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 2021년
[1]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보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고기 족보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정녕 몰랐다. 하지만 어보는 절해고도에서의 외로운 생활을 달래 주었던 둘도 없는 소중한 동반자였다. 제목을 정해야 할 텐데 아무래도 그 일은 약용 아우와 상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약용 아우는 어보를 처음 만들 때부터 여러 가지로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언덕에 이르자 저 아래로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봄바람에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약전은 문득 십오 년 전에 처음 이 섬에 발을 들여놓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도 저렇게 파도가 무심히 밀려오고 있었다.
‘그때는 늦가을이었지.’
눈을 감자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약전의 기억은 십오 년 전의 가을로 거슬러 올라갔다. (P8)
불행은 경신년(1800) 유월에 선대왕(정조)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정순왕대비가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는데 선대왕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순왕대비는 조정을 노론 벽파에게 맡겼다. 그러면서 그동안 개혁을 주도했던 남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어서 천주교 탄압의 피바람이 몰아쳤다. 벽파는 천주교를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멸륜지교(滅倫之敎)라고 몰아붙이며 신도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잡혀간 신도들은 배교(背敎)를 강요당했고 신앙을 굽히지 않는 신도들은 새남터로 끌려가서 목이 달아났다. 이른바 신유년(1801)의 대박해다.
신유박해는 남인들을 탄압하는 데 더없이 좋은 구실이었다. 약전은 약종(若鍾)과 약용(若鏞) 두 형제와 함께 투옥되었다. 약종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순교했고, 앞으로는 천주학을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한 약전과 약용은 간신히 방면이 되었지만 벽파는 두 사람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약전과 약용 형제는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었고 모진 고문 끝에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흑산도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다는 서해의 절해고도다.
‘내 나이 이제 마흔세 살. 살아서 다시 한양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약전은 비통한 심정으로 한양을 떠났다. 그리고 나주에서 약용 아우와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P9)
흑산도 사리, 서해 먼 외딴섬 그곳에서 약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리에 안치된 약전은 승선네 토담집에 머물기로 했다. 승선네는 삼십 대 초반의 후덕한 아낙인데 젊어서 남편을 바다에 빼앗긴 과부다. 약전은 승선네의 시중을 받으며 제법 넓은 토담집 사랑에 기거하게 되었다.
유배라고 하지만 거주지 밖으로 나가는 게 금지된 위리안치(圍離安置)는 아니기에 약전은 그런대로 섬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유배에 처해진 죄인들은 월초와 보름에 한 번씩 관아에 출두해서 점고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약전은 워낙 외딴섬에 유배되었기에 가끔씩 흑산진(黑山鎭)에서 나장이 나와서 별점고(別點考)를 실시할 뿐 정기적인 점고는 받지 않아도 되었다.
유배된 죄인들의 숙식은 원래는 해당 지방관아에서 맡지만 제대로 돌봐 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유배된 사람들 중에는 구걸이나 동냥으로 연명하는 경우도 흔한데 그런 면에서 약전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주목사나 흑산진 별장 모두 야박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섬사람들의 인심도 후덕해서 지내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약전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P11-12)
젊은이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어망 속의 물고기를 가리켰다. 그럼 저 둘은 서로 다른 물고기란 말인가. 약전은 아무리 봐도 다른 데를 찾을 수 없었다.
“생김새가 아주 흡사하지만 이놈은 머리가 조금 큰 데다 눈이 더 까맣습니다. 그리고 물속에서는 훨씬 민첩하게 헤엄칩니다. 새끼들은 몽어(夢魚)라고도 부르는데 흑산도에는 저 가숭어 쪽이 훨씬 흔합니다.”
유심히 살피는 약전을 보며 젊은이가 조리 있게 설명해 주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젊은이의 말대로 두 마리가 그런대로 구별이 됐다.
“그렇구나. 과연 네 말대로 다른 데가 있구나.”
약전의 입에서 감탄의 말이 새어 나왔다. 젊은이는 예를 표하고는 어망을 들고 어민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약전은 멀어져 가는 청년의 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볼수록 친근감이 이는 젊은이였다. (P15)
과히 크지 않은 토담집 안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글을 읽는 목소리로 보아 어린 학동은 아니고 제법 나이가 든 사람 같았다. 목청은 제법 낭랑했지만 읽는 게 서툴렀다. 아마 선생 없이 독학을 하는 모양이었다.
약전은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여느 어민들의 토담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집이었다. 누굴까. 누가 이렇게 달빛 환한 밤에 낭랑한 목소리로 <동몽선습>을 읽고 있을까.
인기척을 느꼈는지 글 읽는 소리가 멈추었고 스르르 문이 열렸다. 글을 읽던 자가 약전을 알아보고 얼른 방에서 나왔다. 글을 읽고 있던 자는 아까 숭어를 들고 지나가던 바로 그 젊은이였다.
“선비님께서 어쩐 일로......”
“잠이 오질 않아서 밤바람을 쏘이러 나섰다가 글 읽는 소리가 들리기에 누군가 해서 들러 보았다. <동몽선습>인 것 같은데 그래 혼자서 글을 깨우쳤느냐?”
“여기는 궁촌인지라 서당이 없습니다. 혼자서 <천자문>하고 <동몽선습>을 읽고 있습니다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강독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민해 보이던 젊은이였는데 밤늦게 혼자서 글을 일고 있다니, 약전은 점점 젊은이에게 끌렸다.
“아무튼 용하다. 바다 일도 바쁠 텐데 틈을 내어 글을 읽다니.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본명은 장덕순(張德順)인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창대라고 부릅니다.” (P17)
아직은 바닷물이 찰 텐데도 잠녀(潛女)들은 부지런히 물속을 드나들며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점점이 떠 있는 테왁(해녀가 자맥질할 때 쓰는 뒤웅박)들이 제법 많아 보이는 게 물질 나온 잠녀들이 꽤 되는 것 같았다. “호잇”하는 숨비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물가에는 불턱(해녀들이 물질할 때 쉬는 장소)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잠녀들이 모여 앉아서 불을 쬐고 있었다. 아무리 추위에 단련된 몸이라고 해도 청명이 막 지난 마당에 오래 물질을 할 수는 없다.
