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하는 대로, 서울 하던 대로... '복사판 정책'이 낳은 예산의 비극
지방 소멸의 원인을 묻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자리 부족'이나 '수도권 집중'을 꼽는다. 물론 이것은 거시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현미경을 들고 지방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외부의 충격 못지않게 내부를 갉아먹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지방 편의행정(Administrative Expedience)'이다.
지방 재정 자립도가 낮다고 아우성이지만, 매년 연말이면 보도블록을 뒤집고 멀쩡한 청사를 리모델링하는 일이 반복된다. 수천억 원의 국비가 투입된 사업들이 정작 지역 주민들의 삶을 바꾸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진다. 이것은 예산의 부족 문제가 아니다. 예산을 집행하는 '상상력의 빈곤'과 '책임의 부재'가 만들어낸 구조적 비극이다. 지방을 죽이는 것은 서울의 흡입력이기도 하지만, 지방 스스로의 '게으른 행정'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지방 행정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동조화 현상(Synchronization)'을 들 수 있다.
어느 한 지자체가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전국 200여 개의 지자체가 일제히 그 아이템을 베끼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출렁다리'와 '케이블카'다. 몇 년 전, 한 지자체가 산악 지형을 활용한 출렁다리로 관광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자 전국의 지자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계곡, 강, 심지어는 저수지 위에까지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출렁다리만 200개가 넘는다. 초기에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나, 전국의 모든 산에 다리가 놓인 지금, 그것은 더 이상 관광 자원이 아닌 흉물스러운 철제 구조물로 전락했다. 희소성이 사라진 관광 상품은 경쟁력을 잃는다. 하지만 행정은 멈추지 않는다. 옆 동네 군수가 하니 우리 군수도 해야 하고, 옆 도시 의회가 예산을 편성하니 우리도 질 수 없다는 식이다.
축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방 소멸을 막고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며 개최되는 지역 축제는 연간 1,000건에 육박한다. 하루 평균 3개의 축제가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담하다. 이름만 다를 뿐, 천막을 치고 깔린 야시장 메뉴는 전국이 동일하고, 무대에 오르는 트로트 가수 라인업도 거기서 거기다. 지역 고유의 문화나 스토리텔링은 실종되고, '연예인 섭외비'와 '무대 설치비'로 예산의 대부분이 소모된다.
이것은 명백한 '지방 편의행정'의 산물이다. 지역의 특성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기획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시간이 걸린다. 반면, 남들이 성공한 모델을 그대로 베껴오는 것은 쉽고 안전하다. 실패하더라도 "타 지자체의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했다"는 변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사판 정책'이 반복되는 동안, 지방의 고유한 색깔은 지워지고 예산은 허공으로 증발한다.
지방 행정이 빠진 또 다른 함정은 '하드웨어 집착증'이다. 사람을 키우고(소프트웨어), 문화를 만드는(휴먼웨어) 일은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4년 임기의 선출직 단체장들에게 10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그들에게는 임기 내에 테이프 커팅식을 할 수 있는 거대한 건물이 필요하다.
그 결과, 인구는 줄어드는데 건물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청년 창업 센터', '문화 예술 회관', '혁신 지원 센터' 같은 그럴듯한 간판을 단 건물들이 지방 곳곳에 우후죽순 들어선다. 국비를 따와서 짓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 안을 채울 콘텐츠와 운영비다. 건물을 짓는 예산은 중앙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비용은 오롯이 지방 재정의 몫이다.
제대로 된 수요 조사 없이 지어진 이 건물들은 준공과 동시에 '돈 먹는 하마'가 된다.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에 고작 십수 명인데, 냉난방비와 관리 인건비로 매년 수억 원이 나간다. 결국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문을 걸어 잠그거나, 텅 빈 공간으로 방치되는 '유령 건물'이 속출한다.
이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의 폐해다. 건물을 짓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었을 뿐, 그 공간이 지역 주민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생략되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지역의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소상공인의 실질적인 판로 개척을 도왔다면 어땠을까. 콘크리트에 쏟아부은 예산은 회수할 수 없는 매몰 비용(Sunk Cost)이 되어 지방 재정을 더욱 옥죄고 있다.
이러한 편의행정을 부추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중앙 정부의 예산 배분 방식이다. 중앙 부처는 매년 수많은 '공모 사업'을 내놓는다. "스마트팜 단지 조성 사업", "도시 재생 뉴딜 사업" 등 수십억에서 수백억짜리 사업들이 쏟아진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이 공모 사업에 사활을 건다.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인지를 따지기 전에, 일단 '돈'을 따내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된다. 공무원들의 능력 평가는 '얼마나 많은 국비를 따왔느냐'로 결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업 기반이 약한 도시에 스마트팜 예산이 떨어지고, 청년이 없는 시골 마을에 청년 몰 조성 사업이 진행되는 촌극이 빚어진다.
이 과정에서 '매칭 펀드(Matching Fund)'의 함정에 빠진다. 국비를 지원받으려면 일정 비율(보통 30~50%)의 지방비를 의무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국비 100억을 따오면, 우리 돈 50억을 무조건 거기에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정작 지역 주민들이 시급하게 요구하는 도서관 건립이나 상하수도 정비 같은 기초적인 사업들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것은 지방 자치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정의 하청화'다. 지방 정부가 지역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 정부가 내려주는 숙제를 수행하는 하청 업체로 전락한 것이다. 고민 없이 내려오는 돈을 받아쓰는 것에 익숙해진 행정 조직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 뿌리 깊은 편의행정을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까? 단순히 공무원들의 기강을 잡거나, 감사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규모의 경제'와 '전문성'에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기초 지자체 단위는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 인구 3만, 5만의 소규모 지자체에서 도시 계획, 산업 유치, 문화 기획 등 모든 분야의 전문 인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성이 부족하니 베끼기에 급급하고, 예산의 규모가 작으니 나눠 먹기식 집행에 그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통합'의 필요성을 마주하게 된다. 생활권이 겹치고 산업 연관성이 높은 인근 지자체들을 묶어 '메가시티(Megacity)'로 행정 구역을 광역화해야 한다.
행정 구역이 넓어지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가능하다.
첫째, 중복 투자를 막을 수 있다. 옆 동네마다 똑같은 체육관, 똑같은 축제를 여는 낭비를 없애고, 거점 도시에 대규모 인프라를 집중시켜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
둘째, 행정의 전문성이 강화된다. 통합된 예산과 조직으로 분야별 전문가를 영입하고,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Grand Design)을 그릴 수 있다.
셋째, 불필요한 경쟁 대신 상생이 가능하다. A 도시는 산업, B 도시는 주거, C 도시는 관광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마이크로(Micro) 단위의 행정 시스템으로는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을 수 없다. 좁은 우물 안에서 서로 비슷비슷한 도토리를 키재기 하는 사이, 지방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가라앉고 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지방을 살리기 위해 무조건 예산을 더 달라고 떼를 쓸 때가 아니다. 그 예산을 담을 그릇 자체가 깨져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을 멈추고, 독 자체를 새롭고 튼튼하게 빚어내는 작업, 즉 행정 구역의 대대적인 개편과 광역화만이 편의행정의 사슬을 끊고 지방 행정의 효율성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비전이 없고, 전략이 없으며, 무엇보다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는 것이 진짜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