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85. 회화와 사진

by 노용헌

미술은 덧셈이고, 사진은 뺄셈이다. 프레임에서 사진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빼내는 작업이라고 여겨왔지만 다시금 생각해본다. 과연 그럴까? 사진의 프레임에 요소를 더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명호 작가는 광활한 초원이나 사막에서 특정한 나무 등을 피사체로 선택하고 이 피사체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설치해 촬영한 작품을 만든다. 프레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만드는 사진에는 뺄셈이란 말이 무색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이란 전시회에서도 사진이라는 매체가 현대미술의 언어로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이제 ‘사진가’가 미술가(artist)로 불리는 맥락에 주목하자. 전시는 네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실험의 시작”, “개념적 미술(conceptual art)과 개념 사진(concept photography)”, “현대미술과 퍼포먼스, 그리고 사진”, “이미지 너머의 풍경: 상징, 반미학, 비평적 지형”이다.


사진의 발명이래 회화주의적인 사진에서 탈피해서 사진이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하기까지는 많은 사진가들의 노력이 있어왔고, 미국에서는 스티글리츠(Photo-Secession)와 유럽에서는 모홀리나기(New-Vision)가 대표적이며, 이 두 예술가는 사진의 표현영역을 확장시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사진의 초창기 오스카 레일랜더의 30장의 음화를 조합하여 만든 <인생의 갈림길>이란 작품과 헨리 피치 로빈슨의 회화적 효과를 이용한 작품, 구스타브 르 그레의 합성사진등 사진의 역사에서 살롱사진, 예술사진, 회화주의 사진으로 명명하고 있다. 이런 사진들은 회화와 비슷한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서 고무 인화법과 같은 특수한 기법이나 합성사진 같은 작위적 방법을 하였기에 take photo와 달리 make photo라 불리웠다. 현대에 들어와서 사진과 회화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현대미술과 마찬가지로 표현방식, 재료의 선택은 이제 작가에게 달려있고, 그 결과물은 작가의 사고, 고뇌, 진정성, 철학에 의해 작품을 만들어진다.


오스카 레일란더.jpg


미술과 사진은 그 역사상 서로 협력할 때도 있었고, 경쟁하기도 했었지만,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회화에서는 자연주의로부터 인상주의까지 그리고 추상화의 표현으로까지 미술은 계속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사진 또한 기계의 발전과 대중성, 그리고 사진가들의 의식은 나름대로, 보는 것과 기록하는 것(기록성과 표현성사이의)으로의 통찰을 거듭했다. 또 한번의 기술진보는 디지털의 시대일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에 사진이 발명된 1839년 이후, 아나로그의 시대에서 디지털의 시대는 또다시 매체로서의 혁명이 일어났다. 회화, 사진, 영화의 공통점은 프레임과 눈(eye)의 예술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마찬가지로 사진가 또한, 인물들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 그리고 빛의 효과 등, 관찰하고 있는 시선에 대한 시각 예술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화가들처럼 섬세하게 그림을 그리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사진가 또한 관찰을 하고 자신의 시각 경험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표현하는 것은 일맥 동일하다.


미술과 사진은 재현과 표현의 상반된 영역에서의 논란을 동시에 접하고 있다. 현대예술의 포스트모던은 퓨전과 절충이라는 이름하에 더욱 복잡하게 얽어 놓는다. 리얼리즘 예술과 낭만주의 예술을 거치면서 회화는 개인적인 관심에 더욱 깊숙이 관여하였고, 현대의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및 추상예술을 거치면서 재현의 진위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20세기 정신적 불안은 위조된 감정들과 인위적인 이미지들로 거짓을 말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사실(fact)보다는 허구(fiction)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회화는 거짓이다, 혹은 대부분의 회화는 거짓이다."라고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이 말하는 것처럼 회화는 이제 거짓말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또한 『거짓(말하기)Lying』의 저자 시셀라 보크(Sissela Bok)는 회피, 완곡어법, 과장등 동일하게 위장 혹은 미혹으로 이중성(duplicity)을 예술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파악한다. 사실 예술에서 기만(guile)과 속임수(fakery)를 이용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위한 그들의 예술적 속이기(deception)인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예술은 가상(Schein)이고, '가상'은 곧 '기만'이다. 예술가는 '가상'을 통해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있어 가상의 세계는 꿈의 세계이자, 무의식의 세계이다.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가상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레이션의 세계'로 전환된다. 시뮬레이션으로 전화된 예술작품은 무엇을 표현하고 의도하려고 하는지 수수께기와 같아서 그 파악은 불가능하고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사진과 회화 사이에서>의 책의 저자는 회화와 사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의 70년대 잡지 표지의 삽화가였다. 작품을 그리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찍어놓은 사진들을 이용해 다시 그림을 그린 이 삽화가에게 있어서 스토리텔링의 표현수단으로서 사진과 회화를 넘나든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완성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뿐만 아니라 연출가가 되어야 했다. 그의 사진은 신디 셔먼, 그레고리 크루드슨, 그리고 제프 월과 같은 내러티브 사진작가이자, 모델들을 캐스팅하여 연출하는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면 미술관에서 보유한 컬렉션이나 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의 컨셉을 통해서 개별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이러한 개별 작품이 내뿜는 아우라와 함께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야기, 스토리텔링을 큐레이터로부터 해설을 듣게 된다. 이러한 갤러리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2014>를 통해서 중세부터 현대까지 유럽 미술사를 영화로 감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bWOCBMKE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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