“길례네가 잡은 개량조개 봤어? 제법 크던데. 그만한 놈의 전복을 잡았으면 횡재했을 텐데. 요즘은 통 전복이 잡히질 않으니 걱정이야.”
잠녀들을 이끌고 있는 대상군(大上軍)이 양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막 마흔 줄에 접어든 잠녀로 대상군치고는 특별히 노잠녀리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그칠 때와 인정을 베풀 때를 잘 가리며 잠녀들을 무리 없이 통솔하고 있었다. (P19)
얼마 전에 산 너머 예리에서 왔다는 처자가 대상군을 찾아가서 잠녀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했을 때 대상군이 의외로 선뜻 허락을 했다. 그것은 분명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렇게 뛰어난 물질 솜씨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데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다는 거야.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젊은 처자가 무슨 재주로 할머니 약값을 대겠어. 사정이 하도 딱해서 물질을 허락한 것일세.”
대상군은 별일 아니라는 듯 서둘러 얘기를 끝냈다. 제 동리를 놔두고 여기로 온 것도 그렇고 의외로 선뜻 허락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대상군이 모른 체하는데 그 이상 물고 늘어질 수도 없었다. 사리 잠녀들은 대상군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둘씩 흩어졌다.
그때 ‘호잇’하는 숨비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잠녀가 물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바로 예리에서 왔다는 전옥패였다. 저 아이는 누굴까. 어쩌면 저리도 물질을 잘할까. 예리에 살 때는 잠녀 일을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살결이 희고 고울 수가 없다.
도대체 저 아이는 누굴까. 잠녀들은 잠녀답지 않게 흰 살결에 이목구비가 수려한 전옥패를 의문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P24)
어보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섬사람들은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일부는 죄를 짓고 유배를 온 마당에 그래도 양반입네 행세를 하려고 괜히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며 뒤에서 쑥덕거리기까지 했다.
“족보야 양반네들에게나 있는 거지 우리에게도 없는 족보를 물고기에게 무슨 족보를 만들어 준단 말이오.”
그렇지만 약전과 창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물고기 족보가 완성되면 틀림없이 어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창대는 부지런히 낚시를 드리우고 그물을 던졌고 새로운 종류의 물고기가 잡힐 때마다 약전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물고기의 생태와 모습을 기록한 초(抄)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약전은 삶의 보람을 느꼈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약전은 외딴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찾은 것이다.
창대는 계속해서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잡아 올렸고 약전은 창대가 잡아 온 물고기를 문헌과 비교해 가며 특성과 습성을 빠짐없이 기록해 나갔다. (P28-29)
전옥패 앞을 스치고 지나갔던 시커먼 그림자는 천천히 방향을 틀더니 다시 전옥패에게 다가왔다.
전옥패는 흠칫했다. 그것은 상어도 대상군도 아니었다. 건장한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시야는 많이 흐렸지만 전옥패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누구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상군이 물질을 하기 전에 상의를 할 만큼 바다에 능한 남자, 일전에 자기 집을 찾아왔던 남자, 바로 창대였다. 창대는 눈에 동그란 테 같은 것을 달고 있었는데 아마도 물속에서도 훤히 본다는 물눈 같았다.
물눈을 낀 창대가 곧장 전옥패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허둥대는 전옥패에게 자루 하나를 건네주고는 얼른 사라졌다.
창졸간의 일이었다. 전옥패는 허겁지겁 물 위로 솟아올랐다. 손에는 창대가 건네준 자루가 들려 있었다. 이게 뭘까. 테왁에 의지해 숨을 몰아쉬던 전옥패는 손에 들린 자루를 펼쳐 보았다.
“......!”
전옥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루 속에는 흑립복(黑笠鰒)과 백립복(白笠鰒) 등 값이 나가는 전복이 가득했다. 그가 왜...... 어쨌든 이거면 당분간 할머니 약값은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전옥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물눈을 끼면 물속에서도 앞이 훤히 보인다고 하던데 그럼 창대 총각이 물옷 차림으로 자맥질을 하던 나를.....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전옥패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P36-37)
“빨리 괴사의 원인이 밝혀져야 잠녀들이 안심하고 다시 물질을 할 텐데. 큰일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지금 마을이 온통 뒤숭숭합니다. 소인도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창대는 은근히 약전이 나서 줄 것을 바라는 심정으로 대답을 했다. 창대는 약전이 만사에 달통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무리 괴이한 일도 살펴보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네가 돌아다니면서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도록 하거라. 일단 자세한 전말을 살핀 후에 이유를 밝혀보기로 하자.”
창대는 약전이 나설 뜻을 보이자 크게 기뻐했다. 학식 높은 한양 선비님이 나서 주신다면 괴사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대는 지금 전옥패가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빨리 괴사의 원인을 밝혀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옥패 처자를 도와야 한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자서 애를 태우고 있던 차에 약전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창대는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기분이었다. (P56-57)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었느냐?”
“구즛물(적조 현상)이 돌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합니다만 이것은 구즛물과는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구즛물이 돌면 바다가 온통 붉은색으로 변하고 고기들이 썩는데 지금은 바다도 깨끗하고 이 능성어는 살아 있는 듯 생생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른 고기들은 다 괜찮은데 능성어만 떼죽음을 한 것도 이상합니다.”
창대가 조리 있게 대답했다. 약전도 구즛물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적조 현상으로 인해서 어패류가 떼죽음을 당하고 또 그 어패류를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이 문헌 여러 곳에 기재되어 있었다. 선조 계사년과 계묘년에 적조현상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고 홍합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도 잇달아 죽었다는 기록은 이미 확인했다.
