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대학 혁명: 지방대 생존법, 입학이 곧 취업

by 영현담

앞선 장에서 대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을 '빅딜'로 제안했다. 하지만 기업 경영진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사람'이다. "지방에 가면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핵심 반대 논리다. 반대로 지방 대학생들은 "일할 기업이 없어서 서울로 간다"고 말한다.


이 '닭과 달걀'의 딜레마를 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방 대학을 상아탑(Ivory Tower)이 아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찍어내는 '취업 사관학교'로 180도 개조하는 것이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잠시 접어둬야 한다. 지방대가 살길은 '학문'이 아니라 '직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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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도 1기업, '기업 계약학과'의 전면화


가장 강력한 유인책은 '계약학과(Contract Department)'다. 이는 대학과 기업이 계약을 맺고, 입학생에게 장학금과 졸업 후 100% 채용을 보장하는 학과다. 이미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삼성전자)나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국방부) 등이 성공 사례를 보여주었다. 이를 전국의 거점 국립대로 전면 확대해야 한다.


17장에서 언급한 '권역별 특화 산업'과 연계하여, 해당 지역 대학의 커리큘럼을 입주 기업이 직접 짜도록 '맞춤형 매칭'을 해야 한다.


- 울산대 - 현대자동차 모빌리티 학과: 미래차 설계 및 공정 전문가 양성


- 포스텍/경북대 - 포스코·LG 배터리 소재 학과: 이차전지 및 철강 소재 특화


- 충남대 - 한화·LIG 국방우주공학과: 대전의 국방과학연구소와 연계한 방산 및 항공우주 인재 육성


- 전북대 - 효성·현대차 탄소수소학과: 탄소섬유 신소재 및 수소 상용차 R&D 인력 양성


- 강원대 - 네이버·삼성바이오 데이터헬스케어학과: 춘천 데이터센터와 원주 의료기기 클러스터를 잇는 빅

데이터 및 바이오 융합 인재


- 충북대 - SK하이닉스·셀트리온 바이오반도체 학과: 오창·오송 산단의 핵심 인력 공급


- 전남대 - 한전 에너지공학과: 나주 혁신도시 에너지밸리 맞춤형 전력 IT 전문가


단순히 MOU 한 장 맺고 특강 몇 번 하는 수준이 아니다. 기업의 임원과 엔지니어가 겸임 교수로 들어와 현장 기술을 가르치고, 3~4학년은 아예 공장과 연구소에서 인턴십으로 학점을 이수하게 해야 한다. "이 학과에 들어오면 대기업 사원증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때, 서울로 향하던 인재들의 발길을 지방으로 돌릴 수 있다.


2. '학과 이기주의' 타파와 학사 구조 유연화


지금의 지방 대학은 수십 년 전 만들어진 학과 칸막이에 갇혀 있다. 산업 트렌드는 AI와 배터리, 바이오로 급변하는데 대학은 여전히 철 지난 이론 중심의 학과 정원을 유지한다. 교수들의 밥그릇 챙기기 때문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무(無)학과 제도'나 '자율 전공제'를 넘어, 산업 수요에 따라 학과를 수시로 만들고 없앨 수 있는 '모듈형 학사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기업이 "3년 뒤에 AI 로봇 제어 인력이 100명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대학은 즉시 관련 '프로젝트 학과'를 개설하고 인력을 양성해 공급해야 한다.


취업률이 저조하거나 산업 수요가 없는 학과는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그 정원을 미래 산업 분야로 몰아줘야 한다. 대학의 주인은 교수가 아니라 학생과 그들을 채용할 사회다.


3. '산학일체(産學一體)': 캠퍼스가 곧 연구소다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 주변에 실리콘밸리가 형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학 연구실의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기업의 자본이 대학 R&D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 덕분이다.


한국의 지방 대학 캠퍼스 유휴 부지를 기업에게 무상 혹은 초저가로 임대해 줘야 한다. 대학 담장 안으로 기업의 R&D 센터와 스타트업 입주 공간을 끌어들여야 한다. 교수와 학생, 기업 연구원이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실험실을 공유하는 '물리적 밀착'이 일어나야 진정한 산학협력이 가능하다.


