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귀농은 낭만이 아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없다... 도시 난민들이 마주한 시골의 냉혹한 현실
텔레비전을 켜면 시골은 늘 평화롭다. 푸른 배추밭에서 땀 흘린 뒤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이웃과 정겹게 음식을 나눠 먹는다. 유튜브에는 낡은 시골집을 감성 카페처럼 고쳐 살며, 장작불에 빵을 굽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들이 넘쳐난다. 도시의 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골은 '도피처'이자 '낙원'처럼 포장된다. 정부 역시 "귀농하면 정착 지원금을 준다", "청년 농부를 육성한다"며 등을 떠민다.
하지만 단언컨대, 준비 없는 귀농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귀농·귀촌 인구의 약 10~20%는 3년 내에 다시 짐을 싸서 도시로 돌아온다(역귀농).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골 구석에서 신음하고 있는 '잠재적 실패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귀농은 낭만이 아니라, 처절한 '비즈니스'이자 낯선 문명과의 '충돌'이다.
도시인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은 농업을 '자연과 함께하는 소일거리' 쯤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주말농장에서 상추 좀 키워본 경험으로 귀농을 결심하는 것은, 동네 조기축구 좀 했다고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겠다는 것과 같다.
농업은 변수가 통제되지 않는 고위험 산업이다. 반도체 공장은 수율을 계산할 수 있지만,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1년 내내 피땀 흘려 키운 작물이 태풍 한 번에 쓸려나가고, 병충해 한 번에 폐기 처분된다. 운 좋게 수확을 해도 문제다. 가격 폭락은 연례행사다. 인건비와 비료 값은 매년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10년 전과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떨어진다.
초보 귀농인이 멘땅에 헤딩해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은 대기업 입사보다 어렵다. 지역 특산물(사과, 인삼 등)은 이미 그 지역의 베테랑 농부들이 꽉 잡고 있다. 판로를 뚫는 것은 더 어렵다. 결국 도시에서 벌어놓은 퇴직금을 밒 빠진 독에 붓다가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골의 흙은 정직하지만, 시장은 냉혹하다. '자연 속의 삶'을 꿈꾸고 왔다가 '빚더미 속의 삶'으로 전락하는 것이 귀농의 서늘한 현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귀농인들을 더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흔히 시골 인심이 후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끔 놀러 온 관광객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들어온 이방인에게 시골 마을은 굳게 닫힌 성(城)과 같다.
가장 대표적인 갈등 요인이 '마을 발전 기금'이다. 집을 짓거나 이사를 오려면 마을에 일정 금액을 내라는 암묵적인(때로는 노골적인) 요구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요구한다. 마을 상수도를 쓰려면 가입비를 내라 하고, 마을 길을 공사 차량이 지나가면 파손 보상금을 내라고 막아서기도 한다. 법적 근거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면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거나, 쓰레기 소각, 농약 살포 같은 교묘한 괴롭힘을 당한다.
이것을 단순히 시골 사람들의 탐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평생을 마을 공동체 유지에 헌신해 온 원주민들 입장에선, 숟가락 하나 얹지 않았던 외지인이 불쑥 들어와 혜택만 누리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문화적 충돌을 중재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는 '익명성'과 '계약'의 사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법만 지키면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반면 시골은 철저한 '관계'와 '관습'의 사회다.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는 말은 관심이 아니라 감시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도시 청년이나 은퇴자들이 이 숨 막히는 집단주의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짐을 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면 건강해진다"는 말도 옛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건강은 맑은 공기가 아니라 '상급 종합 병원과의 거리'가 결정한다.
앞선 장에서 언급했듯, 지방 의료 붕괴는 심각하다. 귀농인들이 주로 정착하는 군 단위 면 단위 지역은 상황이 더 처참하다. 밤에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거나, 갑자기 심근경색이 와도 갈 수 있는 응급실이 없다. 골든타임을 길바닥에서 허비해야 한다.
의료뿐만이 아니다. 편의점, 은행, 목욕탕 등 생활 필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배달 앱은 켜지지 않고, 택배 기사는 마을 입구까지만 온다. 도시에서는 슬리퍼 신고 나가면 해결되던 일들이, 시골에서는 차를 타고 30분을 나가야 해결되는 '미션'이 된다.
특히 문화적 소외감은 젊은 귀농인들을 떠나게 만드는 주원인이다. 영화관, 도서관, 카페, 쇼핑몰... 도시의 풍요로움을 버리고 선택한 '자연'은 생각보다 금방 지루해진다. 아이들 교육 문제는 결정타다. 학원은커녕 학교가 폐교 위기다. 결국 아이 교육 때문에 다시 도시로 나가는 '유턴족'이 발생한다.
정부는 귀농·귀촌 장려 정책을 지방 소멸의 대안처럼 홍보한다. 하지만 이것은 틀렸다. 도시에서 밀려나거나 은퇴한 인구가 시골 마을에 점처럼 흩어져 사는 방식으로는 지방을 살릴 수 없다. 이것은 '난민의 분산 수용'이지 '지방의 부활'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귀농인을 양산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비극이고, 국가적으로도 낭비다. 실패하고 돌아간 이들은 지방에 대한 혐오감만 갖게 된다. 농촌 빈집에 페인트칠을 하고 청년들을 불러 모아 '한 달 살기'를 시킨다고 해서 그들이 정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낭만적인 별장이 아니라, '안정적인 소득'과 '도시 수준의 삶의 질'이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무작정 산골 오지로 들어가라는 식의 귀농 정책은 폐기해야 한다. 대신 '압축 도시(Compact City)' 전략과 연계된 농촌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농촌의 거점 지역(읍내 등)에 아파트와 병원, 문화 시설을 집중시키고, 사람들은 그곳에 살면서 농장이나 일터로 출퇴근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즉, '직주근접형 농촌'이다. 시골에 살더라도 생활 수준은 도시와 비슷해야 청년이 온다.
또한, 개인이 맨주먹으로 농사에 뛰어드는 구조가 아니라, 기업형 영농 법인이 청년을 고용하고 월급을 주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월급 받는 농부'가 되어야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하다. 리스크는 기업과 시스템이 감당하고, 청년은 기술과 노동을 제공하는 구조다.
결론적으로, 귀농은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힘들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이제 통용될 수 없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며, 시골은 도피처가 아니다. 환상을 팔아 지방으로 유인하는 정책을 멈추고, 지방에서도 도시만큼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만드는 것. 그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