의는 20세기 초반 시작됐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사진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p149>
"Spider-webs", by Alvin Langdon Coburn. Photogravure published in Camera Work, No 21, 1908
사진이란 작업은 현실의 어떤 부분을 재현하거나 형상화를 하는 과정에 있다. 현실의 한 부분에서 형상을 찾거나 형상화는 반대로 추상화의 작업을 하기도 한다. 형상(구상)과 추상은 동전의 단면과도 같아 관점에 따라 달리 보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형상의 가장 본질적인 면만을 단순화하다보면 추상화의 과정에 이르게 된다. 로빈슨(Edwin A. Robinson)은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어 버리는 데 있다”라고 한다. 추상화의 과정은 단순화에 있는 것이다. 단순화된 점, 선, 면의 조형적인 요소와 기하학적 형태에서 사진은 추상화를 가진다.
사진작가들은 여러 가지 한계에 도전하고 2차원적 평면과 기하학적 형태를 실험하며 사실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노력하면서 추상사진을 제작하였다. 그중 로테 야코비Lotte Jacobi는 포토제닉스photogenics라고 부르는 추상사진, 조명을 극적으로 사용한 월리드 베쉬티Walead Beshty는 추상사진이라는 표현을 탐구한 작가들이다.
에른스트 하스(Ernst Haas)에 의하면, 추상사진가에 있어 “대상은 전적으로 중요성은 갖지 않는 것이며, 피사체는 자기자신 즉 자기가 본 건에 대한 느낌(feeling)과 반응이며, 형태와 색채를 개입시켜 스스로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추상사진가에게 있어서 현실은 자신의 상상과 영감(inspiration)을 표현하는 대상일 뿐이며, 사진기와 기술적인 면들은 추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수반되는 도구일 뿐이다.
“보이는 것을 많이 보면 그것은 관찰 기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해서 그것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사진 속에서의 시詩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rnst Haas(1921-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