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혁신도시는 왜 실패했나

by 영현담

제9장. 혁신도시는 왜 실패했나

공간만 옮긴 반쪽짜리 이주... 그들은 왜 금요일마다 서울로 떠나는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전국의 KTX 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혁신도시가 위치한 나주, 진주, 김천, 원주 등지에서 서울행 기차표는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진 행렬을 이룬다. 양복을 입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캐리어를 끌고 서울로 '퇴근'하는 행렬이다. 반면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시 무거운 표정으로 지방으로 내려온다. 이른바 '주말 부부', '기러기 아빠'들의 대이동이다.


정부는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방에 새로운 성장 거점을 만들겠다며 2000년대 중반부터 전국 10곳에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150여 개의 공공기관을 강제로 이전시켰다. 수십조 원의 혈세가 투입된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 균형 발전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난 지금, 혁신도시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건물은 번듯하게 지어졌지만, 평일 저녁 8시만 되면 도시는 암흑천지로 변하고 주말에는 유령 도시가 된다.


왜 실패했는가? 단순히 공무원들이 서울을 너무 좋아해서일까? 아니다. 혁신도시의 실패는 '공간'만 옮기면 '사람'도 따라올 것이라는 행정 편의주의적 착각과, 시장의 논리를 무시한 '나눠주기식 입지 선정'이 빚어낸 예견된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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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은 오지 않았다: '나홀로 이주'의 비극


혁신도시가 실패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가족 동반 이주율'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혁신도시 공공기관 직원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평균 60%대에 머물러 있다. 나머지 40%는 혼자 내려와 오피스텔이나 기숙사에 사는 1인 가구다.


왜 가족을 데려오지 않을까? 답은 간단하다. 삶의 질이 서울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교육'이다. 서울 대치동이나 목동의 학원가를 포기하고, 검증되지 않은 지방 신도시의 학교로 자녀를 전학시킬 부모는 많지 않다.


두 번째는 '배우자의 직장' 문제다. 공공기관 직원인 남편은 지방으로 발령이 났지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내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지방 혁신도시에는 배우자가 재취업할 만한 양질의 민간 일자리가 거의 없다. 공공기관 건물만 덩그러니 있을 뿐, 연관된 기업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은 '아빠 혼자 내려가는 것'이 된다. 가족이 함께 와서 소비하고, 아이를 키우며 뿌리를 내려야 도시가 살아나는데, 월급은 지방에서 받고 소비는 서울에서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혁신도시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시킨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의 주말 교통 유발자를 양산했을 뿐이다.


2. 제로섬 게임: 서울 인구가 아니라 구도심 인구를 빼앗다


혁신도시의 당초 목표는 수도권의 인구를 지방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혁신도시는 수도권이 아니라 인근 지방 구도심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전북 혁신도시의 경우, 유입 인구의 상당수가 서울이 아닌 전주, 익산, 군산 등 인근 도시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다. 나주 혁신도시 역시 광주광역시의 인구를 흡수했다. 새 아파트와 공원이 조성되니, 인근 구도심에 살던 사람들이 조금 더 쾌적한 환경을 찾아 혁신도시로 이사한 것이다.


이것은 지방 전체로 봤을 때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는커녕, 가뜩이나 힘든 지방 구도심의 공동화(空洞化)만 가속화시켰다. 혁신도시가 생기면서 인근 원도심의 상권은 붕괴되고, 학교는 폐교 위기에 몰렸다. 지방 내에서 서로 인구를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벌어진 것이다. 외부의 파이를 가져오지 못하고 내부의 파이만 쪼개 먹은 셈이다. 이는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3. 산탄총 식 분산 배치: 집적 효과(Cluster)의 부재


경제학에는 '집적 효과(Agglomeration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기업과 인재, 인프라가 한곳에 모여 있을 때 폭발적인 시너지가 난다는 이론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한국의 판교 테크노밸리가 성공한 이유다.


그러나 혁신도시는 이 경제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정치 논리'로 지어졌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서로 유치하겠다고 싸우니, 정부는 결국 공공기관을 전국의 10개 도시에 골고루 흩뿌리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후추통'을 흔들어 양념을 뿌리듯, 한국전력은 나주로, 국민연금은 전주로, 건강보험공단은 원주로 보냈다.


그 결과, 그 어떤 도시도 '자생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했다. 덩그러니 떨어진 공공기관은 섬처럼 고립되었다. 관련 민간 기업이나 연구소들은 굳이 인재도 없고 시장도 좁은 지방 혁신도시로 따라 내려가지 않았다. 시너지는 없었고 비효율만 남았다. 서울에서 회의 한번 하려면 길바닥에 4시간을 버려야 하는 업무 비효율은 덤이다.


만약 10곳이 아니라 거점 지역 2~3곳에 집중해서 '메가 혁신도시'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한 도시에 수십 개의 기관과 기업, 대학을 몰아넣어 인구 30만, 50만의 자족 도시를 만들었다면, 교육과 인프라 문제가 해결되고 민간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모여들었을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모두를 망친' 평등주의적 배분의 처참한 결과다.


4. 벽 없는 감옥: 퇴근 후가 없는 삶


혁신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직원들은 그곳을 "벽 없는 감옥"이라고 부른다. 직장 상사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퇴근 후 저녁을 먹으러 가면 옆 테이블에 다른 부서 팀장이 앉아 있다. 좁은 지역 사회에서 사생활은 사라지고, 업무의 연장이 계속된다.


문화생활의 부재는 더욱 심각하다. 영화관 하나, 스타벅스 하나가 들어오는 것이 뉴스가 될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다. 퇴근 후 자기 계발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길 곳이 없다.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을 가려면 주말에 차를 타고 인근 대도시나 서울로 나가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창의적인 혁신이 나올 리 만무하다. 젊은 인재들은 혁신도시 발령을 '유배'로 받아들이고, 기회만 되면 다시 서울 본사로 올라가거나 이직을 준비한다.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콘텐츠'로 완성된다. 하드웨어만 지어놓고 소프트웨어를 채우지 못한 도시는 껍데기일 뿐이다.


5. 결론: 강제 이주의 한계, 이제는 '빅딜'이다


혁신도시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공공기관 몆 개 옮긴다고 지방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상과 컴퓨터는 강제로 옮길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과 시장의 흐름은 강제로 옮길 수 없다.


사람들이 서울에 사는 이유는 그곳에 '기회'와 '욕망'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 이를 대체하려면 흉내만 낸 미니 신도시가 아니라, 서울에 버금가는, 혹은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지닌 압도적인 거점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전국에 예산과 기관을 잘게 쪼개 나눠주는 방식(N분의 1)은 실패했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방에도 서울과 맞짱 뜰 수 있는 '메가시티'를 키워야 한다. 그리고 공공기관이라는 '마중물'만 붓고 끝낼 것이 아니라, 대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거점 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며, 대형 병원이 함께 갖춰지는 거대한 '국토 대개조 빅딜'이 필요하다.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진짜 해결책은 시작된다. 혁신도시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 실패의 데이터는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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