단순히 "협력합시다"가 아니라, 대학이 "우리 땅 내줄 테니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제안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은 임대 수익과 취업처를 얻고, 기업은 저렴한 부지와 우수한 연구 인력을 얻는 '윈-윈'이 완성된다.


4. 지방대 출신 채용 할당제(쿼터)의 의무화


인재 육성 시스템을 갖췄다면, 제도적 '강제성'도 필요하다.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에만 적용되던 '지역 인재 채용 의무제(현행 30%)'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에게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


물론 사기업의 채용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와 연동해야 한다. 앞서 17장에서 언급한 법인세/상속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Pre-requisite)으로 '지역 대학 출신 채용 비율'을 명시하는 것이다.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지역 청년을 고용하라는 것은 정당한 사회적 요구다.


이는 역차별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한시적이고 강력한 우대 조치다. 지방대를 나와도 충분히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는 확실한 시그널이 생겨야, 입시 지옥과 사교육비 문제, 그리고 수도권 과밀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5. 옥석 가리기: 한계 대학의 퇴출과 '용도 변경' 빅딜


냉정하게 말해, 전국의 모든 지방 대학을 다 살릴 수는 없다. 학령인구는 반 토막이 났는데 대학 정원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경쟁력 없는 대학까지 연명시키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이제는 잔인할 정도로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첫째, '거점 국립대' 및 '특수목적대' 위주의 자원 몰아주기다.

지방 대학 지원 예산을 1/N로 나눠주는 '나눠 먹기식' 관행을 끊어야 한다. 지역별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예산과 인프라를 독점적으로 투입해, 적어도 "도(道)에 하나쯤은 서울 주요 대학과 맞짱 뜰 수 있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어설픈 사립대 10개를 살리느니, 확실한 국립대 1개를 키우는 게 낫다.


둘째, 한계 대학의 '아름다운 퇴장'을 위한 출구 전략이다.

이미 회생 불가능한 '한계 대학'들에게는 교육 기관의 간판을 내릴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현재 사립학교법상 폐교 시 재산 처분 규제가 너무 까다로워, 설립자들이 학교 문을 닫고 싶어도 못 닫고 '좀비'처럼 버티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폐교 부지와 건물의 용도 변경(Zoning Change)을 파격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 폐교 캠퍼스 → 대형 종합병원 및 의료 복합 단지: 지방에 가장 부족한 필수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최적의

대안이다. 튼튼한 대학 본관은 외래 진료동으로, 기숙사는 의료진 숙소나 환자 보호자 쉼터로 리모델링하여

'Big 5 병원'의 지방 분원 유치 부지로 활용한다.


- 강의실/기숙사 → 실버타운 및 요양병원: 지방의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최고급 주거·의료

복합 시설로 변신시킨다. 대학 기숙사의 구조는 1인 가구 노인을 위한 주거 시설로 안성맞춤이다.


- 넓은 산지 부지 → 골프장 및 리조트: 산속에 위치한 대학 부지는 골프장이나 휴양 리조트로 개발하기에 최

적의 입지다. 이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지역 경제에 훨씬 도움이 된다.


- 도심 내 캠퍼스 → 복합 쇼핑몰 및 아울렛: 도심 요지에 위치한 대학 부지는 상업 시설로 전환해 침체된 지

역 상권을 되살리는 앵커 시설로 활용한다.


대학이 사라진 자리에 '종합병원', '노인 복지', '관광 산업'이라는 새로운 활력을 채워 넣는 것, 이것이 소멸해가는 지방 대학 부지를 재활용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이다.


6. 결론: 간판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는 '실용주의 대학'


지방 대학 소멸 위기의 본질은 '학령인구 감소'가 아니라 '경쟁력 상실'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따라 하려 해서는 영원히 2류, 3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지방 대학은 학문 연구 중심이 아닌, 철저한 '실무 중심, 취업 중심, 기업 중심'으로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살아남을 대학은 기업과 한 몸이 되어 인재를 길러내고, 도태될 대학은 과감하게 실버타운이나 상업 시설로 변신하여 지역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이것이 죽어가는 지방 교육 생태계를 살리는 유일한 '구조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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