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48. 사진의 주체성

by 노용헌

인물사진을 찍다보면 상대방의 의사를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그것이 모델 촬영회도 아니고, 특히 일반인들의 사진을 찍는 Street Photography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도구로서, 나의 사진적 스타일에 의해서 그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그것이 나의 작품이라 여기고,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내맘대로 해석하고, 내맘대로 가격을 흥정하는 행위는 과연 옳은 것일까.


사진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 아니면 찍혀진 대상(인물)입니까? 초상권도 있고, 건물을 찍었다면 건물의 주인 소유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풍경을 찍었다면 그 주인은 사진가에게 있는 것인지. 사진가는 마치 자신의 현란한 기술로써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착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이 준 선물을 사진가는 전달하는 매개자일지도 모르면서도. 대상인 인물과의 커뮤니케이션(교감)이 없이는 그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위적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어차피 내멋대로 생각하는 것이 나의 세계관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사회와 역사는 자신과 타자의 관계성에서 비롯된다. 그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투쟁은 언제나 진행상황이다. 사진찍기 행위를 하면서 사진가는 자신의 주체성으로 향한 길을 찾는다. 피사체와 사진가사이의 주체성은 과연 재현의 문제만이 아니라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과연 주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푸코는 [주체의 해석학](2001)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주체의 형성에 내포된 엄격성의 요구는 각자 그리고 모두가 따라야 할 보편적 법칙의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자신의 삶에 가장 아름답고 완성된 형식을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을 양식화하는 원리로서 제시된다.”

모든 규칙들을 떠나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일까? 획일화된 또는 규범화된, 정형화된 삶을 살지 않는다. 각자의 삶을 찾고자 노력한다. 주체적인 삶을 찾고자 탐색하는 과정, 주체화의 과정(le processus de subjectivation)을 거치게 된다.


개별적인 주체가 없이는 타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레비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만남의 상황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는 관련성과 타자의 실존은 나를 책임있게 하며, 내가 근본적으로 책임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나는 책임을 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Lenk 1997:58).” 타자와의 관계속에 끊임없이 주체의 질문은 계속된다. 캔디드 포토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타자의 생각을 사진가의 개입없이 온전히 그의 생각을 담을수 있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사진가는 타자의 삶, 울타리를 들어온 이방인, 무력자, 개입자로서 그의 삶의 들어온 존재인가. 과연 사진가는 개입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아니 연출하지 않은 그들의 진정성을 담을수 있는 것인가. 몰래 찍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그들의 모습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주체성과 타자성은 부딪힌다. 과연 사진이란 무엇이며, 그들에게 나의 사진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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