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체계'를 읽고
물질성(Materiality)이란 물질 그 자체. 물질이 갖는 속성. 줄여서 물성(物性).
사물성(Objectness, Dinglichkeit)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의 개념에서 발전한 하이데가 사물성.
대상성(對象性, Objectivity)이란 대상과의 심미적 교감에 의해 수용 인지되는바 대상의 이미지와 실체를 가리킨다. 대상성은 그 자체 질량개념과 이동의 운동개념 및 심미적 시점변환개념을 포괄한다.
오브제(Object)로서의 사물(事物)
“사물은 모든 감각이 상호 조정되어 최적의 인식도에 이를 때 비로소 획득되고 경험된다. 그와 동시에 사물은 자신의 현존을 그 모든 지각적 영역에서 행사한다.”
-메를로 퐁티, 지각현상학, p135-
사물(Things)이란? 나는 세계속에 존재하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이 사물이고, 사물은 사진의 프레임안에 다루는 소재이자 대상이기도 하다. 사물은 단지 생물과 무생물, 무생물(의자, 나무, 돌, 흙 등)만을 아니고,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인공적인 것들만이 아니라 모든 주변의 것들은 다 사물인 셈이다. 요즘은 AI로 이러한 사물을 인식하고, 분류한다. 개라는 사물을 인식하고, 어떤 품종인지에 대해서 사물 분류를 통해서 인공지능이 발전했다. 사물은 존재론적 의미에서, 기능적의미에서, 소유와 소비의 개념을 통해서도 사물을 인식한다.
하이데거는 이 존재자 그 자체를 3가지 의미에서 다룬다.
1) 주변 세계의 사물(Umweltding), 2) 자연적 사물(Naturding), 3) 사물성(Dinglichkeit): 이 존재자의 구분에서 우리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physis)과 테크네(téchné)의 구분을 만난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의 주변 세계의 사물로 인간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손 아래 놓여 있으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전체에 통합된다. 반면에 자연적 존재자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인간에게 강요되어지는 것으로 물리적 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여기서 <존재와 시간>의 손 안의존재(zuhanden)와 손 앞의 존재(vorhanden)의 구분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번째의 사물성은 사물의 일반적 성질로 후설의 감각적 본질에 해당되는 것으로 후설이 형식적 존재론에 대립시키는 질료적 존재론(l'ontologie matérielle)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된다.
인간과 사물간의 경계는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이 미치는 우리의 인식체계(사물의 체계)는 기술의 발전으로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영화 <코드명J>에서,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의 직업은 대용량의 데이터를 뇌에 저장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일종의 데이터 택배원이다. 불의의 사고로 저장 용량을 초과해 데이터를 받아들인 주인공은 과부하로 죽지 않기 위해 세계 최고의 천재 해커를 찾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그를 만난 주인공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나타난 건 사람이 아니라 수조 속의 돌고래였기 때문이다. ‘정보’를 ‘해킹’이라는 방식으로 다룬다는 것만으로는 돌고래와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과 사물간의 정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간의 정보교환과 상호작용은 사물인터넷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인간과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를 ‘소비 사회’로 지칭하면서 소비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한 원동력이며, 나아가 소비주의가 일상의 다양한 측면을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기호의 소비를 포함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즉, 사물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가 소비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물은 그 자체 존재하지만, 사물의 이미지, 기호로서의 이미지는 무한히 복제되고 소비된다는 것이다.