창대의 말대로 구즛물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큰 고기에게 먹힌 것도 아니고 독이 있는 고기에게 쏘인 것도 아니었다. 약전은 물할망이 잠녀를 잡아갔다는 따위의 말은 애초부터 믿지 않았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전에 물속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습니다. 뭔가 차가운 기운이 뒤에서 밀려오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확실치 않아서 선비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능성어의 떼죽음을 보니 아무래도 그때 소인이 헛것에 놀랐던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 역시 물속에 무슨 이상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렇다면 괴변이 또 발생할 수도 있는데 잠녀들이 물질을 다시 시작했다니 큰일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잠녀들은 용왕님께서 노여움을 푸셨다며 마음을 놓고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변사가 또 생길지 모른다. 약전은 서두르기로 했다.
“내가 대상군을 만나서 얘기를 해 볼 테니 이리로 데리고 오거라. 그리고 그 예리에서 왔다는 처자 말인데.”
약전이 갑자기 전옥패를 거론하자 창대는 긴장이 되었다.
‘그 처자의 집에 들려 볼 생각이다. 할머니의 병세가 깊다고 하는데 내가 의술에 대해서 별반 아는 건 없지만 그래도 고칠 수 있는 병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손을 써 봐야 할 것 아니겠느냐.“
창대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약전은 기뻐하는 창대를 보며 역시 자기 추측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속히 괴사의 원인을 밝혀내서 섬마을 사람들이 마음 놓고 고기를 잡고 물질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할 텐데 여태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으니 큰일이다. 더구나 지금 예리 처자의 신세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약전은 허둥지둥 대는 창대를 보며 어떻게 해서든 실마리를 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P74-75)
"여태까지의 정황으로 봐서, 또 문헌들의 기록을 취합해 볼 때 그렇게 판단이 선다. 거대한 냉수괴는 여기까지 떠밀려 오는 동안에 수천수만의 작은 수괴로 부서졌을 것이다. 작은 물 덩어리라고 하지만 그래도 큰 것은 산더미만 하고 작은 것도 집채만 할 테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물고기든 사람이든 얼어 죽고 말 것이다. 너는 요행히 아주 작은 덩어리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 듯한데 앞으로는 함부로 물에 들어가지 말도록 하거라.“
창대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것이다. 물속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차가운 물 덩어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죽음의 냉수괴들이 지금 흑산도 앞바다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하면 앞으로 어찌해야 합니까?”
변사의 원인이 밝혀졌지만 대책이 서질 않았다. 사람을 순식간에 얼려 죽이는 냉수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냉수괴는 무서운 존재지만 문헌에 의하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냉수괴는 북쪽으로 떠밀려가면서 차츰 위로 떠오르다가 수면에 이르러서 터져 버린다고 하니 머지않아 저절로 소멸될 것이다. 하지만 이때 피해가 제일 심하다고 하니 앞으로는 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 아무튼 이제 정체가 확실해졌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일러야겠다.”
창대의 낯빛이 백지장이 되었다. 큰일이다. 잠녀들이 지금 물질을 하고 있다. 빨리 제지하지 않으면 또 희생자가 나올지 모른다. 창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승선네가 허둥대며 뛰어 들어왔다.
“웬 호들갑이냐?”
“잠녀가 또 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지금 난리입니다.” (P87-88)
무녀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도대체 누가 부정한 짓을 저질러서 나를 곤궁에 빠뜨린 것일까. 그런데 그 부정한 짓을 저지른 것이 바로 부정한 씨, 부정한 배에서 태어난 아이였소.”
무녀는 격정을 이겨 내기 힘든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할머니는 기막힌 사연에 할 말이 없었다.
“그 부정한 년놈들이 나를 두 번씩이나 이 섬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소! 용왕님께서도 그 부정한 씨를 절대로 용서하시지 않을 거요!”
무녀는 다시 이전의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 언성을 높였다. 할머니는 소름이 쫙 끼쳤다.
“다시 말하거니와 봉규와 옥패 어미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옥패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아들을 잘못 둔 죄로 내가 대신 벌을 받겠으니 제발 옥패만은 살려다오.”
할머니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무섭게 쏘아보는 무녀의 얼굴에서 옛날 순박했던 며느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마음대로 살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오. 모든 것은 용왕님께서 심판하실 것이오. 죄가 있다면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용왕님께서 용서를 해 주실 것이오.”
무녀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P108-109)
전옥패의 할머니를 통해서 들은 사연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무녀가 바로 전옥패의 부친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그 불쌍한 여인이라니, 무슨 악연이 그리도 끈질기단 말인가.
“악심을 품고 옥패 처자를 물고기 밥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창대가 굿을 주관하기 위해 제단으로 오르는 무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천천히 단을 오르는 무녀의 얼굴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무녀를 보며 약전은 착잡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다. 천애 고아로 자란 몸으로 어렵게 올린 혼례인데 졸지에 서방을 빼앗기고 생과부가 되었던 가엾은 여인이다. 나이 어린 여인의 몸으로 팔도를 유랑하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몰리고 쫓긴 끝에 더 이상 갈 데가 없게 되자 쳐다보기도 싫었던 섬으로 다시 들어온 것인데 악연이 모녀로 이어지며 계속된 것이다.
