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만 명에 가까운 2030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한다. 미디어는 이를 두고 화려한 도시 라이프를 동경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 문제로 포장하곤 한다. 하지만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탈출(Exodus)'이다.
지방의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곳에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지난 50년 성장사는 철저한 '수도권 집중'의 역사였다. 모든 대기업 본사, R&D 센터, 명문 대학이 서울과 그 인근에 요새처럼 구축되는 동안, 지방은 인력과 자원을 공급하는 보급 기지로 전락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곳에 청년이 머물 이유는 없다. 그들에게 상경(上京)은 선택이 아니라, 낙오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경제적 합리성이다.
의료 현실은 이 불균형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방에도 상급종합병원은 존재한다. 하지만 중증 질환에 걸리면 환자들은 KTX를 타고 서울의 'Big 5' 병원으로 향한다. 지방에 병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울이 모든 '최고 수준의 의료 자원'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지역 거점 병원들이 환자 유출로 경영난을 겪고 필수 의료인 소아과와 응급실 문을 닫는 동안, 서울의 대형 병원은 지방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픈 아이를 안고 서울로 달려야 하는 부모에게, 지방은 더 이상 심리적으로 안전한 삶의 터전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도착한 서울이 '기회의 땅'이 아니라 '불임의 땅'이라는 데 있다.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한 좁은 땅, 수도권. 이 비좁은 공간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일자리의 절반, 그리고 자본의 70%가 쏠려 있다. 이것은 단순한 도시화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극한의 고밀도 실험'이다.
이 숨 막히는 밀도는 필연적으로 살인적인 경쟁 비용을 유발한다. 수도권으로 몰려든 청년들은 월급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로 헌납해야 하고, 옆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생존 자체가 투쟁이 된 이 공간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행위를 포기한다. 그것은 바로 '결혼'과 '출산'이다.
2024년 잠정치 기준,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8명으로 사실상 인구 소멸 단계에 진입했다. 반면, 행정 기능과 공공기관이 분산되어 최소한의 '삶의 여백'이 확보된 세종시는 1.02명으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될수록 아이는 사라지고, 기능과 권한이 분산된 곳에서는 다시 태어난다.
지난 16년간 정부는 2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실패했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은 건드리지 않은 채, 진통제만 처방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지방이 살지 않으면 수도권도 결국 과부하로 무너지고,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멈추게 된다.
이 책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비판서가 아닙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아픈 현실에 대한 기록이자, 함께 살 길을 찾기 위한 간절한 '제안서'입니다.
책의 구성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복기하고, 나아갈 길을 찾는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장부터 제16장까지는 지방 대학의 위기부터 백화점이 떠난 소도시의 풍경, 그리고 우리가 놓쳤던 정책의 빈틈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봅니다. 뼈아픈 현실이지만, 문제를 정확히 알아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17장부터 마지막 제20장까지는 대한민국을 다시 뛰게 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합니다. 지방 거점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강력하게 육성하고, 대기업과 핵심 인프라를 지방으로 유치하여 국토의 판을 새롭게 짜는 '빅딜(Big Deal)'을 통해, 서울과 지방이 공멸이 아닌 공생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려 합니다.
지금부터, 왜 청년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열차의 선로를 돌려 다시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