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57. 암상자(Black Magic)

by 노용헌

사진의 탄생은 은염류의 감광성에 대한 연구와 감광지 위에 놓인 대상의 음화상을 정착시키기 위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암상자(暗箱子)의 도구로서 시작되었다. 암상자는 어두운 암실 한 측면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편의 흰 벽이나 막에 상을 거꾸로 찍어내는 도구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사용되어왔으며 1569년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ovanni Battista della Porta)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처음 기구화 시켰다. 바늘구멍을 통해 어두운 방에 비쳐진 화상은 마치 동굴 속에서 상상하는 동굴 밖의 세상인 것이다.

은화상에 색소화상을 더하기 전까지는 사진은 흑백이었다. 우리는 잠을 잘 때 꿈을 꾸게 된다. 그 꿈은 컬러일까, 흑백일까. 생생하게 꾸었던 꿈도 사실은 흑백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기억은 잠재된 기억의 잔상일까. 어린 시절 흑백TV의 영상이 남아있지만, 흑백을 본 기억이 없는 지금의 아이들은 컬러로 꿈을 꿀까. 생생했던 장면들 곰곰이 생각해보면 컬러는 자기 암시일지도. 그럼에도 우리는 흑백의 여운을 잊지 못한다. 암상자에 비친 영상은, 어두운 극장 한구석에서 보았던 컬러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흑백의 영상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시신경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닌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눈을 감고 그린 그림은 검은 먹물로 칠해진 수묵화일지 모르겠다.

우연히 거리에서 본 장면들은 동굴 속에서 상상하던 나에게 커다란 울림이 되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실재, 미래의 허상이 내게 다가온다. 카메라는 나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1. 눈, 2. 펜, 3. 기억, 4. 놀이(장난감) 등등.


1.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Человек с Киноаппаратом]’는 1929년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에 의해 만들어진 실험적인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에서 보듯이 카메라는 감독의 눈을 대신하고 있다. 감독은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눈인 카메라로 현실을 지각하기를 바랬다. 새로운 시각에 대한 자각은 사진계에서도 new vision운동으로 있었다. 카메라는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에게 새로운 눈인 셈이다.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카메라를 ‘눈의 연장(an extension of my eye)’이라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시각의 연장이자 도구였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카메라 바디에 달린 렌즈가 눈의 역할을 할 것이다. 렌즈는 육안으로 볼수 없는 다양한 시각을 확장시켜준다. 광각에서부터 망원까지 특수한 렌즈까지 우리가 경험할수 없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다.

2.카메라는 작가에게 있어서 표현의 매체이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보거나, 자신의 생각을 일기에 쓰든, 무언가를 기록할 매체로서 카메라는 펜의 역할을 한다. 기록할 목적이든, 표현의 목적이든 카메라는 작가에게 총이나 칼보다도 더 무서운 무기, 연장인 것이다. 문학가에게 있어서 펜이고, 화가에게 있어서 붓인 것처럼, 카메라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고 표현하는 수단이다. 또한 저널리스트, 포토저널리스트에게 카메라는 무기이다. 네이팜탄으로 뛰쳐나오는 벌거벗은 베트남 소녀로 퓰리처상 수상을 한 에디 아담스는 “영화는 다 보고 나면 다시 보관소로 옮겨질 뿐이다. 하지만 사진은 항상 당신 앞에 걸려 있다. 이 때문에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라고 말했다. 사진가는 도로시 랭(Dorothea Lange)이 말한 ‘제2의 목격자:second lookers’이자 증언자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이럴 때는 고민에 빠져있는 것보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게 낫다. 나에게 여전히 카메라는 무기이기 때문이다”-지식채널e 2006.7.10

3.카메라는 기억의 수단이다. 동굴에 벽화를 그리듯, 사진이 발명된 이래 사진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은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우리는 카메라로(또는 스마트폰으로) 중독처럼 찍어댄다. 일상생활의 추억, 잊지 않기 위해서 기록을 남기는 카메라는 기억의 수단이다. 추억의 장 속에서, 먼지 쌓인 앨범 속에서의 가족의 기념사진은 한 개인의 기억을 되살려주는데 사진은 보는 이에게 말을 건다. 또한 기억은 복제에 복제를 거듭하고, 디지털시대에 무한 복제, 무한 반복되어진다. 거울 속의 거울이 무한 반복되듯이 심연으로 밀어 넣어진다(미장아빔 mise en abyme). 영화 <인셉션>에서처럼, 장자의 나비처럼 기억은 재생산되고 확대되어진다.

“이유 없이 문득 행복을 느끼는 날들이 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순간들의 행복한 기억이다.” - 로베르 두아노


4.호그와트의 ‘마법 사진’ 사진은 놀이다. 사진찍기 행위는 마치 총을 들고 게임을 하는 서든어택과 같이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사냥꾼과 같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인 사진을 통해서도 자신만의 놀이에 빠지기도 한다.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인간의 본원적 특징이 사유나 노동이 아니라 ‘놀이’라고 역설했다. 패러디라는 문화도, 문화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것들이 놀이의 충동에서 나온다. 디지털 시대에 사진은 놀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치 사진이라는 허상과 실상은 돈키호테가 지닌 상상력을 구현하는데 강력한 놀이도구로 사용되어진다. SLR클럽의 열광적인 사진의 대부분은 놀이(모델 촬영이나 피규어 촬영, 또는 그래피티와 코스프레)가 아닐지 모르겠다. 놀이는 하나의 표현일 것이다. 가벼운 놀이에서 벗어나 진지한 놀이, 성찰의 놀이가 필요할 때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작업은 예술이 아니라 놀이에 가까웠다” – 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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