‘악연이로고.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약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무녀로서는 자신과 전옥패 둘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P113)
조기를 말려 굴비를 만드는 게 이만저만 손이 가지 않는다. 조기는 배를 가르지 안고 통으로 말린 것이 맛도 좋고 값도 비싸게 나가기에 마을 사람들은 지금 조기를 소금에 절이고 볏짚으로 엮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 두름(스무 마리)씩 엮은 후에 널어서 말려야 한다. 소금에 절이고 볏짚으로 엮는 일은 나이도 있고 또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의 몫이고 서툰 사람들은 배를 가르고 내장과 알을 끄집어내는 따위의 허드렛일을 하는데 어느 것 하나 하루 종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고역이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힘들어 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곧 뭍에서 어상(魚商)들이 몰려오면서 조기 파시가 열릴 것이다. 조기 파시는 흑산도 어민들에게는 일 년 농사의 추수에 해당한다. 그러니 그 전에 일을 끝마쳐야 한다. 어민들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파시를 준비했다. (P135)
돈이란 처음에 모으기가 힘든 법이지 일단 어느 정도 모으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돈이 돈을 번다. 본래부터 이재에 재능이 있던 차현장은 새로운 환경에 금세 적응했고 일취월장하면서 재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면서 맨주먹으로 장사판에 뛰어든 지 이십여 년 만에 한양에서도 제일 큰 상단을 이끌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차현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변화의 물결이 쉬지 않고 밀려오고 있었다. 단꿈에 빠져 있다가는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자고로 재물은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적은 재물은 저만 성실히 일하면 모을 수 있지만 큰 재물을 모으려면 든든한 끈을 쥐어야 한다는 사실도 차현장은 잘 알고 있었다. 노론 벽파를 주도하고 있는 이조판서 김달순 대감은 지금 조정에서 실세로 통하는 세도가다. 차현장은 옷차림을 가다듬고서 김달순의 저택으로 들어섰다. (P140)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놀고먹는 사람 따로 있으면 안 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약전과 약용 형제는 개혁에 앞장섰던 것이다. 형제에게 체제공 대감은 좋은 후원자였다.
세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정조는 즉시 윤허를 내렸다. 그래서 정미년(1787)과 신해년(1791), 그리고 갑인년(1794) 세 차례에 걸쳐서 차례로 독점을 금하는 통공책(通共策)이 공표되었다. 통공책이 실시되면서 금난전권의 단물을 빨던 시전상인들은 철퇴를 맞았지만 그렇다고 두 형제가 바라던 세상이 오지는 않았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세상 이치다.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육의전을 대신해서 신흥 사상도고들이 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다. 소상인들에게는 그들이 시전상인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등장했다. (P151)
“부탁합니다. 가문의 흥망이 형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김조순이 김희순의 손을 꼭 잡았다.
“영안부원군의 깊은 뜻을 잘 헤아리고 있소. 미력하나마 힘을 다하겠소.”
김희순이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의 싸움은 과거에 유교 경전 해석을 놓고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며 언쟁을 벌이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는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쪽에 승산이 있다. 벽파냐 시파냐, 멀리 떨어진 한양에서도 조기 파시 매점매석으로 잔뜩 먹구름이 낀 흑산도와 같은 종류의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P167)
홍의춘이 통사정을 했다. 돈이 이렇게 돌지 않는 데는 차현장 상단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부상단의 돈줄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하고 부상단의 사정을 어찌 모르겠소. 돈도 돈이지만 부상들의 다리가 철각이 아닐 텐데 언제까지 등에 지고 나를 수는 없지 않소? 물량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박씨가 입을 열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부상단을 통해서 조기를 한양으로 올려 보내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약전은 잠자코 저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어민들의 절박한 사정이야 더 듣지 않아도 잘 안다. 그렇지만 지금쯤 차현장 상단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시서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금리 압박도 상당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끝까지 참고 버티느냐의 싸움인 셈인데 쾡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 당장 쓰러질 것같이 비실비실대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어민들이 떠오르자 약전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혹시 차현장 상단에서 몇 푼 더 쥐어 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동당 백이십 냥 정도면 그냥 팔라고 할까.
그러나 약전은 마음을 모질게 먹기로 했다. 이제 와서 맥없이 무너질 수는 없다. 어차피 빼든 칼이다. 그렇다면 결판을 봐야 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반드시 수가 있을 것이다. 약전은 일단 한양의 강신홍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면밀히 살피면 차현장 상단이 나라에서 금하고 있는 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 (P189-190)
“과연 넓은 식견에 뛰어난 혜안을 겸비한 인물이로군. 양이들이 상업을 장려해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그들도 안으로는 적지 않은 사정을 안고 있을 것이네. 양이들이 밀려오더라도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충실히 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나라가 되면 얼마든지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일세.”
“손가락 빨고 살면서 안분지족이 무슨 의미가 있고 저 먹고 살기 바쁜데 누가 누굴 배려한단 말입니까.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습니다. 안분지족이고 배려는 먹고살만할 때 하는 말입니다. 잘 먹고 잘 살려면 장인(匠人)들이 열심히 물산을 생산하고 사상들이 부지런히 재화를 유통시켜야 합니다. 양이의 예에서 보았듯이 부국강병을 이루려면 장사를 장려해야 합니다. 장사꾼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차현장은 거침이 없었다. 상인이 이문을 좇는 것은 유자(儒者)가 공맹을 따르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빈부의 차이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조리 못사는 나라보다는 나을 것이다.
“도고다전(都庫多錢)은 나라에서 금하고 있네.” (P196)
강신홍은 의아해 하면서 계속해서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서신은 말미에 이르러 영안부원군 김조순을 찾아가 볼 것을 권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영안부원군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렇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강신홍은 비로소 정약전의 의도를 눈치챘다. 병서에 이르기를 적의 적은 내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차츰 세를 키우고 있는 시파의 힘을 빌려서 벽파를 치라는 뜻이다. 강신홍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김달순이라는 벽을 무너뜨려서 차현장을 그 아래로 깔리게 만드는 계획이었다.
‘과연 손암이로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이런 계책을 생각해내다니.’
