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메가시티: 행정 구역을 다시 그려라

by 영현담

대한민국의 행정 지도는 유물이다. 조선 시대에 확립된 '8도 체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100년 전의 생활 반경을 기준으로 쪼개져 있다. KTX와 G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어버린 21세기에, 우리는 여전히 '도(道)'라는 낡은 경계선 안에서 아웅다웅하고 있다.


행정 구역과 실제 경제·생활권의 불일치는 심각한 비효율을 낳는다. 바로 옆 도시에 공단을 지으면 시너지가 나는데 행정 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복 투자를 하고, 쓰레기 매립장 하나를 짓는 데 10년이 걸려 싸운다. 이제 이 낡은 칸막이를 걷어치워야 한다. 대한민국을 서울 공화국이 아닌, 5개의 거대한 도시 국가 연합체로 재편하는 '5도 2특별자치시' 체제가 그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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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극 2특 체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라


지방 소멸을 막으려면 '작은 지방'들을 묶어 '거대한 지방'을 만들어야 한다. 인구 500만 명 이상의 경제 규모를 갖춰야 자체적인 산업 생태계, 국제 공항, 지하철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시·도 경계를 허물고 다음과 같은 5대 메가시티와 2개 특별자치도로 재편해야 한다.


수도권 (서울·경기·인천): 글로벌 비즈니스 및 IT 벤처 허브


부울경 (부산·울산·경남): 해양 물류, 금융허브 및 스마트 제조업 수도


대경권 (대구·경북): 모빌리티, 로봇, 전자 산업의 중심


충청권 (대전·세종·충남·충북): 과학 기술 및 행정 수도, 바이오 클러스터


전라권 (광주·전남·전북): AI, 에너지, 문화 콘텐츠 및 농생명 거점


강원·제주 (특별자치도): 관광 및 청정 산업 특구 (지리적 특수성 고려)


이 메가시티들은 단순한 행정 통합이 아니다. 예산권과 인사권, 도시 계획권을 중앙정부로부터 대폭 이양 받아, 마치 미국의 주(State)처럼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짤 수 있는 '준(準) 연방제' 수준의 자치권을 가져야 한다.


2. 부울경 메가시티의 부활과 광역 교통망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인 모델은 '부울경 메가시티'다. 인구 800만 명에 달하는 이 지역은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였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자체장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


메가시티의 핵심은 '물리적 연결'이다. 행정 통합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광역급행철도(지방형 GTX)의 건설이다. 부산 해운대에서 울산 공단까지, 창원 공장에서 부산항까지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어야 하나의 생활권이 된다. "일은 창원에서, 쇼핑은 부산에서, 주거는 울산에서"가 가능해질 때, 청년들은 굳이 서울로 가지 않고도 대도시의 인프라를 누리며 살 수 있다.


3. '지거국'의 서울대화(化): 1도 1서울대 프로젝트


메가시티라는 그릇을 만들었다면,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지방에 기업이 내려가도 정주 여건이 나쁘면 가족은 서울에 두고 기러기 생활을 한다. 그 핵심 원인은 '교육'과 '의료'다.


먼저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 무조건 서울대를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서울대는 그대로 두되, 지방 거점 국립대(지거국)의 위상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상향 평준화' 전략을 써야 한다.

이른바 '1도 1서울대' 프로젝트다.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등 각 권역의 맹주 역할을 하는 국립대에게 서울대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파격적인 지원을 퍼부어야 한다.


첫째, 지방 거점 국립대 '전액 무상 교육'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이들 대학의 등록금을 100% 면제해야 한다. 단순히 돈을 아끼는 차원이 아니다. "지방 국립대에 가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경제적 이유 때문에라도 서울 대신 지방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 교수 연봉과 연구비의 상한선을 없애야 한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 교수들을 지방으로 스카우트해오기 위해서는 서울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지방 국립대 교수의 연봉과 연구비를 서울 사립대의 2배 수준으로 책정하여, 최고의 석학들이 제 발로 지방에 내려오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 시설과 인프라의 현대화다. 지금 지방 국립대의 강의실과 연구실은 노후화가 심각하다. 정부 예산을 집중 투입해 캠퍼스를 첨단화하고, 기숙사 수용률을 100%로 높여야 한다.


결국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내 고향에 있는 국립대가 서울대만큼 좋다"는 확신이 들 때 교육 이민은 멈춘다. 억지로 서울대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방 국립대를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아이비리그'로 키워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 균형이다.


4. Big 5 병원의 지방 분원 의무화: 폐교 캠퍼스를 종합병원으로


다음은 의료다. "아프면 KTX 타고 서울 간다"는 말이 나오는 한 지방 정주는 불가능하다. 서울 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Big 5' 병원의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


정부는 이들 병원에게 "각 메가시티 권역에 1,000병상 이상의 분원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라"고 강제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서울 본원의 건강보험 수가를 삭감하거나 신규 의료 장비 도입을 불허하는 등 강력한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대신 당근도 확실해야 한다. 병원을 지을 땅과 건물을 파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앞서 18장에서 언급한 '한계 대학 구조조정'과 연계한 빅딜이 가능하다. 학생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지방 사립대의 광활한 캠퍼스 부지와 건물을 정부가 매입하여, 지방으로 내려오는 Big 5 병원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 대학 본관 → 병원 진료동: 튼튼하게 지어진 대학 본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외래 진료 센터로 활용한다.

- 기숙사 → 의료진 숙소 및 환자 보호자 쉼터: 서울에서 내려온 의료진의 사택이나, 장기 입원 환자 가족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즉시 활용 가능하다.

- 넓은 캠퍼스 → 치유 공원 및 재활 센터: 대학의 녹지 공간은 환자들을 위한 최고의 치유 환경이 된다.


흉물로 방치될 뻔한 좀비 대학을, 지역 주민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던 최고급 종합병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는 의료 인프라 확충과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가장 효율적인 도시 재생 전략이다. 내 집 앞 30분 거리에서 서울과 똑같은 암 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지방은 비로소 '살 수 있는 곳'이 된다.


5. 결론: 정치 논리가 아닌 생존 논리로 접근하라


행정 구역 개편과 인프라 분산은 정치권에서 가장 꺼리는 주제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밥그릇을 챙겨줄 여유가 없다.


조선 시대의 지도를 들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 수는 없다. 행정 구역이라는 낡은 옷이 몸(경제 규모)에 맞지 않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5개의 강력한 메가시티를 구축하고, 그 중심에 최고의 대학과 병원을 심어 넣는 것. 이것은 국토의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소멸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국토 생존 전략'이다.


경계선을 지워라. 그리고 그 위에 사람과 돈이 흐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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