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백화점이 떠난 도시
도시의 사망 선고는 어느 날 갑자기 시청 앞에 붉은 현수막이 걸리며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 평소 즐겨 찾던 프랜차이즈 카페가 문을 닫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찾던 시내의 유일한 백화점에 셔터가 내려질 때, 그 도시는 사실상 '뇌사 판정'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방'은 부산이나 대구, 광주 같은 광역시나 거점 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백화점이 있고, 지하철이 다니며, 5성급 호텔이 불을 밝힌다. 진짜 비극이 벌어지는 곳은 그 거점 도시들의 배후에서 대한민국의 허리를 담당하던, 인구 10만에서 30만 사이의 수많은 '중소 도시'들이다.
지방 소도시의 쇠락을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은 통계청 공무원이 아니라, 그 지역의 '초중고 학생들'이다. 그들에게 "살기 좋은 동네"의 기준은 어른들이 말하는 도로망이나 산업단지 조성이 아니다. 그들의 기준은 냉혹하리만치 단순하고 명쾌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올리브영이 있는가?", "친구들과 모여서 갈 수 있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가 있는가?"
어른들에게는 고작 군것질이나 화장품 가게로 보일지 모르지만, 10대들에게 이것은 자신이 '문명사회'에 속해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서울의 트렌드를 공유받는 이 아이들에게, 유튜브에서 본 신상 과자가 우리 동네 편의점에만 들어오지 않고,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화장품을 사려면 버스를 타고 옆 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깊은 절망감을 안겨준다.
"아, 나는 지금 유행의 최전선에서 밀려난 '시골'에 살고 있구나."
이 정서적 박탈감은 꽤 위험하다.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지루하고 뒤쳐진 도시'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대학 진학은 그들에게 학문의 길이 아니라, 소비와 문화의 중심지로 진입하기 위한 '탈출 티켓'이다. 소도시의 인구 유출은 일자리가 필요한 20대가 아니라, 이미 문화를 갈망하는 10대 때부터 마음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지방 중소 도시의 백화점은 단순한 상업 시설이 아니었다. 그 지역 중산층의 자부심이자, 주말 여가의 총본산이었다. 가족들이 차려입고 나와 외식을 하고, 아이 장난감을 사고, 부모님 선물을 고르던 거대한 '라이프스타일 센터'였다.
하지만 지금 지방 소도시의 향토 백화점이나 중소형 쇼핑몰들은 줄줄이 폐업하거나, 병원이나 요양 시설로 용도가 변경되고 있다. 유통 대기업들은 철저한 손익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 배후 인구가 붕괴하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곳에는 가차 없이 칼을 댄다.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문을 닫은 사건은 상징적이다. 한때 7대 도시라 불리던 곳조차 소비의 거점을 잃어가고 있다.
백화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도시 안에서 돈이 돌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매력이 있는 소수의 중산층이나 고소득 전문직들은 이제 주말마다 KTX나 SRT를 타고 서울 강남으로, 혹은 인근 광역시의 신세계나 롯데몰로 '원정 쇼핑'을 떠난다.
이것은 끔찍한 '빨대 효과'를 불러온다. 지방 소도시의 공장에서 땀 흘려 번 돈이, 그 지역 상권에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서울과 대도시로 빨려 들어간다. 지역 내 낙수효과는 사라지고, 소도시의 자영업자들은 말라죽는다. 돈 버는 곳과 돈 쓰는 곳이 완벽하게 분리된 기형적인 경제 구조. 이것이 지방 소도시가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다.
청년들이, 그리고 젊은 부부들이 지방 소도시를 떠나는 이유를 기성세대는 여전히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착각한다. 물론 양질의 일자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방 산업단지에 번듯한 대기업 공장이 있고, 꽤 높은 연봉을 주는 일자리가 있어도 청년들은 떠난다. 왜일까? 그곳에는 '생활(Life)'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방 소도시는 도시라기보다 거대한 '노동 수용소' 혹은 '기숙사'에 가깝다. 아침에 일어나 공장으로 출근하고, 야근하고 돌아와 잠만 자는 곳. 퇴근 후 친구를 만나 칵테일 한 잔을 할 힙한 바(Bar)도 없고, 주말에 연인과 데이트를 즐길 복합문화공간도 전무하다. 영화 한 편을 보려 해도, 트렌디한 옷 한 벌을 사려 해도 차를 몰고 1시간을 나가야 하는 곳에서 자신의 20대와 30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퇴근 후 성수동 팝업 스토어를 구경하고 한강에서 러닝을 뛰며 인스타그램에 '갓생'을 인증하는데, 지방 소도시에 남은 나는 회식 장소인 삼겹살집 말고는 갈 곳이 없다. 이 압도적인 '라이프스타일의 격차'가 청년들로 하여금 사표를 던지게 만든다. "여기서 계속 살다가는 도태될 것 같다"는 공포. 그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아니 삶의 '격(Class)'에 대한 문제다.
서울은 매주 새로운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전 세계의 트렌드가 가장 먼저 상륙하는 화려한 '빛의 도시'다. 반면, 지방 소도시의 구도심 상가에는 '임대 문의' 종이만 흉물스럽게 나부끼고, 밤 8시만 되면 거리가 암흑천지로 변하는 '어둠의 도시'다.
스타벅스가 떠나고, 영화관이 문을 닫고, 백화점이 철수한 도시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갈 곳 잃은 노인들을 위한 다방과 병원, 그리고 밤이면 붉은 등을 켜는 유흥업소뿐이다. 건전한 소비와 문화가 사라진 자리는 필연적으로 슬럼화된다.
우리는 지금 지방이 단순한 '경기 침체'를 겪는 것이 아니라, 도시로서의 기능(Urban Function) 자체를 상실해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소비할 수 없는 도시는 지속 불가능하다. 인간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하나가, 올리브영 간판 하나가 그토록 절실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마지막 증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