강신홍은 탄복을 했다. 어쩌면 강진에 유배 중인 동생 정약용과도 협의했을 것이다. 넘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마땅치 않으면 벽을 무너뜨리는 수가 있단 걸 왜 몰랐단 말인가. 김달순이라는 벽이 무너지면 차현장은 자연스럽게 그 밑에 깔리게 될 것이다.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충분히 김달순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이다. 주상이 친정을 선포하면서 자연스럽게 임금의 장인인 그에게 힘이 실리고 있었다.
흥분이 가라앉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부터는 차현장이 아니고 김달순 대감을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영안부원군이 선뜻 나서줄까도 걱정이었다. 정약전이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 끝에 계책을 세웠겠지만 시파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것이다.
강신홍은 눈을 감았다. 재물과 권세가 유착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약전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약전의 대책은 너무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P213-214)
“파시가 늦게 열리게 되었는데 조기들은 괜찮겠느냐?”
약전이 따르고 있는 창대에게 물었다. 창대 역시 연신 인사를 받기에 바빴다.
“날 어물들이라면 벌써 다 썩어 버렸겠지만 조기는 염장 처리를 잘 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곧 한양 시장에서도 조기 시세가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백성들의 제사상 위에도 오를 것이다.
차현장 상단은 산산이 분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차현장은 평시서의 고발에 의해서 한성부에 압송이 되었고 상단은 차입금을 갚지 못해서 풍비박산이 났다고 했다. 한때 한양 제일의 상단 소리를 듣던 차현장 상단은 그렇게 몰락했다. 권세를 업고 과욕을 부렸던 결과였다.
김달순 대감은 마지막 순간에 몸을 사리는 바람에 요행히 독직의 죄는 면했지만 비리가 드러난 이상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머지않아 영안부원군 김조순을 축으로 하는 시파가 벽파를 대신해서 권세를 잡게 될 것이다. 권불십년이라고 그동안 권세를 누렸던 벽파가 몰락하는 것을 보며 약전은 새삼 권력의 무상함을 느꼈다. (P245)
여어(鱺魚 농어).
큰 놈은 길이가 열 자 정도고, 몸이 둥글고 길다. 사, 오월에 나타났다가 동지가 지난 후에 자취를 감춘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낚시를 드리우면 많이 잡을 수 있다. 치어는 포농어 또는 깔다구라고도 부른다. <정자통(정자통)>이나 <본초강목(본초강목)>에 기재된 청국 농어와 우리나라 농어는 다른 점이 많다.
벽문어(碧紋魚 고등어).
길이는 두 자 정도인데 몸이 둥글고 비늘이 매우 잘며 등에 푸른 무늬가 있다. 맛은 달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담글 수 있지만 회나 어포로는 먹지 못한다. 매우 빨리 헤엄치며 밝은 빛을 좋아한다. 맑은 물을 좋아해서 그물을 치기 어렵다. 근자에 들어 수가 많이 줄었다.
약전은 창대가 채취해 온 어류들을 살피고 문헌들을 일일이 확인해 가면서 빠뜨리지 않고 적어 내려갔다. (P248)
“그게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니 고향에서는 모두 내가 죽은 줄 알고 있겠지요.”
고상운의 얼굴에 말할 수 없는 감회가 서렸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안남인 해상단에 끼게 되었나? 그리고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가?”
“얘기를 하자면 깁니다.”
문순득이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얼굴에 만 가지 감회가 교차하고 지나갔다.
“엄청난 풍랑이었습니다. 산더미만 한 파도가 사정없이 몰아쳤지요. 배는 며칠을 표류하다가 양자강 하구의 흑수양(黑水洋)에까지 떠밀려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파도에 휩쓸려가 버렸고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 사이에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이미 기진을 한 상태였고 갈증으로 목이 타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고 누워 있는데 아직은 죽을 운이 아니었던지 마침 부근을 지나가던 안남 상선에 구조되었습니다.”
고상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 된 것이로군.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네. 그렇게 큰 파도를 만나고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니 어찌 하늘의 보살핌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안남 해상단을 따라다니고 있나?”
“그렇습니다. 완 대인은 안남국 동경만(東京灣)에 있는 해방(해방 하이롱)이란 항구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큰 해상입니다. 주로 안남과 광동, 양주를 오가며 장사를 하고 있지요.” (P272)
“상운이 자네도 짐작을 하겠지만 젊은 여자가 혼자서 사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세. 먹고사는 것도 고달프고 괜히 집적거리는 자들도 있고..... 그동안 희영이가 자네 처를 많이 도와주었네. 자네 처는 끝까지 자네를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 기억도 희미해지고 생각도 바뀌는 법 아닌가. 그동안 희영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네 처나 양필이는 뭍에서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을 걸세. 나도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희영이와 자네 처가 살림을 합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잠깐, 양필이라니? 양필이가 누군가?”
고상운이 놀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고상운은 양필이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렇군. 자네는 양필이가 누군지 모르겠군. 양필이는 자네 아들일세. 유복자인 셈이지. 그때 자네 처는 아이를 가지고 있었네.”
“아들이? 내게 아들이?”
고상운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써 일곱 살이 되었네. 양필이도 희영이를 친아버지처럼 따르고 있네.”
“내게 아들이 있었다니.......”
고상운은 충격을 받은 듯 말을 더듬거렸다. (P314)
[2]
“잘 알겠습니다.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고향에 돌아왔는데 이렇게 발길을 돌려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야속하지만 역시 선비님 말씀을 따르는 게 순리일 것 같습니다. 가슴이 찢어져도 소인 혼자서 찢어지는 게 좋지 공연히 애꿎은 사람들 가슴까지 찢어 놓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그렇고 희영이도 그렇고 또 소안도 그렇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고상운은 끝내 울먹였다. 결심은 했지만 감정을 추스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네게 못할 짓을 시키는 것 같아 나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그러는 것이 순리일 것 같구나.”
