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53. 바라본다는 것에서 마주한다는 것

by 노용헌

우리는 사물이나 대상을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 저 사람은 뚱뚱하네, 저 사람은 키가 크네, 저 사람의 옷차림은 어떠하네하고, 그 사람의 시각적인 모습을 통해서 이런저런 선입관과 함께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 과연 원래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일까? 살아오면서 쌓여진 경험과 교육에 의해 고정관념을 가진 것은 아닐까? 그들이 사람이든, 꽃이든, 동물이든 우리는 시각적인 눈을 통해서 그들을 바라본다. 불교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의미로 여여[如如] 혹은 타타타라고 한다. 여여는 산스크리트어로 차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는 것 참 어렵다.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세상을 마구마구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스타일대로 세상을 해석한다.


철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틀을 제공하는가, 아니면 그 체계적 틀을 부수는데 일조를 하는가? 인식과 실천, 존재와 사유, 모든 면에서 우리는 어려운 숙제를 풀고 있다. 헤겔의 정신은 마르크스의 실천과 어떠한 점이 다를지.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유명한 말은 지금은 홈볼트 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베를린 대학의 현관 벽에 붙어있다. 마르크스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철학을 바꾸어 놓았다. 헤겔의 근대철학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의 철학은 현재 ‘지금’에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바라보라고 말을 할지.


사진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렌즈가 제공하고 카메라의 저장장치에 의해 사진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렌즈는 하나이기 때문에 외눈박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카메라의 높이(앵글)에 의해 보게 된다. 제한된 카메라를 통해서 사진가는 무언가를 바라보게 된다. 사진은 그 속에서 사진가가 발견한 의미들, 렌즈에 담겨진 의미를 관객은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발견한 의미는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도 전달되어 그 의미를 소통하게 된다. 단순히 사물을 바라보든, 깊이 있게 바라보든, 흘깃 보는 것이든,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사진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앞서 3장에서 논하였다.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 특히 인물 사진의 경우, 사진가는 찍히는 인물을 바라보고 포츄레이트를 촬영할 때 그 인물과의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단순히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를 떠나 사진은 사진가와 피사체간의 대화로 마주한다는 것이다. 바라보는 행위에서 마주하는 행위는 대상간의 소통을 의미한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일차적으로 사진가가 마주한 것들을 관객은 이차적으로 사진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마주한 사진을 통해서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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