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대사관에도 알렸다
12월 6일 금요일
이마의 멍든 부분에만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왼쪽 얼굴의 길쭉한 상처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 딱지가 앉은 채로 손녀는 학교에 갔다.
나는 불안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부모들께 연락을 했을 것이고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면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2차 폭력의 우려가 있었다.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워 보낸 후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갔다.
9시 30분이면 오전 간식을 먹는 시간이었다. 화장실에 갈 시간이기도 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교장과 담임이 나와 마주치자 교장실에 들어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불안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왔다고 하니 학교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학교를 믿고 안심하라고만 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장소가 화장실이다 보니 걱정이 많다. 아이들 화장실 가는 시간에는 화장실 앞에 지킴이 선생님들이 서 있어 준다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호루라기를 사주고는 그 아이가 가까이 오면 크게 불라고 했다고 말했다.
교장이 안심하라고는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교실에서 가까운 매점 앞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9시 30분이 간식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고는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했다. 손녀에게 엘사와 벨라가 누군지 물어보니 손녀의 머리 하나만큼 키가 큰 여자아이들이었다. 둘이서 뛰어다니면 놀고 있길래 내가 굳은 표정으로 그 애들 가까이 가서 노려 보니, 내가 할머니인 줄 눈치채고는 더 신나는 듯 까불어 대었다.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식 시간이 지나 상담 교사가 엘사ㆍ벨라ㆍ손녀를 데리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내부가 다 보이는 통유리라 안을 잘 볼 수가 있었다. 손녀는 울먹이면서 피딱지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문지르며 진술하고 있었고 두 아이는 다리를 까딱 거리며 마주 앉아서 진술하고 있었다. 상담을 마친 후 아침시간에 다른 반으로 옮겼던 엘사는 다시 손녀의 교실로 돌아왔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주변 한국 엄마들에게도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학교 쪽에서는 3-4년이면 떠나는 주재원아이들 보다는 12학년까지 다닐 가능성이 높은 중국인 아이들 편을 든다는 말도 있었다. 사립학교도 사업이다 보니 아이 한 명이 일 년이면 학비가 오천만 원 정도, 두 명이면 1억이니. 중국인들은 대개 두 명 내지는 세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 요즘 같은 불경기에 부모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딸이 교장에게 보낸 메일의 답신으로는 손녀가 엘사에게 욕을(You stupid girl)했고 엘사의 사물함을 허락 없이 두 번 열었던 것을 지적하면서 폭력을 유발했음을 지적하고는 사건을 축소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이면 학기말 운동회와 크리스마스 행사하고 그다음 주면 겨울 방학이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한국 대사관에도 전화를 해서 상담을 했다.
두 번의 무료 변호사 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경찰에게는 이러이러한 사건이 생겼는데 학교 측의 진행을 봐가면서 필요하면 다시 도움을 청하겠다.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학교 측에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 사건으로 우리는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비해서 학교 측은 문제 해결 진행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경찰과 대사관, 학부모 대표에게도 이번 사건을 알렸다. 학교 측의 분명한 해결책을 원한다. 폭력행위로 학교를 옮긴 아이가 있다는 말도 들었다. 교칙에는 이런 일에 대한 어떤 조항이 있는지 교칙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그리고는 월요일 오전 양쪽 학부모와 학교 측 미팅약속을 잡아달라고 강력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 주말까지 딸의 장기 출장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후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힘들어 보였다. 이 일로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주목을 받고 교장과 상담선생님이 불러 그 사건을 자꾸 확인하니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ㅡ작은 폭력을 당했을 때 조금 비명 지르다 넘어가면 큰 폭력을 당해도 할 말없게 된단다. 이런 폭력성이 있는 사람들은
흥! 별것도 아니잖아!
하면서 앞으로 널 더 만만하게 볼 거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폭력성이 병균처럼 전염되겠지. 그러다 보면 너희 학교에 폭력 아이들이 많아지게 되고.
지금 하는 우리의 행동이 너희 학교와 세상을 좀 더 평화롭게 할 수도 있을 거야.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 그리고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존중해 주겠니?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가 사과를 해야 하고 엘사는 전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아이도 다시는 폭력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지
지금 할머니, 엄마, 선생님 다 네 편이야. 가족으로서 어른이 아이를 잘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해. 너도 자라서 네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하면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겠니?
아이의 표정에 어떤 결심이 어린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