“나도 선비님하고 같은 생각일세. 상운이, 자네 마음이 어떠하리란 걸 잘 알지만 역시 그 길이 모두에게 제일 좋을 것 같네. 참으로 힘든 결정을 했네.”
창대가 비통해하는 고상운을 위로했다.
“소인도 희영이를 잘 압니다. 그리고 혼례를 치루기 전에 처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처가 희영에게 재가를 한다니 두 사람의 인연도 무시할 게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선비님 말씀대로 흑산도 어부 고상운은 칠 년 전에 죽은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제 섬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안남 땅을 새 고향으로 알고 남은 인생을 안남의 어부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정이 다스려졌는지 고상운의 목소리가 한결 차분했다.
“소안이 왜 귀향을 극구 만류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미련의 불씨를 완전히 태워 버리지 않고는 둘은 진정으로 부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소안이 옳았습니다. 이제 모든 회한을 다 묻고서 돌아가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P35-36)
사촌서당(沙村書堂).
약전은 서당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서당은 승선네 토담집 맞은편 공터에 세웠는데 서당이 문을 열기까지는 창대의 공이 컸다. 창대가 앞장서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았다면 터를 닦고 나무를 다듬고 흙을 빚어서 서당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저 서당의 학동들과 어민들을 모아 놓고서 글을 가르칠 것이다. 모습을 갖춘 서당을 바라보면서 약전은 더없이 흐뭇했다.
복성재(復性齋).
약전은 당사의 이름도 따로 지었다. 예닐곱 살짜리 학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천자문>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주로 하지만 어한기에는 섬 어민들도 서당으로 불러 모아 간단한 글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차차 자리를 잡는 대로 약전은 실학도 가르칠 계획이었다.
정묘년(1807) 정월, 유배를 온지 어느새 육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약전의 나이도 어언 쉰 줄에 접어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이럴수록 여유를 잃지 말고 차분하게 만물을 관조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P49-50)
“서양인들이 활발하게 먼 바다로 나갔고 그 결과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동양보다 앞섰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명조의 환관 정화(鄭和)는 서양취보선(西洋取寶船)을 이끌고 원정을 단행하여 멀리 홀로모사(아라비아 반도의 호로무츠)에 이르렀고 휘하의 분견대는 목골도속(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모가디시오)까지 도달했습니다. 서양인이 동양에 도착한 것보다 먼저의 일입니다.”
누가 돌연 정화의 대항해를 거론하고 나섰다. 약전이 고개를 돌리니 예리에서 다닌다는 젊은이였다. 나이가 열일곱에서 열여덟 정도 돼 보이는데 총명한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예리 젊은이의 지적대로 명나라 환관 정화는 영락 3년(1405)에서 선덕 6년(1431)에 걸쳐서 일곱 차례의 대항해를 단행해서 동남아와 중동은 물론 멀리 아프리카까지 명에 복속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양인들의 항해보다 백년이 앞섰다. 하지만 그 후로 명은 해금정책(해금정책)으로 돌아섰지만 서양은 더욱 활발하게 해외로 진출을 하면서 항해의 주도권이 서양으로 넘어간 것이다. (P57)
“예리에 제법 행세를 하는 향반이 있는데 그 댁 서출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최 사과(司果)라고 부르지만 정식으로 벼슬을 한 사람은 아닙니다.”
양반댁 서출이라, 약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대로였다. 사과라면 정육품 무관직인데 아마도 선조 중에 사과직을 지낸 사람이 있던가, 아니면 그냥 듣기 좋으라고 주위에서 그렇게 불러 주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예리에서 행세깨나 한다니 재물도 제법 지니고 있는 듯했다.
서출이라, 약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진작 통감을 마친 최중문이 왜 향교에 진학하지 않았으며 서학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영조와 정조는 서얼허통절목(庶孼許通節目)을 여러 차례 선포해서 적서간의 차별을 없애려고 했지만 뿌리 깊은 차별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어미가 소실이라는 이유로 서자들은 여전히 많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렇듯 사대부로서의 출셋길이 막힌 서자들에게 실학과 서학은 새로운 탈출구였다. 박지원이 그랬고 이덕무가 그랬으며 유득공이 그러했다. 실학을 선구했던 학자들 중에서 서자 출신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실학과 서학을 가르쳐야겠구나.”
약전은 인재를 얻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P59)
주자학의 고루함에 흥미를 잃고 있던 약전에게 서학은 한줄기의 빛이었다. 청나라에서는 서양 선교사들을 흠천감(천문대)에 배치하며 서학을 장려했지만 조선은 청나라보다 훨씬 완고했고 패쇄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서자나 중인처럼 출세의 길이 막힌 사람들이 돌파구로 서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이다.
“내 일찍이 <기하원본(幾何原本)이라는 책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고 몰두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기하원본>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쓴 <기하원론>에 독일 수학자 클라비우스가 주석을 단 것으로 <수리정온(數理精蘊)>과 더불어 조선에 전래된 대표적인 서양의 수학 서적이다. 약전은 일찍이 <기하원본>을 읽고서 서양 수학의 논리적인 체계에 감탄을 했던 적이 있었다.
최종문을 비롯해서 서재의 학동들은 약전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약전의 입에서 나오는 말 모두가 그저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P60-61)
필방제는 청나라에서 포교를 한 포르투갈 선교사고, <영언려작>은 그가 집필한 천주교의 영혼론이다. 방성태는 어쩌면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논리정연하게 서학의 폐해를 논박했다.
“동주께서 서교에 대하여 그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서양인들이 내세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소생은 그 점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달리 논박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서양에서는 실용 학문이 크게 발달했고 또 숭상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동주께서 무엇 때문에 소생을 액외 원생으로 받아들이려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소생은 숭양서원의 원생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사촌서당에서 서학을 배우겠습니다.”
최종문은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어섰다.
“참으로 괘씸한 놈이로군. 동주, 당장 잡아다 물고를 내야 할 것입니다.”
