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개조 프로젝트: 판을 갈아엎어라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지난 20년의 노력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공공기관을 강제로 내려보낸 '혁신도시'는 반쪽짜리 성공에 그쳤고, 기업 도시니 규제 프리존이니 하는 정책들은 수도권의 강력한 자석 효과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실패의 원인은 명확하다. 기업에게 "제발 지방으로 가달라"고 읍소하거나, 푼돈 수준의 세금 감면 혜택을 쥐여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바보가 아니다. 인재가 없고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 갈 이유가 없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권유'가 아닌 '거래(Deal)'가 필요하다. 그것도 국가의 명운을 건 '초대형 빅딜(Grand Bargain)'이어야 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지방으로 본사를 옮기는 기업에게 해당 권역의 산업 독점권과 파격적인 규제 해방구를 내어준다."
대한민국을 5~6개의 메가 경제권으로 나누고, 각 권역에 특화된 산업의 '배타적 사업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공장을 짓는 수준이 아니다. 해당 산업을 영위하려면 본사와 R&D 센터 등 핵심 두뇌가 반드시 그 지역에 위치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 바이오·헬스케어: 충북 오송·충남
- 우주항공·방산: 경남 사천·창원
- 모빌리티·로봇: 대구·경북
- AI·에너지: 전북·광주·전남
- 금융·해양물류: 부산
만약 A기업이 바이오 신사업 진출을 원하거나 기존 사업을 확장하려면, 반드시 충청권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 수도권 내에서는 해당 산업의 신규 인허가 자체를 불허하거나, 징벌적인 수준의 과밀 부담금을 부과하여 사실상 사업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지정된 권역으로 이전하면 그 안에서는 기존 법령을 초월하는 독점적 지위와 자유를 보장한다.
기업, 특히 한국의 재벌 대기업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당근은 명확하다. '법인세 몇 푼 깎아주기'로는 어림없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영권 승계'와 '규제'다. 이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
첫째, 본사 이전 시 상속세 파격 감면이다.
본사를 지방 거점 도시로 완전히 이전하고, 현지 채용 비율을 일정 수준(예: 70% 이상) 유지하는 기업에게는 상속세 및 증여세를 획기적으로 감면하거나, 가업 상속 공제 한도를 무제한으로 늘려주는 식의 '빅딜'을 제안해야 한다. 이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지방에 내려가 양질의 일자리 수만 개를 만들고 지역 경제를 살린다면, 상속세수 감소분보다 국가 전체가 얻는 이익이 훨씬 크다. 이는 특혜가 아니라, 지방 소생을 위한 교환이다.
둘째, '네거티브 규제'를 넘어선 '규제 샌드박스 영구화'다.
지정된 권역 내에서는 생명 윤리법, 개인정보 보호법, 각종 환경 규제 등을 유예하거나 면제해 줘야 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를 '원격 의료 및 디지털 헬스케어 특구'로 지정했다면, 서울에서는 불법인 원격 진료와 의료 데이터 활용 사업을 강원도에서는 제한 없이 할 수 있게 풀어주는 것이다. 기업은 규제를 피해 혁신을 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짐을 싸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지금까지의 지방 이전은 생산 라인(공장)만 내려보내고, 의사 결정을 하는 본사와 연구 인력은 서울 강남이나 판교에 남겨두는 식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지방은 영원히 '하청 기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고연봉을 받는 임원, 기획자, 연구원들이 내려가야 그들의 가족이 이동하고, 그들을 위한 소비 시장과 교육 시장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 '빅딜'의 대상은 명확히 '본사(Headquarters)'여야 한다. 등기 임원의 80% 이상이 해당 지역에 상주하고, 이사회가 그곳에서 열려야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서울에 있으면 2류 기업, 지방 거점으로 가면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정책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도권은 비워두는가? 아니다. 수도권은 제조업과 굴뚝 산업을 과감히 걷어내고,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경쟁하는 '글로벌 금융 및 고부가가치 IT 서비스 허브'로 재편해야 한다.
수도권의 과밀을 유발하는 제조업 본사와 공장은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그 빈자리를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부, 핀테크 스타트업, 문화 콘텐츠 기업들로 채워야 한다. 이것이 수도권도 살고 지방도 사는 '국가적 분업'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정부가 기업의 위치까지 정해주느냐"며 공산주의식 강제 배분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시장 경제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의 지도를 펼쳐보라. 미국이 강한 이유는 모든 기능이 뉴욕에 몰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국토 전체가 거대한 '기능적 분업 체계'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역할이 나뉘어 있다.
워싱턴 D.C : 정치와 행정의 중심이지만, 경제 권력과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뉴욕(월스트리트 ): 세계 금융의 심장부로 자본의 흐름을 통제한다.
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 : 빅테크와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기술 혁신을 주도한다.
텍사스 & 조지아 : 최근의 흐름은 더 극적이다. 저렴한 부지와 세제 혜택, 유연한 노동 시장을 무기로 테슬라,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글로벌 제조업의 거점으로 급부상했다.
미국 기업들이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로 본사를 옮기는 것은 정부의 강요 때문이 아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가는 '합리적 이동'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수도권이라는 하나의 권역에 워싱턴(정치), 뉴욕(금융), 실리콘밸리(IT), 심지어 공장 지대(제조)까지 모두 쑤셔 넣으려 하고 있다. 이러니 터져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은 명확하다. 프랑스가 '메트로폴' 정책으로 파리의 기능을 지방 거점 도시로 분산시켜 균형을 맞췄듯이, 그리고 미국이 각 주(State)별로 특화된 산업 클러스터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듯이, 우리도 국토를 '전략적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지금 제안하는 '빅딜'은 기업의 팔을 비트는 규제가 아니다. 비좁은 수도권이라는 우물 안에서 질식해가는 기업들에게, 텍사스나 조지아 같은 드넓은 기회의 땅을 열어주는 것이다. 규제는 없애고, 세금은 깎아주며,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여 기업 스스로 짐을 싸게 만드는 '한국판 엑소더스(Exodus) 전략'이다. 이것이 국가 개조의 첫 단추이자,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