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평균의 함정: 0.74와 11.8%의 역설

by 영현담

제1장. 평균의 함정: 0.74와 11.8%의 역설

대한민국 사회는 '합계출산율 0.74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있다. 언론은 매일같이 "국가 소멸의 단계에 진입했다"며 호들갑을 떨고, 정부는 이 숫자를 0.1명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0.74명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거대한 '평균의 착시'에 불과하다.


데이터 분석의 기본은 쪼개 보는 것(Breakdown)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평균 체온이 36.5도라고 해서 모두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펄펄 끓는 40도 고열 환자와 싸늘하게 식은 저체온증 환자가 섞여 있다면, 평균은 정상이지만 둘 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딱 그 꼴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를 '지역'과 '인프라'라는 두 가지 축으로 쪼개어 분석하면, 전혀 다른 두 개의 대한민국이 드러난다. 하나는 인구를 빨아들이며 터져나가는 대한민국이고, 다른 하나는 말라 비틀어져 소멸하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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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산율 0.58명의 서울: 인프라가 만든 블랙홀


2024년 잠정치 기준,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8명이다.


이 숫자가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감이 오는가.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한 국가의 수도가 이토록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사례는 인류 역사상 없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조차 이보다는 높다. 전 세계 도시 중 유례를 찾기 힘든 이 수치는 단순한 우연이나, 서울 젊은이들의 유별난 성향 탓이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인프라가 '수도권'이라는 좁은 깔때기로 쏟아져 들어온 결과다.


숫자로 보자. 서울,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의 면적은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하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이 좁은 땅에 대한민국 인구의 50.6%가 산다. 국토의 90%를 텅 비워두고, 10%의 땅에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인구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기회'와 '자본'의 독점 비율이다.


- 상위 1000대 기업 본사의 75%가 수도권에 있다.


- 전국 신용카드 사용액의 72%가 수도권에서 긁힌다.


- 문화 기반 시설과 벤처 투자 금액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다.

이 데이터가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지방에는 '그저 숨만 쉬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만 남았고, 서울과 수도권에는 '성공하고 살아남기 위한' 모든 인프라가 과밀되어 있다.


지방의 청년들이 짐을 싸서 서울로 향하는 건, 그들이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동경해서가 아니다. 일자리, 문화, 자본, 네트워크 등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서울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방에 남는다는 것은 곧 기회의 박탈을 의미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상경(上京)은 청년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합리적 베팅'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 모든 것이 11.8%의 땅에 몰려있기에, 그곳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경쟁은 전쟁이 된다.


청년들은 좁은 취업 문을 뚫기 위해 스펙 경쟁에 내몰리고, 월급의 절반 이상을 1.5평 고시원이나 오피스텔 월세로 헌납한다. 이 숨 막히는 고밀도 환경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재생산 욕구를 억제한다. 동물 실험에서도 쥐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으면 번식을 멈추고 서로를 공격한다. 지금 서울이 바로 그 실험실이다.


서울은 인프라의 강력한 힘으로 전국의 청년 인구를 빨아들이지만,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청년들의 재생산 본능을 물리적으로 거세해버린다. 서울은 화려한 메가시티가 아니다. 인구를 흡수해 소멸시키는 가장 강력한 '인프라 블랙홀(Black Hole)'이다.


2. 출산율 1.02명의 세종: 분산이 답이다


그렇다면 이 가설을 뒤집을 증거가 있는가? 있다. 바로 세종시다.


같은 2024년 통계에서 세종시는 합계출산율 1.02명을 기록했다. 0.7명대인 전국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것은 물론,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1명대를 방어한 곳이다.


세종시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DNA를 가졌거나, 서울 사람들보다 아이를 유독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똑같은 대한민국 청년들이다. 유일한 차이는 '인프라의 분산'에 있다.


정부는 세종시를 만들면서 중앙 부처와 국책 연구기관이라는 핵심 인프라를 강제로 떼어내 지방에 심었다. 그러자 서울에만 있던 양질의 일자리가 그곳에 생겼고, 사람이 모였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밀도'다. 계획도시로 지어진 세종시는 서울처럼 지옥철에 시달릴 필요가 없고, 주거 환경이 쾌적하며, 상대적으로 집값을 예측할 수 있다. 서울의 살인적인 밀도가 제거되자, 억눌려 있던 재생산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것이 0.58명(과밀 서울)과 1.02명(분산 세종)의 결정적 차이다. 즉, "인프라를 나누고 밀도를 낮추면 인구는 태어난다"는 명제를 데이터가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3. 통계가 가리키는 진짜 범인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추상적인 '저출산'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일 뿐이다. 구체적인 타깃은 '11.8%에 갇힌 대한민국'이라는 기형적인 공간 구조다.


프랑스는 파리에 인구가 집중되자 1960년대부터 강력한 분산 정책(DATAR)을 통해 지방 거점 도시를 키웠고, 그 결과 출산율 1.8명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 역시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경제가 분산되어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전 국토를 골고루 쓰지 못하고 10분의 1도 안 되는 땅에 모든 에너지를 구겨 넣었다. 그 결과 지방은 피가 돌지 않아 괴사(Gray Zone)하고, 수도권은 고혈압으로 터져 죽고 있다.


수도권의 출산율이 바닥을 기는 상태에서 전국에 현금을 뿌리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서울로 청년들이 계속 빨려 들어가는 한, 그들은 그 안에서 경쟁하다가 늙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왜 모든 인프라는 수도권으로만 향했는가. 왜 우리는 지방을 버렸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이 거대한 쏠림을 깨트려 제2, 제3의 세종을 만들 것인가.


이것은 감상의 영역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단행해야 할 '국가 구조조정'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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