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기업을 옮기고(17장), 청년을 키우고(18장), 도시를 합치는(19장) 거대 담론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 이 모든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청년들이 다시 지방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지방은 그 시간을 버틸 체력이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지방으로 내려가 지갑을 열고, 인구를 채워줄 '즉시 전력감'이 필요하다. 그 답은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에게 있다. 대한민국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쥐고 있는 이 거대 인구 집단을 지방으로 유인하는 '그레이트 마이그레이션(대이동)' 프로젝트가 지방 생존의 마지막 퍼즐이다.
서울에 사는 은퇴자들의 삶은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은 곪아 있다. 평생 벌어 산 아파트 한 채 가격은 수십억 원이지만, 당장 쓸 현금은 부족한 '하우스 푸어'가 태반이다. 비싼 물가, 복잡한 교통, 고립된 아파트 생활은 그들의 노후를 갉아먹는다.
이들에게 명확한 계산서를 보여줘야 한다.
"서울의 15억 원짜리 낡은 아파트를 팔고 지방으로 오십시오. 5억 원이면 34평형 최고급 브랜드 신축 아파트나 정원 딸린 타운하우스에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10억 원은 연금으로 전환해 죽을 때까지 월 500만 원씩 쓰며 여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지방 입장에서는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가 유입되는 것이고, 은퇴자 입장에서는 '생계형 노후'에서 '즐기는 노후'로 신분 상승을 하는 윈-윈(Win-Win) 게임이다.
은퇴자들이 시골의 낡은 농가 주택으로 갈 리는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편리함과 커뮤니티다. 미국의 '선 시티(Sun City)'나 '더 빌리지(The Villages)' 같은 대규모 '은퇴자 전용 복합 도시(CCRC)'를 지방 거점 곳곳에 건설해야 한다.
이곳은 양로원이 아니다. 골프장, 파크골프장, 수영장, 도서관, 문화센터가 결합된 거대한 리조트 단지다.
- 주거: 휠체어가 다니기 편한 무장애(Barrier-free) 설계가 적용된 고급 주택.
- 의료: 단지 내에 24시간 응급센터가 있고, '빅5 병원 분원'과 셔틀로 연결되는 의료 시스템.
- 커뮤니티: 동호회 활동, 파티, 여행을 함께 즐기는 또래 집단 형성.
폐교된 대학 부지나 인구 소멸 지역의 유휴 부지를 활용해 이런 은퇴자 도시를 조성하고, 분양가를 서울 전세가의 절반 수준으로 맞춘다면 수요는 폭발할 것이다.
지갑을 열게 하려면 확실한 당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방 이주 은퇴자를 위한 '실버 이주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첫째, 1주택자가 서울 집을 팔고 지방의 '은퇴자 도시'로 이주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해 줘야 한다.
서울 집값이 올라서 내야 할 세금이 수억 원에 달해 집을 못 파는 경우가 많다. 이 족쇄를 풀어주면 서울의 부동산 매물이 풀려 집값 안정에도 기여하고, 그 돈이 고스란히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는 효과를 낳는다.
둘째, 지방 거주 기간 동안 연금 소득세를 면제해야 한다.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 수령액에 대한 세금을 지방 거주자에 한해 100% 감면해 줌으로써, 실질 소득을 높여줘야 한다.
지방으로 내려온 은퇴자들을 단순히 소비자로만 남겨둬선 안 된다. 그들은 평생 쌓아온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가진 고급 인력이다. 이들을 지역 사회의 '멘토'로 활용해야 한다.
- 퇴직 대기업 임원/엔지니어: 17장에서 내려온 지방 기업이나 지역 스타트업의 경영 고문 및 기술 멘토링.
- 퇴직 교사/공무원: 다문화 가정 자녀 교육, 지역 아동센터 방과 후 교사, 행정 자문.
이들에게 소일거리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고 사회적 존경을 돌려준다면, 그들은 지방 사회의 부족한 인적 자본을 채워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지방은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돈 없는 노인'만 남는 것이지, '구매력 있는 시니어'가 모이는 것은 축복이다.
베이비부머 700만 명 중 10%인 70만 명만 지방으로 내려와도 지방 경제의 판도가 바뀐다. 식당이 살고, 병원이 돌아가고, 마트가 북적거린다. 서울이라는 좁은 닭장에서 벗어나 넓은 지방에서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즐기게 하라. 그것이 인구 과밀로 터져 나가는 서울도 살고, 인구 소멸로 말라가는 지방도 사는 가장 확실한 '인구 교환' 전략이다.
은퇴자여, 서울을 떠나라. 그곳에 당신의 진짜 황금기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