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사물같은 사진(신객관주의)
사진은 사물의 객관적 실재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인가? 사물의 모습을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사진은 프레임하는 순간에 주관적인 의도가 개입할 수 있는데 어떻게 객관적 실재를 표현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거치며 형성된 근대 이성주의 철학은 사물의 객관적 실재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19세기 초에 발명된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기계적인 매체였다. 카메라의 기계적 장치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믿음을 신봉하게 되었다.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객관주의적 사유와 기계주의적 문명의 상징은 사물같은 사진의 맹신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셔터를 누를 때 자신만의 철학으로 사물(대상)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자 자신만의 고유한 반응으로 사진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진은 단순한 기계적, 객관적 재현 매체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신즉물주의 사진가 랭거 파춰에게는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최대한 줄여보려는 노력을 해왔고, 그들의 작업은 어찌 보면 외형적인 면에 집착한 조형적인 흐름의 한 지류일지도 모르겠다.
랭거 파춰(Albert Ranger-Patzsch)의 사진집 <세상은 아름다워The World Is Beautiful>(1928)의 독일어 원본은 <Die Dinge(사물)>이었다. 이 책은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사물을 체계적이고 시각적으로 분석한 사진으로 구성됐다. 신객관주의New Objectivity라고도 불리며 소재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이 방법은 비이성적인 자아를 폄하하고 모든 분야에서 예술가들이 객관적 실재thingness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p159>
표현주의에 반해서 생긴 예술사조 ‘New Objectivity’(신즉물주의 또는 신객관주의) 운동이 왜 생겼을까. 1920년 전후 나치세력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다다라는 예술사조와 함께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진실의 재현만이 잔인한 시대상을 가장 객관적으로 전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소위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의 전통은 사진 유형학(Photography Typology)의 주창자로 꼽히는 독일의 사진가 듀오, 힐라 보베저(Hilla Wobeser)와 베른하트 베허(Bernhard Becher)에 이어졌다. 1969년 베허부부는 <객관주의 사진Objective Photography>라는 전시회를 열었고, 베허부부의 첫 사진작품집 <익명의 조각: 기술적 구조의 유형학(Anonyme Skulpturen: Eine Typologie technischer Bauten, Anonymous Sculptures: A Typology of Technical Construction)>을 1970년 발간하였다. 이들의 관심은 형태에 대한 관심과 중립적인 시선에 있었다. 이들의 작업은 다큐멘터리에도 일정부문 영향을 미쳤다. 유형학적인 접근법은 주관적인 면을 최대한 배제한 객관적인 기록에서 출발하고자 하였다. 1929년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우리시대의 얼굴’이란 주제의 사진집은 잔더가 평생을 걸쳐 작업한 20세기 사람들의 유형학적 접근에서 1970년대 뉴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에로 이어졌다. 주관적인 시각이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한채 피사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최대한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각으로 남으려는 뉴토포그래픽스의 자세는 신객관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1975년 뉴욕 로체스터에 있는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에서 <뉴토포그래픽스: 인간이 바꾼 풍경New Topographics: Photographs of a Man-altered Landscape>는 뉴토포그래픽스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시회였다. 참여했던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와 루이스 발츠Lewis Baltz등은 현대의 풍경을 비개성적이고 현실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표현하려고 하였다. 지질학적인 조사를 위한 측량처럼 풍경을 감정이입 없이 객관적으로 촬영하려는 방식은 이후 영국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사진작가 도노반 와일리Donovan Wylie의 ‘Looking For America’ 프로젝트에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