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교 공부
영국 학교에서는 만 5세가 1학년이다.
그래서 5살 된 손자는 1학년, 7살 된 손녀는 3학년이 되었다. 이곳 학교 교장과 중국 가기 전 화상으로 입학 상담도 했고 아이들과 아기 엄마도 인터뷰를 하고 입학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겨우 한글 떼고 온 아이는 number bond라는 덧 셈 과정을 시작했다. 한국 유치원에서 겨우 1부터 10까지 쓰는 연습 을 하고 온 아이였다.
10
/\
7+[]
이런 식이었다.
이 문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질문이 긴 영어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아이는 먼저 기가 죽어 버렸다.
큰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애들에게 말해 주었다.
영어 글자 몰라도 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문제만 보면 뭘 하라는 건지 눈치챌 수 있으니 겁내지 말라고.
10은 뚱보야.
7이 10과 공평하게 싸우려면 누가 도와줘야 할까?
7이 잉잉 울고 있네.
하면서 숫자판에서 숫자를 가져와서 고르라고 했다.
아이는 쉽게 3을 골랐고.
7아. 내가 도와줄게. 울지 마. 하고 3이 도와주러 왔구나. 숫자들은 참 착하다. 정정당당하게 싸우려고 하는구나.
그럼 이제 숫자들은 싸울 필요가 없게 되었네. 힘이 똑같으니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되었어.
숫자들이 너한테 “고마워”하네
해줬다.
그다음부터는 이 게임을 좋아했고. 당연히 자신감도 상승했다.
한국 있을 때 10칸 공책을 사서 1부터 1000까지의 숫자를 계속 쓰게 했는데 유치원에서 배우지 않았더라도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수의 크기를 파악했는지 큰 수에 대한 감각은 벌써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한 페이지에 단어 두세 개가 있는 그림책을 가져왔기에 단어를 종이에 쓴 후 잘라서 섞어 놓고 찾기 놀이를 했다. 성공하면 단어 보물 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며칠 있다 좀 더 모이면 다시 했다.
한글 연습도 해야 했기에 종이 뒤엔 한글을 썼다.
그리곤 단어 쓰기도 해야 해서 쓰고 나면 좀 있다 지워지는 펜으로 책에 있는 글자를 그대로 베끼라고 했고. 그렇게 하니 문장의 첫 글자는 대문자, 콤마, 물음표 쓰는 것들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집 여기저기 단어와 문장을 붙여 놓았고. 제사상에 깔 만한 하얀 종이를 사서 벽면에 붙여 두고 그 위에 학교 숙제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을 붙였다.
그리곤 주변에서 보이는 물건들과 지금 배우는 과정에 나오는 것들을 영어로 반복해서 말해보기 했다. 물어보기보다는 내가 먼저 조금 틀리게 말하고 “잘 모르겠네. 할머니가 맞게 말한 거야? “ 하면 아이들은 재밌어하면서 단어를 맞추었다.
3학년 큰 아이는 만만치 않았다.
수학은 곱셈이 쏟아졌고 두 자릿수, 세 자릿수 덧셈을 해야 했다. 문장식 덧셈과 곱셈은 아이를 질리게 했다.
영어 수업은 동화책을 읽고 형용사, 부사, 동사 시제 변화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재 구성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지리 수업은 광저우의 기후와 관련해서 열대기후를 알아보고, 적도, 위도, 경도, 경도에 따른 시차, 본초좌오선 같은 내용이 쏟아졌다. 그것도 교과서나 프린트 물은 전혀 없다. 숙제는 1주일에 몇 장 정도 홈 러닝 노트에 프린트해서 붙여 보내는데 목요일까지 제출하면 되었다.
