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동굴의 비유 (Allegory of the Cave)
우리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살고 있다. 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플라톤은 《국가론(國家論)》 제7권에서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동굴 속에서의 인간은 허상과 실상의 본질을 파악한다. 사진은 그러한 공간을 담고 있다. 허상화된 현재이며 동시에 공간에 대한 비유를 전달한다. 사라져버린 과거를 담은 공간, 진행중인 공간, 갈망하고 욕망의 공간. 인간은 매일 공간을 이동하며 살아간다. 그 공간속에서 인간은 태어났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배우고, 공장이라는 공간에서 노동하고,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며 사회적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살아온 공간, 자신의 어렸을적 살았던 공간, 고향이라는 공간을 추억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얼마나 공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까.
고층빌딩, 성지, 유적지 등 물리적 공간은 사람들의 기억의 공간이다. 그 공간의 물적 욕망은 고층빌딩의 자본주의 공간, 신을 찾는 성지의 공간, 박제화된 유적지의 공간, 정치인의 공간, 노동자의 공간, 주택이란 공간 등등. 권위적인 공간이든 상호소통하는 열린 공간이든 공간은 인간의 욕망이 내재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인간은 동굴을 나와 새로운 공간을 배회한 후 노년의 마지막에 동굴로 회귀한다. 인간은 자신의 공간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공간을 배회하고, 그러한 욕망이 여행을 통해서 대리만족한다. 마치 유목민이 더 좋은 공간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첫 번째, 공간은 어떤 높이에서 보는가. 사진은 앵글에 따라 달리 보인다. 로우앵글인지, 하이앵글인지에 따라 다르다. 같은 공간, 같은 오브제일지라도 앵글(작가의 눈높이)은 그 성격을 다르게 표현한다. 카메라의 다양한 앵글은 작가의 시점이자 관점을 표현한다. 입체파 화가의 다중시점을 표현하듯이 카메라의 앵글은 사진가의 눈높이이자 시점을 보여준다. ‘그가 어느쪽을 보고 있는지’,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앵글이나 방향에서 결정된다. 앵글은 사진적 시각의 출발이다.
1.Why: 주제/사유(머리/생각),
2.What: 대상/인식(눈/camera eye),
3.How: 형식/표현(카메라/기법).
두 번째, 공간은 어떻게 보는가. 사진은 프레임의 예술이다. 사각 프레임의 공간은 현실의 공간을 해석하는 공간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프레임은 현실의 공간을 표현하는 공간인 셈이다. 현실의 공간과 해석된 공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공간을 상징한다. 태어날 때부터 동굴에 갖혀 살고 있는 죄수들이 있다. 그 죄수들은 의자에 묶여 있고, 앞만 바라보고 살아간다. 동굴안 공간과 동굴밖 공간은 현실의 공간과 상상속의 공간이고, 해석된 공간이다. 동굴속에 갖혀 살아온 죄수들은 지금의 우리들이며, 동굴밖 공간은 예술가들이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해석된 공간이다. 가시계의 세상에서 이데아의 세계로 인도하는 예술가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공간을 달리 해석한다. 우리가 보는 공간은 각자가 다른 동굴속에서 바라본 공간일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굴밖 세상의 진리를 사진가들은 말한다.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통해서 바라본 세상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감시키려고 한다.
세 번째, 공간에는 어떤 형상이 있는가? 공간속에는 형태가 있는 형상이 존재한다.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면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오브제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형상은 공간과 소통한다. 공간속에 존재하는 형상들은 형상이 가지고 있는 자율성과 그 의미들, 규범적 가치들에 의해 마주하게 된다. 북한산이라는 자연에도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형상들을 가진다. 나무들, 계곡의 물살조차도 많은 형태들이 존재한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형태, 건축에 이르기까지. 공간이 있기 때문에 사물이 그 안에 숨을 쉬고 존재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들과 수시로 변화되는 사물들이 공간속에 존재한다. 광장의 공간에는 수많은 형상들이 존재한다. 사진가는 그러한 공간을 선택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