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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13. 2020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79. 모방과 재현Mimesis and Representation

흔히들 예술은 모방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서구 철학사의 플라톤의 미학 정신에 있어 핵심이 되는 용어중 하나는 ‘모방(mimesis, 미메시스)’이다. 그의 모방은 이데아에 대한 모방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모방이라는 용어는 사물을 보는 대로 재생하기 위한 모방(imitation)인지 모사(copying)인지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기술(skill)은 무한히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벤야민의 <기술적 재생산 시대의 예술작품>의 예고를 가져왔다. 벤야민의 아우라의 개념도 모방에 대한 재해석일 것이다. “미메시스 속에 예술의 두가지 측면이 떡잎처럼 서로 꼭 포개어져 있다. 가상과 유희가 그것이다.” 벤야민은 ‘제1기술’과 ‘제2기술’과의 관계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가상과 유희시대는 현대 사회에서 그 개념은 모호한 시뮬라르크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벤야민이 말하는 ‘미메시스’는 우리가 이해하는 단순한 모방과 흉내내기의 의미를 넘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모방하려고 하는가?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주체)은 모방을 통해서 창조(창작, 예술)를 하려고 한다. 이런 시뮬라크르를 사유한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신은 그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들었으나, 인간은 죄 때문에 신과의 그 유사성을 잃어버리고 타락했으며, 우리는 시뮬라크르가 되었고 감성적 실존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도덕적 실존을 상실했다...., 이러한 설교는 시뮬라크르의 악마적인 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은 껍데기에 불과한 시뮬라크르이든 완벽하게 재현된 복제이든 우리는 무언가 모방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은 인식론적이든 존재론적이든 재현의 문제를 안고 있다. 미메시스의 개념이 그 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arung>(1944)에 의해서 미메시스는 발견되어진다. 미메시스가 주어진 어떤 대상을 단순히 비생산적으로 모방한다는 뜻을 넘어 “표현Ausdruck” 혹은 “서술Darstellung”의 의미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우리는 모방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들도 있지만, 스타일에 대한 모방에 대해서도 생각해봄직 하다. 사진적인 스타일의 모방, 까르띠에 브레송의 스타일이나 프랭크의 스타일, 등등 우리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진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함으로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한때 붐을 일으켰던 스타일등, 한 예로 느린셔터로 촬영하면 마치 예술작품인것처럼, 자신의 작품이 예술작품의 반열에 오른다고 생각했던 위험한 발상에서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단지 스타일의 흉내내기는 많은 아류들을 만들어 간다.      


벤야민에게서 미메시스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물음은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우선 그것은 자기가 아닌 다른 것들-사람이든 사물이든-에 자신을 유사하게 만들려는 태도를 가리킨다더 나아가 미메시스는 유사성을 지각하고 생산해내는 행위를 지칭한다하지만 행동방식으로서 혹은 지각방식으로서 미메시스의 의미는 주어진 어떤 대상의 비생산적인 모방 내지 감각적으로 파악가능한 유사성관계의 지각이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벤야민은 자연주의적 모사의 의미로 이해되는 미메시스를 거부한다미메시스의 의미는 서술(나타냄)이나 표현의 의미에까지 닿아있다. <발터 벤야민의 미메시스론최성만>     


그렇다면 미메시스를 넘어서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는 것인가? 미술에서 ‘재현’이란 사람이나 장소 또는 사물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은 ‘representational(재현적)’이라는 말처럼 거의 완벽하리만큼 닮아있다는 믿음으로 현실을 재현한다고 보았고, 미술은 이제 재현의 의미를 재현(represent)에서 재생산(reproduction)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사진을 보는 관점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가지로 이해되어 왔다우선 사진을 대상에 대한 정확한 닮음 혹은 복사로 보는 견해 즉 현실의 거울로 이해하는 경우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사진을 보는 것은 단순히 현실의 객관적 유사성에 국한되어  결국 사진은 근본적으로 현실의 모방이라는 것이다특히 19세기 당시 사진에 관한 많은 담론들은 단순히 사진의 모방력에 관계하고 있다사진적 재현을 부정적 측면으로 이해한 보들레르(C. Baudelaire)는 기계적으로 완벽한 사진적 모방은 예술가의 천재성과 탁월한 재능과 절대적으로 대립되며 사진을 언제까지나 예술의 종으로 간주했다그와 같이 몇몇 픽토리얼리즘에 관계되는 철학적 담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사진에 대한 대부분의 사진적 견해는 예술로서의 표현적 사진이 아닌 단순한 현실의 복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세기를 넘어오면서 사진을 더 이상 단순한 현실의 모사로만 보지 않았다한편으로는 사진을 현실의 모사(mimesie)가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현실의 변형으로서 사진을 보는 관점이고또 한편으로는 사진을 언어가 아닌 단순한 사진 고유의 현상 즉 현실의 자국으로 보는 경우이다. “모든 사진 영상은 현실의 변형적 번역 즉 문화적이고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인 코드로 분석된다라고 언급하듯이 사진을 현실의 변형으로 볼 때 사진적 행위를 상징적 문화적 그리고 이념적인 코드화(codificaion)”에 둘 수 있다.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는가이경률>       


이경률 선생의 말처럼, ‘현실의 복사’, ‘현실의 변형’, ‘현실의 자국’으로서의 재현의 문제는 사진에서 중요하게 생각해볼 문제이다. 나는 무엇을 재현하려고 사진을 찍는가? 사진속 프레임 안에는 무수히 많은 정보와 코드화된 이미지들이 존재하고, 그 의미론적인 해석(studium)은 비평에 의해서 혹은 시니피앵스(signifiance)으로 주관적 해석과 비평이 난무하다. 재현의 개념은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특정한 사유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의 의미, 그것을 어떻게 재현할지를 우리는 물을 것이다. 유사성이란 원본을 기준으로 하여 현상의 실체나 본질에 대한 재현을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주체와 대상에 대한 인식의 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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