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지역 의료 붕괴: 아픈 것도 죄가 되는 나라

by 영현담

제4장. 지역 의료 붕괴: 아픈 것도 죄가 되는 나라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의료 선진국이다. 최첨단 장비와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으며, 외국인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하지만 그 화려한 명성은 어디까지나 '수도권'에 살고 있거나, 심정지가 왔을 때 '골든타임' 내에 서울의 대형 병원 응급실에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반쪽짜리 신화다.


지방에 산다는 것은, 위급한 순간에 앰뷸런스 안에서 길을 잃고 죽을 확률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서울에서는 살 수 있었을 사람이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나간다. 이것은 더 이상 불운이 아니라 제도적 타살이다. 지금 지방에서는 아픈 것도 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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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앰뷸런스는 왜 멈추지 못하는가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방의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기 위해 수십 통의 전화를 돌리며 도로 위를 헤매고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아이가 밤에 고열에 시달려도 갈 곳이 없다. 부모는 아이를 안고 1시간 넘게 어두운 국도를 달려야 한다. 운 좋게 응급실에 도착해도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 해열제 처방만 받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중증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상황은 더 처참하다. 지역 내에 건물이 번듯한 종합병원이 있어도, 정작 흉부를 열고 수술할 의사가 없어 "저희는 처치가 안 됩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결국 환자는 대전으로, 대구로, 그러다 안 되면 서울로 이송되다 길 위에서 골든타임을 놓치고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의료 난민'이 된 지방민들의 현실이다.


이것은 단순한 일시적 인력 부족 문제가 아니다. 지방 의료 시스템이 '기능적 뇌사'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생명과 직결된 '바이탈(Vital)과'는 수익성이 낮고 의료 소송 리스크는 크다는 이유로 지방에서 가장 먼저 자취를 감췄다. 병원은 건물이 아니라 의료진이라는 소프트웨어로 돌아가는데, 지방에는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고 알맹이는 이미 증발해 버렸다.


2. 시장은 의사들을 수도권으로 불렀다


의사들이 지방을 떠나는 것을 단순히 그들의 사명감 부족이나 '돈 밝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냉정한 자본주의 논리로 보면, 의사들 역시 자신의 기대 수익과 삶의 질, 그리고 자녀 교육을 좇아 움직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제 주체다.


인구가 급감하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지방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환자가 없으니 병원 경영이 어렵고, 경영이 어려우니 최신 장비 투자가 늦어지고, 낙후된 시설을 본 환자들은 다시 서울로 떠나는 악순환이다. 게다가 지방 대학 병원 교수직을 제안해도 "아이 학원 때문에 서울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수도권 집중' 현상이 의료 자원의 블랙홀 현상을 가속화했다. 서울 강남의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새벽부터 '오픈런'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동안, 지방의 응급실과 분만실은 텅 비어가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수도권은 돈이 되는 비급여 의료 시장의 과잉 공급으로 터져 나가고, 지방은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가 사막화되어 말라죽는 '극단적 양극화'가 방치되고 있다.


3. 사는 곳이 수명을 결정하는 잔인한 공식


데이터는 잔인한 진실을 말해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거주지에 따라 '기대 수명'과 '치료 가능한 사망률(Amenable Mortality Rate)'이 확연히 달라진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만 받았다면 살 수 있었던 사람의 비율이 서울 강남구와 강원도의 산간 지역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살 수 있는 병에 걸려도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가치인 '생명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지방의 국민들은 그 보호막 밖에 방치되어 있다.


지방 소멸은 의료 붕괴와 맞물려 가속화된다. 종합병원이 없는 곳에 아이를 낳으러 올 젊은 부부는 없다. 늙고 병든 노인들만 남은 도시에 병원마저 사라지면, 그 도시는 말 그대로 현대판 '고려장'터가 된다. 의료 인프라의 붕괴는 인구 유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구 유출을 부채질하는 가장 강력한 기폭제가 되고 있다.


4. 공공의료의 대전환, 돈이 아니라 생명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의대 정원을 몇 천 명 늘리는 식의 '숫자 놀음'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쏟아낸 의사들이 자동으로 지방 흉부외과로 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시장 논리에 따라 수도권의 피부과로 향할 것이다. 시장 실패가 명확한 영역에는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


수익성 논리에 맡겨진 민간 의료 중심의 시스템을, 지방에서만큼은 강력한 '공공 의료 체계'로 대전환해야 한다. 지방 거점 국립대 병원을 대폭 확충하고, 이곳에 근무하는 필수 의료진에게는 '신분 보장'과 '수도권 이상의 파격적인 대우'를 국가 재정으로 직접 지원해야 한다.


지방 의사가 서울 의사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관사에서 살며, 자녀 교육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야 내려온다. 이것은 낭비가 아니라 '안보 비용'이다.


돈이 든다고 망설일 시간이 없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방의 밤은 지금도 너무나 위태롭고, 앰뷸런스 안에서 길을 잃고 꺼져가는 생명에는 '다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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