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지방은 수도권의 '식민지'인가

by 영현담

전기는 지방이 만들고, 소비는 수도권이... 사라진 '에너지 정의'


식민지(Colony)의 정의는 무엇인가. 정치적 주권의 유무를 떠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그 본질은 명확하다. 본국을 위해 자원을 수탈당하고, 본국이 기피하는 오염 물질을 대신 처리하며, 부가가치는 본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다. 이 잣대를 2026년 대한민국에 들이대면, 우리는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지방은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이자 '환경 하청 기지'다.


수도권 사람들은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면 당연히 전기가 들어오고,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서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왔는지,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에 묻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지방의 일방적인 희생과 침묵이 깔려 있다. 지방 소멸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공간적 착취 구조'가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지방에너지.png

1. 전력 자립률의 거대한 모순: "발전소는 니네 동네, 혜택은 우리 동네"


전력 자립률 통계는 이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의 전력 자립률은 10% 미만이다. 경기도 역시 반도체 공장 등의 막대한 수요로 인해 자체 생산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도권 전체가 사용하는 전기의 상당 부분은 충남(석탄화력), 경북(원자력), 부산·울산(원자력)에서 끌어다 쓴다.


충남 서해안에는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의 절반이 몰려 있다.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전기 생산 기지다. 그로 인한 미세먼지와 환경 오염 피해는 고스란히 충남 도민들이 덮어쓴다. 동남권(부울경)과 경북 동해안은 어떤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해 있다.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지방이 입지만, 그 위험한 시설에서 만든 값싼 전기의 혜택은 수도권의 기업과 가정, 상업 시설이 누린다.


이것은 명백한 '위험의 외주화'다. 수도권 주민들은 님비(NIMBY) 현상을 내세워 발전소나 쓰레기 소각장 건립을 결사반대한다. 그러면서도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고 싶어 한다. 이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국가는 힘없는 지방에 위험 시설을 강제로 배정해 왔다. "국가 발전을 위해 희생하라"는 전체주의적 논리로 지방의 희생을 강요해 온 것이다.


2. 송전탑이라는 빨대: 비용은 누가 치르는가


전기를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보내려면 거대한 고속도로가 필요하다. 바로 초고압 송전탑이다. 경북 울진이나 강원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산맥을 깎고 마을을 가로질러 거대한 철탑을 세운다.


지난 2000년대 '밀양 송전탑 사태'는 이 모순이 폭발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수도권 사람들이 쓸 전기를 나르기 위해, 평생 농사만 짓던 지방의 노인들이 경찰 방패 앞에 서야 했다. 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의 땅값은 폭락하고, 주민들은 전자파 불안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 대가로 쥐어주는 보상금은 푼돈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송전 비용'이다. 전기는 멀리 보낼수록 손실이 발생하고, 송전 설비를 유지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한전의 적자가 심각하다고 아우성이지만, 그 적자의 상당 부분은 장거리 송전망 건설과 유지 비용에서 기인한다. 원거리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는 수도권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을, 왜 전 국민이 똑같은 전기 요금을 내며 분담해야 하는가? 이것은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낙제점이다.


3.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전기 먹는 하마들의 수도권 집착


4차 산업혁명,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력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전기 먹는 하마'다. 문제는 이 시설들이 기를 쓰고 수도권에만 들어서려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필요한 전력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도권에는 더 이상 지을 발전소 부지도 없는데, 이 막대한 전기를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결국 또다시 동해안의 원전이나 호남의 재생에너지 단지에서 장거리 송전탑을 꽂아 '수혈'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미친 짓이다. 상식적인 국가라면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이나 데이터 센터를 발전소 근처(지방)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송전 비용을 아끼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 센터가 전기료가 싼 외진 곳에 위치하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인력 수급과 땅값 상승을 이유로 수도권을 고집하고, 정부는 이를 묵인하며 또다시 지방에 송전탑을 꽂을 계획을 세운다.


4. 동일 요금제의 허구: 배달비는 받으면서 송전비는 왜 안 받는가?


이 모든 모순의 근원에는 '전국 단일 전기 요금제'가 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쓰는 전기나, 발전소 바로 옆 울진 주민이 쓰는 전기나 가격이 똑같다. 시장 경제 원리에 위배되는 기형적인 구조다.


우리가 배달 앱으로 음식을 시킬 때도 거리가 멀면 배달비를 더 낸다. 물류비가 들기 때문이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생산지에서 멀어질수록 송전 비용이 발생하므로 가격이 비싸져야 정상이다. 만약 '지역별 차등 전기 요금제(LMP)'가 도입되어 발전소 인근 지역의 전기료가 수도권보다 30~50% 저렴하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들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지방으로 내려간다. 전력 비용이 원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데이터 센터, 제철 공장 등은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발전소가 있는 강원, 경북, 충남, 전남으로 이전할 것이다. 기업이 가면 일자리가 생기고 사람이 모인다. 이것이 가장 강력하고 시장 친화적인 균형 발전 정책이다.


하지만 수도권 중심의 정치권과 기득권은 "수도권 역차별"이라며 이 논의를 막고 있다. 싼 전기의 혜택은 계속 누리고 싶고, 더 비싼 요금을 내기는 싫다는 도둑놈 심보다.


5. 쓰레기와 물: 식민지의 약탈은 끝나지 않았다


에너지뿐만이 아니다. 쓰레기(폐기물) 처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자체 매립지가 없다. 지난 30년간 서울의 쓰레기는 인천의 수도권 매립지에 묻혔다. 인천 시민들이 "이제 더 이상 못 받겠다"고 선언하자, 서울시는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자기 집 안방은 깨끗하게 쓰고 싶고, 쓰레기는 옆집 마당에 버리겠다는 심보는 전형적인 식민지 경영 방식이다.


물 문제도 심각하다. 수도권 2,600만 인구가 마시는 물은 강원도와 충청도의 댐에서 온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인 지방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에 막대한 제약을 받는다. 공장도 못 짓고 축사도 마음대로 못 짓는다. 수도권의 맑은 물을 위해 지방의 발전 기회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댐 주변 지역 지원금이라는 쥐꼬리만한 돈으로 퉁치고 있다.


6. 결론: 에너지 분권이 곧 지방의 독립이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빅딜'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에너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지방을 수도권의 배터리나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는 현재의 구조를 깨부수지 않으면, 그 어떤 균형 발전 정책도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해법은 명확하다.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 가격 경쟁력을 갖게 하라.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전기를 많이 쓰고 멀리서 끌어다 쓰는 수도권에는 더 비싼 요금을 부과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전기를 생산하는 지방에는 파격적인 요금 인하 혜택을 줘야 한다.


이것은 특혜가 아니라 '정상화'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 지방이 가진 자원(에너지)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 그것이 지방이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갖추는 첫걸음이다. 전력 차등 요금제 도입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수도권 일극 체제에 균열을 내는 가장 강력한 경제적 무기가 될 것이다.




이전 10화제9장. 혁신도시는 왜 실패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