“내버려 두거라.”
집강이 언성을 높이며 최종문의 멱살이라도 잡겠다는 듯 따라 일어서는 것을 박성태가 만류했다. (P95)
사실 걸고 넘어가려면 문제가 될 게 없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는 글을 배울 기회가 없는 어촌의 학동들에게 <천자문>이나 가르쳐 볼 요량으로 서당을 연 것이지만 최종문 같은 인재를 얻고 나니 욕심이 생겼고 그래서 서재에서 본격적으로 서학을 가르쳤던 것은 사실이다. 서학이 곧 천주학이라고 옭아매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약전은 위기를 느꼈다. 인재를 얻었다는 기쁨에 그만 잠시 방심을 했던 것이다.
동첨절제사 구상복은 서재를 휘둘러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약전에게 얼굴을 돌렸다.
“아무튼 서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군요. 산학과 천문술은 나라에서 금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학이 곧 천주학이고 천주학이 바로 서학이라고 하면 빠져나가는 게 그리 수월치는 않을 것이오.”
구상복은 약전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공과 사는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자세히 살피고 복성재에서 절대로 천주학을 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시오.”
동첨절제사의 말대로 서학과 천주학은 딱히 구별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약전과 약용 형제는 서학에 관심을 갖다가 천주학에도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유사옥 때 순교를 한 동생 정약종과 달리 약전과 약용 두 형제는 신앙을 포기했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천주학을 전파한 혐의를 받게 되다니, 난감했다. 아무튼 사실을 밝히지 못하면 극형을 각오해야 한다. (P103)
박성태는 거만한 태도로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잡아먹을 듯 약전을 쏘아보았다.
“축성 공역을 마쳐야 제 집도 고치고 출어도 할 수 있는데 공역 기간이 보름을 넘기면 출어 때를 놓치게 될 것이오. 집 없이 지내는 고생은 그렇다 쳐도 어민이 출어를 놓칠 수는 없는 일, 그러니 실학이 정말로 백성을 위하는 학문이라면 이럴 때 도움이 돼야 할 것이오. 어떻소? 축성 공역을 보름 안에 끝낼 수 있겠소? 그렇게 하면 나도 실학이 실사구시의 학이고 이용후생의 술임을 인정하겠소.”
뜻밖의 제안이었다. 축성을 보름 안에 끝내서 실사구시의 학문임을 증명해 보이라니. 구상복을 위시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약전에게 집중되었다.
“보름 안에 공역을 마치지 못하면 이 가을 고기잡이는 끝이다!”
박성태가 선동하듯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자 마을 사람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당장은 폭우로 인한 피해와 예정에 없던 공역으로 고초를 겪고 있지만 그거야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고 진짜 어려움은 가을 출어를 못 하게 되는 것이다. 가을 고기잡이를 허탕 치면 내년 춘궁기를 넘기지 못한다.
성벽이 무너지고 돌덩어리들이 산 아래까지 굴러 떨어졌다. 어림잡아도 섬사람 전부가 매달려도 석 달은 족히 걸린 대공역이다. 그런데 보름 만에 끝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억지였다. 무너져 내린 돌을 끌어올리는 데만도 두 달은 걸릴 것이다.
“억지입니다! 동주도 직접 산성을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P132-133)
“해를 구했습니다. 거중기 도면을 완성했습니다.”
약전이 구상복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관헌에게 걸어가려 하는데 최종문이 중얼거리며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약전은 잘못들은 게 아닌가 해서 최종문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최종문의 얼굴을 살피느라 손에 뭘 들고 있는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느새 최종문의 눈은 예전의 총명한 눈으로 변해있었고 손에는 분명히 도면이 들려 있었다. 약전은 빼앗듯 최종문에게서 도면을 건네받았다.
과연 도면에는 대활윤과 세활윤, 그리고 중유량과 허유량에 매달릴 도르래들의 지름과 설치 각도의 정확한 치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승량각과 횡량을 비롯해서 다른 부품들에도 자세한 수치들이 적혀 있었다.
약전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최종문이 끝내 해를 구한 것이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 복잡한 다승대종개입방의 해를 구한 것이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도면을 쥔 약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두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최종문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네 재주를 진작 알아봤지만 그래도 다승대종개입방을 단 이틀만에 풀 줄이야..... 아주 기쁘구나, 가히 청출어람이로다.”
약전은 최종문을 껴안고 어린아이처럼 껑충껑충 뛰었다. (P154-155)
장사를 하려면 어상이 좋을 것이다. 안창학은 기회를 봐서 일본이나 유구로 도주할 생각이었다. 배를 구하려면 당연히 어상이 제 격이다. 그렇게 되어서 안창학과 이소담은 멀리 나주 땅까지 오게 된 것이다.
괴로운 표정으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던 안창학의 얼굴에 돌연 살기가 일었다. 이 땅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배신자를 찾아서 응징하는 일이다.
작년 섣달 이십 일, 남진군이 박천에 주둔하고 있었을 때 홍경래 대원수는 김대린과 이인배 등의 배신자들로부터 피습을 당했다. 평서대원수가 갑자기 큰 부상을 당하면서 봉기군은 급히 가산으로 후퇴를 했고 사기가 땅에 떨어지면서 관군에게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일이 예상보다 크게 전개되자 덜컥 겁이 난 김대린과 이인배는 제 살길을 찾을 속셈으로 군사회의 도중에 갑자기 홍경래에게 칼을 휘둘렀다. 모반은 실패로 돌아갔고 모반을 꾀한 무리들은 잡혀서 처형되었는데 그중 대원수의 호군(護軍)으로 있던 자는 용케 현장을 빠져나갔다. 호군은 대원수의 신변을 책임지는 무관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 모반에 가담해서 홍경래 대원수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안창학은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배신자를 처단하기로 했다.
