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지방 대학의 붕괴: 벚꽃 엔딩은 없다

by 영현담

제3장. 지방 대학의 붕괴: 벚꽃 엔딩은 없다

매년 3월이면 캠퍼스에는 벚꽃이 핀다. 하지만 지방의 대학 총장들에게 그 꽃은 봄의 전령이 아니라, 파산의 신호탄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 대학가에서 10년 넘게 떠돌던 이 자조 섞인 괴담은 이제 괴담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미래 예측 모델이 되었다.


지방 대학의 위기를 단순히 '학령인구 감소'나 '교육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지방 경제가 해체되는 가장 처참한 시나리오이자, 서울 집중이 불러온 가장 확실한 재앙이다. 대학이 무너진 도시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데이터와 현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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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원율 0%의 진실: 학생들은 투자를 멈췄다


2025년 입시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방의 일부 대학들은 정시 모집에서 지원자가 '0명'인 학과가 속출했다. 사실상 누구나 원서만 내면 합격하는 상황임에도, 학생들은 지방 대학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투입 대비 수익(ROI)'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방 국립대만 나와도 해당 지역의 기업에 취업하여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수도권으로 재편되면서 지방의 양질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지방 대학에 남는 것이 기회비용 측면에서 막대한 손해라는 것을. 그들이 재수, 삼수를 불사하고 서울로 향하는 건 맹목적인 학벌주의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지극히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이다. 수요자가 외면하는 공급은 도태되는 것이 시장의 냉혹한 원리다.


2. 학교가 아니라 '거대 기업'이 무너지는 중이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 대학 하나가 문을 닫는 것을 그저 "경쟁력 없는 학교가 정리되는 과정"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대학이 갖는 위상은 서울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인구 10만~20만 명 규모의 지방 도시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다. 그 지역 최대의 '고용주'이자 '앵커 시설(Anchor Facility)'이다. 대학 하나에는 수백 명의 일자리가 달려 있고, 학생 수천 명이 먹고 자고 마시는 거대한 소비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지방 사립대 하나가 폐교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 앞 원룸촌은 순식간에 공실로 변하고, 은퇴 후 월세로 생계를 꾸리던 노년층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택시, 식당, PC방이 줄도산한다. 대학이 사라지는 순간, 그 도시의 실물 경제는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를 잃고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린다. 이것은 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부도'다.


3. 교육이 아닌 '판'을 바꿔야 한다


이 비극의 원인은 명확하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시장 논리만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서울 주요 대학들이 지방의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도록 방치하고, 수도권 정원 규제를 완화한 결과 지방은 고사(枯死) 직전에 이르렀다.


경고하건대, 지방 대학의 붕괴를 교육부 장관의 힘만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학생이 없으니 문을 닫으라"는 식의 단편적인 접근은 지방 소멸을 가속화할 뿐이다.


해법은 대학 개혁을 넘어선 국토 차원의 '빅딜(Big Deal)'에 있다. 지방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특화 산업 생태계를 강제로라도 이식해야 한다. 기업이 내려오고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야 비로소 청년들이 돌아온다. 학교를 살리는 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를 중심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벚꽃이 지고 나면 잎이 나야 하는데, 대한민국 지방에는 잎조차 나지 않는 혹독한 겨울이 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학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지탱하던 마지막 버팀목이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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