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사진아카이브로서의 광화문광장 기록
1)영상의 폭력성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에 출근하니 큰 대형사고로 TV는 속보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라크전쟁을 컴퓨터 게임을 하듯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의 코부분에 장착된 카메라로 포착한 화면을 TV로 보아왔던 것처럼, 영상의 폭력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내가 95년 동아일보에 입사할 당시에도 삼풍백화점 사고도 큰 대형사고였었다. 그때도 삼풍백화점에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고, 경찰관, 소방관, 기자들, 자원봉사자들 수많은 사람들이 뒤얽혀 우왕자왕했었다. 초기에는 적절한 폴리스라인, 취재라인도 없이 사고현장에 접근하는 기자들의 취재라인도 사실상 없었다. 우리는 대형사고가 터지면 대책위원회의 콘트롤 타워도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416 그날 보도는 오보에 연속이었다. 방송사는 전원구출이란 오보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고, 구조작업에서도 체계적인 구조는 없이, 많은 인력이 총동원되어 구조를 하고 있다는 말만 전하기 바빴다. 초기에 세월호 기록단이 만들어졌고, 장기화되어가면서 현재도 기록단 활동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에서 보듯이, 스펙터클로만 현실을 인지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통의 이미지’는 범람하며, 그 이미지들은 각각의 고통을 그저 그런, 대동소이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걸 보는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구경꾼, 겁쟁이, 관음증 환자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들의 중독되어 더 큰 고통의 이미지를 보아도 무감각하게 느껴질수 있기에 영상의 폭력적인 의미는 기록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사진이라는 속성이 진실을 재현한다고 믿는 것만큼 우리는 사진이 얼마나 왜곡할 수도 있으며, 폭력적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듯 싶다. 무심결 찍은 사진들은 얼마나 초상권을 책임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고민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왜곡보도할 문제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 더 신중해야 할 듯 싶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위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상 사적인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적 기록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기록을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올바른 기록을 하기 위해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사진을 최대한 배제하고 5W1H는 지켜져야 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누가, 왜 촬영되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은 기록으로서 가치보다는 예술적인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2)사진가의 관찰과 참여
나또한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 연장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나는 과연 나의 연장으로 무엇을 말하고 전달하고 있었는지. 사진을 한지도 27년이 지났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면서 항상 질문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객관적 시각에 대한 물음이었고, 기록에 기반을 둔 사진이 객관적 시각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지에 대해서. 항상 어느 편도 아닌 객관적 시각을 가지려 항상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정공법적인 접근 방식을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결코 중립적인 시각이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객관적 시각이라 주장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와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에 의해서 언제나 변질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계기가 되어서 기록한 광화문광장을 기록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작업으로 시작했던 2014년부터 촬영한 것은 현재까지 6년의 긴 작업을 매일 기록하였고, 6권 분량의 기록물이 되었다. 2014년 세월호, 2015년 백남기, 2016년 박근혜탄핵 촛불, 2017년 태극기집회, 2018년 미투, 2019년 조국사태에 이르기까지 광화문광장은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좌우, 진보와 보수의 갈등, 모두 광장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였다.
기록자로서, 증언자로서, 목격자로서,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접근하고 가야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고, 많은 담론과 이야기들이 잊혀져간다. 기록을 넘어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3)사진아카이브로서의 기록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제정 촉구 천만인 서명운동이 전국 20곳에서 펼쳐졌고 많은 시민들이 서명했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안전사회 건설, 조속한 인양, 미수습자를 가족품으로” 각 구호들을 외쳐왔고, 2주기를 맞는다. 그간의 모든 행동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기록되어야 한다. 구술기록, 유가족 인터뷰, 영상과 사진 모두 기록이 될 만한 것들은 기록으로서 가치를 가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기록을 하기 위해선 중요한 장소가 세 곳이 있다. 첫 번째 팽목항, 두 번째 안산, 세 번째 광화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곳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해 왔다. 전국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곳에서 2주기가 다가오는 지금 까지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광화문에서 행해지는 상황을 기록하였다. 아카이브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 정리는 필수적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세월호 72시간의 기록이 잘 정리되어 있다.(http://past.media.daum.net/sewolferry/timeline/) 또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세월호 이미지 검색을 하면 303,465건이 검색된다. 수많은 사진들이 아카이브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면 사진이 찍혀진 날짜와 어떤 장면이라는 내용이 함께 메타데이터가 기록되어야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페이스북 또는, 개인적인 기록을 해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들을 좀더 체계적으로 분류작업을 거친 후에 기록이 정리되길 바란다. 사진과 영상뿐만아니라, 세월호 관련 기사들, 그리고 수많은 웹자보들. 그리고 노란리본등 상징적인 그림, 물품들. 이 모든 것들이 세월호 기록물 보관소에 체계적으로 정리되길 바란다. (http://www.416memory.org/) 참사에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의 기억이 기록으로서 올바르게 쓰여지길 바란다.
4)사적 기록으로서 단상
광화문 광장 세월호 분향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2014년 5월부터 시작한 세월호 사진기록도 이제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다. 2015년 1년간의 사진을 일단락을 짓고, 또다시 2016년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 사진기록단도 아니지만, 그동안 광화문을 중심으로 사진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과연 나의 사진이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현장에서 보고 느끼며 함께 하려 했었다. 나는 사진이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는 힘을 믿는다.
나는 사진을 그리 잘 찍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때론 사진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에 감동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진학과 나와 사진 그렇게 밖에 못 찍냐고 말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지도 않는다. 그런 내게 있어 사진은 내가 기록하는 수단이고, 표현의 매체이다. 현장의 느낌을 담아내는 나의 목소리가 사진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현장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작가가 아니다. 또한 나의 사진에 대한 작품으로 돈을 버는 상업 사진가는 더욱 아니다. 나의 브랜드를 팔아먹는 유명 사진작가는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내 사진의 저작권은 현장의 모든 이에게 있다. 오히려 내 사진의 나온 사람들이 나의 사진의 주인이다.
나는 기자가 아니다. 기자의 생명은 자신의 관점을 표현할 매체가 있다는 데 있다. 내가 표현할 매체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나는 기자가 아니다. 단지 현재는 기자라는 껍데기 일 뿐이다. 어쩌면 샐러리맨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난 2년간 광화문에서 많은 사람들을 봤고 만났다. 그리고 오늘도 광화문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진을 찍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