사물이 자기 기능 속에서만 해방되는 한, 인간 또한 이 사물의 사용자로서만 해방된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이것 역시 진보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은 아니다. 침대는 침대이고, 의자는 의자다. 사물이 자신의 용도에만 소용되는 한,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어떠한 공간도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이 새로운 구조 속에서 사물들의 상관관계와 이들의 초월에 의해 열리고 활기를 띠고 확장될 때만,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공간은 사물의 실제적인 자유이고 사물의 기능은 형식적인 자유일 뿐이다. 부르주아의 식당은 구조화되긴 했지만 닫힌 구조였다. 기능적 환경은 활짝 열려 있고 자유롭지만 다양한 기능 속에서 구조는 상실되고 세분된다. 통합된 심리학적인 공간과 세분된 기능적 공간 사이의 중간 휴지를 통해서, 일련의 사물은 서로를 증명하면서 흔히 유일한 실내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갖는다. (P25)
형태는 딱딱한 껍질처럼 사물의 주위에서 외면화된다. 유동적이고 일시적이며 감싸는 형태는 일관성 있는 전체를 향해 다양한 메커니즘의 불안스러운 불연속성을 초월하면서 외양들을 통일한다. (P83)
우리는 형태가 어떻게 이야기하며, 이 담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보다 잘 알고 있다. 형태가 서로 관련이 있고 끊임없이 상응하는 형태에 관련하는 한, 형태는 완전한 담론의 양상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형태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최상으로 실현한다. 그러나 이 담론이 결코 단순한 것은 아니다. 형태의 분절이 늘 간접적인 담론을 감추는 것이다. (P95-96)
우리는 체계 전체가 기능성(fonctionnalite)의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색깔·형태·재료·배열·공간, 이 모든 것이 기능적이다. 모든 체제가 민주주의적이 되고자 하는 것처럼, 모든 사물은 기능적이 되고자 한다. (P100)
만약 내가 냉동을 위해 냉장고를 사용한다면, 냉장고는 편리한 매개물이다. 즉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냉장고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가 그것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도구는 결코 소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구는 나에게 세계를 참조하게 하기 때문이다. 소유는 늘 자기 기능으로부터 추상된 사물의 소유이며, 주체와 관련이 있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유된 모든 사물은 동일한 추상화의 성질을 띠며, 이들이 오로지 주체와 관련이 있는 한 서로 관련이 있게 된다. 따라서 그것들은 체계 속에서 구성되며, 체계의 도움으로 주체는 세계와 사적인 총체성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 하나는 흔히 쓰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되는 것이다. 전자는 주체에 의한 세계의 실제 총계의 영역에 속하고, 후자는 세계를 벗어나 자기 자신에 의해 주체의 추상적 총계의 계획에 속한다. 이 두 가지 기능은 서로 반비례한다. 극단적인 경우에, 실용적인 사물은 엄밀히 사회적 지위를 갖는다. 그것은 바로 기계다. 반대로 기능이 없거나 그 사용이 모호한 순수한 사물은 엄밀히 주관적 지위를 갖는다. 그것은 수집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양탄자, 탁자, 나침반이나 자질구레한 실내 장식품이 되지 못하고, 수집가가 멋진 자그마한 상(像)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멋진 사물’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사물이 된다. 더 이상 자기 기능에 의해 특수화되지 않는 사물은 주체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소유의 열정적인 추상화를 통해 모든 사물은 동등한 것이 된다. 이 경우에는 단 하나의 사물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소유의 계획의 실현은 언제나 일련의 사물 혹은 심지어 일련의 완전한 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물의 소유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늘 매우 만족시키는 동시에 매우 실망시킨다. 즉 모든 일련의 사물은 소유를 연장시키고 불안하게 한다. 그것은 성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관계가 유일한 존재를 목표로 삼는 반면, 좋아하는 사물을 소유하려는 욕구는 일련의 사물에 의해, 같은 사물의 반복에 의해 만족될 수 있거나 혹은 가능한 모든 사물이 어떻게든지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만족될 수 있다. 서로를 참조하게 하는 사물의 다소 복잡한 조직만이 충분한 추상화 속에서 각 사물을 구성하기 때문에, 주체는 소유의 경험이라는 체험된 추상화를 통해 사물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P134-135)
갇힌 사물은 무엇을 상징하는가(사물의 객관적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며, 사물의 매력은 바로 그 갇힘이라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자신의 자동차와 만년필과 아내를 빌려 주지 않는 것은, 이 사물이 질투 속에서 자기도취적으로 자아와 똑같은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물이 사라지거나 파손된다면, 그것은 거세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신의 남근을 빌려 주지 않는데, 바로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질투심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에 가두거나 간직하는 것은, 사물의 초상 아래서의 자신의 리비도다. 사실 그는 갇힘의 체계-수집은 이와 같은 체계에 힘입어 죽음의 불안을 해결한다-속에서 자신의 리비도를 도모하려고 한다. (P155)
우리는 사물의 객관적 체계화(인테리어 디자인과 분위기)와 주관적 체계화(수집)의 관점에서 사물을 분석했다. 이제 우리는 사물의 내포와 이데올로기적 의미 작용의 영역에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 (P171)
사물의 세계에서, 과거와 이국적인 것은 교양과 수입의 관계라는 사회적 차원을 갖는다. 유한계급은 고대·중세나 프랑스 섭정 시대의 가구를 구입하기 위해 골동품 상인에게 간다. 교양 있는 중류 계급은 ‘진짜’ 농민과 접촉하는 부르주아의 문화적 장식을 재창조하기 위해 벼룩시장의 골동품 상인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전 세대의 매우 부르주아화된 시골 장식이나 어느 ‘시대’의 어렴풋한 기억이 새겨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혼종 형태인 시골풍의 ‘시대 양식’에 매혹된다. (P237)
<사물의 체계>에서 보드리야르는 주체가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사물과 기호의 체계에 관련하는 방식과, 그러한 체계를 지배하거나 그것에 지배되는 방식을 기술하려고 한다.