우선 급한 대로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이들이 학교 간 후 유튜브 초등 수학을 찾아 내가 공부를 했다. 두 자릿수 덧셈, 세 자릿수 덧셈을 일자리수부터가 아닌 십 자리주터 더해서 계산을 빨리 하는 방법을 배웠다. 곱셈을 가르치기 위해 열 칸 공책에 숫자를 쓴 후 2칸씩 잘랐다. 자른 숫자를 흩어놓고는 2칸짜리 1개면 2. 두 개는 4. 3개는 6 되는 것을 아이는 쉽게 이해했고, 0단부터 10단까지 자기만의 곱셈식을 만들게 했다. 그다음 엔 열 칸짜리 공책 맨 앞 칸엔 x를 쓰고 가로 세로에 1부터 9까지 써 놓고 칸을 채우도록 했다. 벽에도 당연히 붙여 두고 식탁 위에도 두었다.
그리고는 오며 가며 툭 툭 6.7? 9.8? 3.6? 물어보면 처음엔 답을 찾아보던 아이가 곱셈을 다 익혔다.
이만 하면 되었다 여겨지기 까지도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학교에서 하라고 하는 TT rock star라는 앱은 몇 초만에 답을 맞히지 못하면 화면이 넘어가 버려서 곱셈을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우리 아이에겐 너무 빨랐다. 게다가 어떤 곱셈은 두 자릿수 곱셈도 있었다. 매일 20분씩 하라고 해서 하긴 해도 모르면 패스하고 20분은 채우자고 했다.
숙제는 반드시 해 가야 한다는 게 나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숙제를 안 해 간다는 것은 선생님 말을 무시 하는 것이고 자기를 무시하는 학생을 선생님이 좋아할 리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오바오에서 수학 관련 교재를 찾아보니 싸고 좋은 교재가 너무 많았다. 몇 권 사서 부담감을 줄여 주기 위해 한 장씩 찢어서 하도록 했다. 어차피 모든 문제를 풀게 할 생각도 없었다.
덧셈과 곱셈에 자신이 붙게 되니 아이는 수학을 재미있어했다.
아이들도 학교 공부를 따라가려면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영어는 학교에서 수업한 내용을 교사가 학교 앱에 올려 주기 때문에 교재는 없어도 알 수는 있다. The Tunnel 이 올라왔길래 유투버에 찾아보니 오디오까지 있었다. 스크립트까지 있어서 노트에 보고 적어 책을 만들었다. 다 쓴 후 소리와 맞춰 보니 잘못된 단어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스크립터는 정말 도움 되었다. 스크립트가 없었다면 몇 번이나 다시 듣기 하면서 받아 적어야 해야 했을 것이고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책으로 만든 노트에 포스트잇 메모지를 단어 사이즈에 맞게 잘라 붙여 단어를 써 보게 하고 들 치면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해서 단어를 악하도록 했다.
이 과정도 늘 하던 대로 단어 카드를 만들어 바닥에 흩트려 놓고 찾게 했고 문장도 만들어 잘라서 말이 통하도록 이어 붙이기를 했고.
앉아서 읽고 쓰는 과정 보다 이런 활동을 아이들은 즐겼다. 그리고 제대로 맞춘 문장과 단어는 단어 보물 상자에 넣어 두게 했고.
성취감으로 뿌듯해하면서 아이들은 단어 보물상자를 꺼내어 자주 읽어 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할 거라는 안내가 오면 유튜브에서 관련 단어를 찾아서 수업 전에 그 용어를 알고 가게 했다.
그런 과정에서 도대체 뭔 말을 하는지
모르고 수업 내내 답답하게 학교에서 있다가 돌아오던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 서, 남, 북 도 제대로 모르는 7살 큰 아이에게 북극, 남극, 적도, 열대, 아열대라는 용어를 영어로 가르쳐야 할 일이 고민되었다.
마침 모닝 빵이 있어서 두 개를 아래위로 붙이고 나무젓가락을 살짝 기울여 남극과 북극을 관통하여 찔러 23.5도 기울어진 지구 모양으로 만들었다. 빵 두 개 사이 가운데를 equator, 검정 실로 가로 선을 감아 두고 latitude, 빨간색 실을 세로로 감아서 longitude라고 일러주고는 영국 런던이 지나는 곳이 longitude 0도가 시작되는 prime meridian으로 표시하고 이쑤시개에 깃발을 붙여 빵에 붙였다. 아이는 함께 만든 작품을 재밌어했고 긴 단어를 놀랍게 잘 외웠다.