“그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소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꼭 찾고야 말겠소. 그자의 이름은 손현영인데 본시는 노비였다고 했소. 어쩌다 면천이 되어 광산에서 일하던 중에 후군장(後軍將) 윤후검 장군의 눈에 들어서 봉기군에 합류했고, 무예에 재질이 있어서 호군으로 발탁이 되었다고 들었소. 은혜를 원수로 같는다더니 그토록 큰 은혜를 입은 자가 대원수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그때 대원수가 피습을 당하지 않았다면 대사를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오. 그러니 절대로 손현영을 용서할 수 없소.” (P188-189)
김여훈의 눈가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군. 하면 추포사와 동문수학을 했다는 그자는 정주성이 함락될 때 용케 빠져나간 모양이로군.”
“그렇습니다. 소직은 정주성 진격 때 제일 선봉에 서서 돌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자를 찾기 위해서 성 구석구석을 다 뒤졌지만 종적이 묘연했습니다. 물론 시신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용케 성을 빠져나간 게 틀림없습니다. 비록 정주성에서는 놓쳤지만 세상 끝까지 좇아가서라도 꼭 내 손으로 잡을 겁니다.”
“추포사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정주는 조선 팔도 북쪽 끝이고 나주는 남쪽 끝일세. 행방을 감춘 잔반이 그자라고 단언하기는 무리일 것 같군.”
“지금 북변은 철통같이 봉쇄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고 왜국으로 가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김여훈이 품에서 작은 금붙이를 꺼내 들었다.
“뭔가? 여인네 비녀 같은데.”
“그렇습니다. 모친의 물건입니다. 폭도들이 곽산 관아를 급습했을 때 약탈을 당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자네 손에.......?”
“한양의 경상에게서 구했습니다. 웬 양반이 패물을 맡기고 어음을 끊어 갔다고 하더군요. 패물을 맡긴 자는 경상에게 어물 장사를 하려고 나주로 갈 거라고 했다고 하던데 소직은 그자가 정주성이 함락될 때 패물을 챙겨서 달아났을 거로 보고 있습니다.”
김여훈이 얼굴에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마주 않은 목사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자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겠군. 그런데 왜 거간꾼을 죽였을까?”
“아마 정체가 탄로 났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일 리가 있군, 하긴 흑산도 어민들이 거간꾼을 죽이지는 않았을 거야. 말다툼 좀 했다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겠나. 어쨌든 기왕에 나졸들을 성내에 풀었으니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보세.”
그때 형방이 들어오더니 나졸들이 돌아왔음을 고한다.
“그리 어상을 찾았다고 하더냐?”
목사가 얼른 물었다.
“근동 의원들을 모조리 뒤져 봤지만 그런 자는 없었다고 합니다.”
목사가 김여훈을 쳐다봤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처리를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흑산도 어민들은 일단 석방하는 게 좋겠습니다.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증인으로 부르면 되니까요.”
김여훈이 목사에게 창대와 정달현의 방면을 요청했다.
“그리고 거간꾼은 일단 사고로 죽은 걸로 공표해 두십시오. 그쪽이 진범을 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가? 좋아. 이번 살인 건은 아무래도 홍적의 잔당들과 관련이 있는 듯하니 추포사에게 일임키로 하겠네. 형방은 흑산도 어민들을 방면토록 하라.” (P211-212)
“광산에서의 고된 나날, 그리고 뼈를 깎는 무예 단련..... 어느 한 순간도 아씨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시 빨리 아씨에게 돌아가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봉기의 횃불이 오르면서 평서대원수를 가까이서 지키는 임무가 부여되었지요. 언제 아씨를 다시 뵙게 될까.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만.... 그날 이후로 소인은 밝은 대낮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숨어서 아씨를 지켜 드리기로 했습니다.”
서글픈 사랑.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소담은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그랬구나, 그런데도 나는 네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소담은 손달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내 정주성 최후의 날이 왔습니다. 소인은 성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아비규환의 지옥을 헤치며 아씨를 찾았지요.”
이소담은 달려드는 관군을 제압하고는 얼른 연기 속으로 사라지던 그림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손달이 너였구나. 그래, 그때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어. 그래서 나주성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 (P261-262)
열기가 밀려오면서 약전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보를 마무리 짓고 섬에서 보낸 세월을 글로 남기는 동안에 다시 계절이 바뀌어 섬마을에 성하(盛夏)의 더위가 찾아온 것이다. 여름이 되면 더운 건 당연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견디기 힘든 걸까. 약전은 몸이 이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어보는 끝을 보았고 이제 몇 장만 더 적으면 섬 이야기도 마무리된다. 약전은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붓을 들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
약전은 어보의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 애초에는 해족도설(海族圖設)이라 정하고 그림도 넣을 생각이었다. 약전은 그림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 하지만 약용 아우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그림은 빼기로 했다.
‘책을 저술할 때는 여러모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겁니다. 해족도설은 무척 귀중한 책입니다. 소제의 생각으로는 글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그림을 그려 넣는 것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체계를 바르게 세우려면 먼저 중심을 잡고 대강을 정한 후에 차차 상세히 기술하는 게 유용할 겁니다.’
약용 아우는 그림을 그려 넣기에는 흑산도의 형편이 열악함을 지적하며 차라리 글로 세세히 묘사하는 것을 권했다. 어부들 보라고 지은 책이 아니다. 약전은 순순히 약용 아우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림을 넣지 않기로 한 마당에 책 제목도 해족도설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약전은 어보의 이름을 자산어보로 정했다. 흑산어보라고 하지 않고 자산어보라고 부르기로 한데는 흑산이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산은 곧 흑산이다. 그런데 나는 흑산에 유배된 처지라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 자산이라 썼다. 자(玆)는 흑(黑)이다’
섬에서 후회 없는 삶을 보냈으면서도 뭍을 동경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약전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P275-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