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디지털 시대에서의 아우라Aura
1880년 설립돼 130여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까지 발명했지만 필름카메라 시장에서 디지털카메라 시장으로 넘어간 뒤 급속도로 위기에 처해졌고, ‘필름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스트먼 코닥은 2012년 1월 19일 미국 뉴욕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필름 시절에 사진은 기다림의 시절이었다. 내가 촬영한 것이 어떻게 나올지 필름현상을 하지 않고서는 알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공필름으로 촬영했을 때는 난감한 일이었다. 필름 현상소에서 현상된 필름을 보면 필름에서의 아우라는 쉽게 느낄수 있었다. 그야말로 희소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필름이 원본이고 그것의 원본성은 아우라를 뿜어내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892)은 사진미학에서 교과서 같은 이론서였다. 벤야민은 여기서 아우라(Aura)는 일종의 이미지 경험으로, 나무 그늘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서도 경험할 수 있다고 정의한다. 벤야민이 정의했던 아우라는 디지털 시대에서도 유효한가? 우리는 새로운 아우라에 직면하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은 본래 신비적 체험이나 작가와의 일체감을 맛볼 수 있다. 예술이 주술적이고 신비적인 힘(즉 아우라)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대중들은 이제 복제가 불가능한 예술의 시대에서 어디서나 보고 감상할수 있는 디지털시대로 대체되어 있다. ‘유일무이한 오리지널의 현재성과 일회성’인 아우라가 있어야만이 예술 작품인가? 수용자는 이제 작품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디지털 이미지 시대에서 희소성이 있는 예술작품이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아우라를 더 이상 느낄수 없을지도 모른다. 희소성 때문에 생기는 아우라는 없어졌을지 몰라도, 아우라는 과연 남아있는 것일까? 아우라는 상실인가 확장인가?
벤야민의 이론은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의 부정적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던 진보적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본의 아우라가 상실된 작품의 독창성은 붕괴되었지만 작품의 경외와 숭배에서 벗어나 비판적 거리를 확보할수 있는 것인가? 과연 벤야민은 진보적 가능성으로서의 아우라의 확장을 이야기했을까? 디지털 시대의 작품의 깊이와 작품의 진정성은 확보될수 있는 것인가? 스마트폰으로 아우라는 일상적 환경이 되었다. 무수히 많은 패러디속에서 우리는 작품의 진정성, 아우라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다.
벤야민은 역사적 관점에서 아우라가 왜 붕괴될 수밖에 없는지 이렇게 말한다.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로부터 떼어내는 일, 다시 말해 분위기(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현대의 지각 작용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대상을 감싸고 있는 아우라는 벗겨지고 작품의 진정성만이 남게 되었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 새로운 예술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못하고 있다. 벤야민의 아우라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절실한 ‘지금’이다.
디지털 기술은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비현실,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졌다. 디지털 아우라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시뮬라크르’의 아우라이며,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 ‘지금’의 아우라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