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327. ‘소쉬르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by 노용헌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의 유명한 개념인 ‘푼크툼(Punctum)’과 ‘스투디움(Studium)’은 소쉬르에게는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의 개념일 것이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는 스위스의 언어학자이다. 소쉬르는 개인이 발화를 통해 의미를 생성하고, 이 발화 행위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추상적인 구조를 '랑그'라고 불렀고,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개인의 발화를 소쉬르는 '파롤'이라고 지칭했다. 기호학으로 연결된 이 개념은 기표(記表, signifiant,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signifié, 시니피에), 외연(外延)과 내포(內包)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소쉬르에게 있어서 언어란 사회적으로 합의한 규칙들에 의해서 공적인 의미는 랑그이며, 파롤은 말하는 사람의 어조나 환경,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사적인 의미인 셈이다. 같은 표현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꽃’이라는 단어는 실제의 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꽃’이라 표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렇게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꽃’도 쓰는 사람의 입장이나 체험, 내면에 고착된 관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단어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꽃이 지시하는 대상이나 꽃이 거느리고 있는 의미가 달라진다. 여기서 소쉬르는 표현하는 것(기표)과 뜻하는 것(기의)의 차이에 주목했다.


1.무엇이 재현되었는가

2.어떻게 생성되었는가

3.어떻게 지각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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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다소 웅변적인 이 책의 제목은 니체의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니체적 문제설정, 다시 말해 하나의 세기가 의문에 부쳐지는 문제제기적인 지점을 형상화한 정식이다. 이 문제제기적인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될 물음은 ‘동시대성’과 ‘사유 이미지’라는 이 책의 부제에 담겨 있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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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가 <언어의 이중 본질에 관하여>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문제는 “항상 되돌아와야 하는” 물음, 다시 말해 언어학의 처음과 끝인 원리, 요컨대 “언어적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문제”다. 소쉬르가 이후 <강의>에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공시태와 통시태, 랑그와 파롤 등의 구분을 제안한 것은 모두 언어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이 구분들이 이분법(dichotomie, dichotomy)이 아니라 이중성(dualite, duality)의 문제임을 지적하도록 하자. 위에서 소쉬르는 아직 시니피앙이나 시니피에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 둘의 관계를 이중성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중성은 이분법과 다른 것이다. 이분법은 방법론적 사유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관념(시니피에)을 먼저 다루고 이어서 형태(시니피앙)에 접근한다든지 형태를 먼저 다루고 나중에 관념을 천착한다든지 하는 것이 이분법적 태도이다. 소쉬르는 19세기 언어학의 문제점을 이러한 이분법적 태도에서 찾는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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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개론서에 종종 등장하는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은 주로 몇 개의 이분법들로 요약되어 있다. 이를테면 공시태/통시태, 랑그/파롤, 시니피앙/시니피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군의 이분법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모두 소쉬르가 심혈을 기울여, 다시 말해 비판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시적 영감으로 고안해 낸 것들이다. 예를 들어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 표현)’과 ‘시니피에(signifie, 기의, 내용)’라는 두 용어는 일반언어학 제3차 강의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 그러니까 1911년 5월 19일에 가서야 비로소 확정된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이러한 용어법적 혁신, 이른바 용어법적 추상화는 새로운 사유 질서의 도입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signifier'라는 하나의 기호(signe)에서 파생된 동사의 현재분사와 과거분사를 가리킨다. 이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서로 환원 불가능하면서도 분리 불가능하다는 사실, 다시 말해 이들의 이중 구속을 개념적으로 포착하기에 앞서 먼저 문법적으로, 용어법적으로, 언어적으로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용어법적 추상화 덕분에 새로운 기호학적 질서, 말하자면 환원 불가능하면서도 분리 불가능한 두 요소로 이루어진 소위 “기이한 결합 전체”로서의 기호학적 질서가 창출될 수 있었다. 공시태(synchronie)와 통시태(diachronie)는 ‘-chronie'라는 공통의 어근이 잘 보여 주듯 언어의 시간적 존재방식에 방점을 찍는다. ‘언어 상태(etat de la langue)’, ‘언어 변화(changement de la langue)’ 등의 용어에 비해 이들이 갖는 장점은 이러한 존재양태의 이중성을 함축적으로, 다시 말해 용어법상으로 잘 요약한다는 것에 있다. 공시태의 ‘공(syn-, 共)’은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키고 통시태의 ‘통(dia-, 通)’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 두 질서의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다. (P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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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통시태보다 공시태를 더욱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 이유는 다름 아닌 공시태 속에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 단위인 기호가 온전히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기호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기호학적 관계를 담아낼 수 있는 시간적 양태가 곧 공시태인 것이다. 이처럼 공시태라는 용어의 도입으로 새로운 사유의 질서, 말하자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관련된 이른바 관계적 사유의 질서가 ‘추상화’된다. 이 질서 위에 존재하는 언어는 어떤 것일까? 소쉬르의 ‘랑그’는 무엇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랑그’라는 새로운 용어는 공시적 질서 속에서 기호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의 총체를 지칭한다. 주지하다시피 소쉬르는 개인의 통제 하에 놓여 있는 파롤과 이러한 통제에서 벗어난 랑그를 구분한다. 전자는 실제적으로, 후자는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파롤은 랑그의 구체적인, 다시 말해 개인적인 실현이며, 랑그를 전제하지 않은 파롤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랑그는 궁극적으로 파롤로 실현되어야 한다. 언어활동을 랑그와 파롤의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의 총체로 규정함으로써 소쉬르는 구체적이면서도 전적인 언어학의 대상에 접근하고자 했다. (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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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는 공시태의 조건이고 공시태는 랑그의 조건이며 랑그는 기호의 조건이다.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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