이렇게 사물의 체계를 탐구하면서 현대 세계의 일상성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고찰하는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두 번째 저작 <소비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사물을 구입하고 소비하게 되는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비라는 새로운 인간 행위를 체계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소비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사회의 출현”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이제 새로운 사회인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가 일상생활을 움켜쥐게 됨으로써, 보드리야르가 주목하는 점은 인간이 전혀 다른 근거로 가치가 매겨지며, 사물의 연속적 사슬 혹은 사물의 소비라는 새로운 유형에 따라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일상생활을 조직하고 구조화하는 소비의 중심에 있게 된다. (P326)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현대인들은 사물이 우글거리는 사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사물을 소비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가 없다. 물론 사물의 소비의 장소는 일상생활이다. 일상생활이란 단지 일상적인 사실과 행위의 전체나 진부하고 반복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해석의 체계다. 보드리야르의 사유 세계에서 보면, 이 일상생활을 소비가 움켜쥐고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소비는 글자 그대로의 소비가 아니다. 소비는 하나의 신화를 이룬다. 그러면 ‘소비는 하나의 신화’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소비라는 신화는 사회 전체를 해석하는 체계를 가리킨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보드리야르의 표현을 빌리면, “소비는 현대 사회가 스스로 말하는 방식이다.” (P343)
먼저 시선은 높고 좁은 긴 복도의 회색 카펫을 따라 미끄러져 갈 것이다. 밝은색 널빤지를 이어 만든 벽 군데군데 구리 편자가 번쩍거린다(.... 조각상들을 차례로 지나면, 손이 조금만 스쳐도 미끄러질 것 같은, 짙은 색 나무 고리로 잡아맨 가죽 벽걸이에 시선이 머문다....). 그곳은 길이가 약7미터, 너비가 3미터 가량의 거실이다. 왼쪽 구석에는 커다란 가죽 소파가, 그 옆으로는 책들이 뒤죽박죽 쌓여 있는 두 개의 벚나무 책장이 놓여 있다. 소파 위로는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는 해도가 걸려 있다. 일종의 가죽 벽걸이 장식품인 비단 카펫이 굵은 구리 못 세 개로 고정되어 벽에 늘어져 있고 그 아래 작고 낮은 테이블 너머로 옅은 갈색 비로드 소파가 보이며, 곧이어 자질구레한 장식품이 놓여 있는 선반 세 개짜리 검붉은 작은 서랍장도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는 구슬, 돌로 만든 계란, 코담배, 사탕 그릇, 비취 재떨이, 진주조개 껍질, 은제 회중시계, 장식 유리컵, 크리스털 피라미드, 둥근 테두리의 세밀화 사진이 놓여 있다. 좀 더 멀리 (...) 상자들과 레코드판 등이 쌓여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옆에는 네 개의 격자 모양 금속 버튼만이 삐죽이 나와 있는 전축이 있다......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Les Choses)>(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