학교 졸업 한지도 까마득한 내가 이런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몰라서 이런 용어와 교과 내용을 유튜브를 보고 공부한 것이다.
가르치는 방법은 나의 아이디어였지만.
이제 아이는 수업 시간에 손도 자주 들고 발표도 하는 모양이었다. 영어가 모국어 이든 ,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아이들이라도 이런 새로운 내용은 어렵긴 마찬 가지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아이와 시제에 따라 규칙적으로, 또는 불규칙적으로 달라지는 동사도 공부했다. 규칙동사는 쉽지만 불규칙 동사를 외우기는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설명이 “불규칙 동사는 장난꾸러기야. 변신하는 걸 좋아해. 어떻게 변신할지 알 수 없어. 하지만. 우리에겐 안 통하지. 내가 써서 흩어 놓아 볼게. 누가 변신한 건지 찾아 버리자” 했더니 아이는 재밌어하며 쉽게 익혔다. 그리고 꾸미기 좋아하는 형용사도 익혔고 부사도 명사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중고 책 사이트에서 어린이용 national geographic science book을 사서 쉬운 단계별로 읽었고, 아이들이 이미 네플릭스에서 친숙하게 보았던 The Magic School Bus 책도 사서 조금씩 읽었다.
학교 숙제는 주제만 주고 집에서 창의적으로 해서 가져가거나 앱에 올리는 것들인데 나는 아이의 수업 참여도도 높이고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화산 관련 수업을 할 때는 유튜브에서 화산에 관한 내용을 보고 아이에게 보여 줄 만한 것을 선택해 두었다.
우리말로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야 영어로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장의 수업을 따라가야 해서 우리에겐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화산재를 표현하기 위해 바닥에 물 풀을 뿌린 후 김을 구워 부숴서 뿌렸다. 사각판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돌멩이는 화성암 들이다. 자세히 보면 화산 아래에 아이가 직접 만든 사람들, 동물들, 생활 집기들이 화산재에 묻혀 있다.)
아이들은 오전 7시 10분에 스쿨버스를 타서 학교에 가면 오후 3시 30분 혹은 4시 30분에 집에 도착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멍하니 있다가 돌아올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팠던 것이다. 그러다 학교 안 가겠다고 고집 피우면 대책이 없겠다는 걱정이 늘 들었다.
내 발음이 비록 좋지 않더라도 사전을 찾아가며 영어로 말하려고 애썼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하고 있다 싶을 때는 과할 정도로 칭찬했고.
영어 듣기를 위해 교과 관련 유튜브를 찾아 식사할 때나 놀 때도 들려주었다. 재생 속도는 좀 느리게 0.75로 하다가 며칠 지나면 보통 속도 1로 들려주었다. 교재를 살 수 있으면 샀고, 구할 수 없으면 유튜브 화면 아래 스크립터의 도움으로 내가 직접 써서 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거나 들을 때 이해를 못 할 때 짚어 줄 수도 있으니까.
자신감 도 키울 겸 집중력도 키우기 위해 짧은 책이라도 한 권 끝까지 읽고 난 뒤엔 마루 끝 커튼 친 곳까지 가서 큰 소리로 느낌을 살려 마치 무대에 서서 하는 것처럼 책을 읽도록 했고 동영상도 찍어 가족 대화방에 올렸다. 한 권씩 해 낼 때마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훌쩍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1학기가 끝날 즈음 12월 말쯤에 학교 상담이 있었다. 처음 왔을 때 영어 한 마디도 못 해서 스트레스가 쌓여 소리 지르고 울어 대던 우리 아이를 잘 기억하는 담임은 많이 향상되었다며 놀라워했다. 발표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다고 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영어권 사람 들은 칭찬이 과하다.
곧이곧대로 들을 건 아니지만 인정할만한 칭찬이었다.
아직 남아 있는 지리와 역사를 가르친 이야기도 꺼내 놓으면 무궁 무진 하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