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만 8세인 손녀는 4학년, 만 6세 손자는 2학년이 되었다.
같은 반인 P라는 중국인 아이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유치원부터 국제 학교를 다녀선지 영어도 잘했고 6학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키가 컸다.
이야기를 해보니 예쁘게 잘 큰 똑똑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가 그 애를 좋아했고 나와 딸도 좋은 친구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새 학년 시작 되고 3주쯤 지났을 것이다. 학교에 다녀온 손녀가 샤워를 하면서 L이라는 아이에게 맞아서 온몸이 아프다며 울먹 거렸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스쿨버스에서 L과 같이 앉게 되어 옆에 앉아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L이 시끄럽다며 온몸을 때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녀의 얼굴은 억울함과 분함으로 가득했다. 순간 피가 솟구칠 정도로 화가 났다.
이렇게 여리고 소중한 내 손녀를 때리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저녁에 퇴근한 딸에게도 말해서 학교 차량 담당 교사에게 메일을 보냈고 차량 도우미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고.
우리 아이와 때린 아이를 같은 자리에 다시는 앉히지 말라고.
다음날 아침, 등교 버스 타는 곳에서 L의 엄마와 아빠가 나를 찾았다. 학교에서 전화를 했더라고 했다. 분에 못 이겨 얼굴 근육까지 떨면서 말했다. 그동안 P와 우리 손녀가 자기 딸의 머리를 잡아당겨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 손녀는 하지 않았는데 P는 재밌다면서 계속 당기거나 때렸고 우리 손녀에게도 그 아이를 괴롭히라고 시켜서 아이가 학교 버스 타기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절대 내 아이가 그럴 아이가 아니지 하는 눈먼 사랑으로 잘 알아볼 생각도 않고 아이의 말만 듣고 경솔한 행동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에게 L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말하고 캐물었더니 P와 손녀가 그동안 뒷자리에 앉아서 아이를 계속 괴롭혔고 문제가 생겼던 날에는 마침 손녀와 L이 같이 앉게 되어 이 때다 하고 우리 손녀를 실컷 때렸던 것이었다. 그 둘의 덩치는 비슷하니까 L도 싸울 만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손녀도 덩치 큰 P를 믿고 L을 괴롭혔다고 했다. 하기 싫다고 하면 P가 화를 내면서 자꾸 시킨다고도 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와 같은 관계 같았다.
자기를 둘러싼 온 세상은 이렇게 해라, 저래서는 안 된다, 하는 통제와 지시뿐인 저 나이의 세계에 누군가가 든든히 지켜 주고 있다는 확신으로 금지된 장난을 할 수 있었던 그 일탈의 맛은 얼마나 달콤했을까?
작든 크든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그것은 폭력이야.
내가 재미있으려고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건 너무나 옳지 못하지.
그리고는 학폭으로 보도되었던 연예인들과 운동선수들을 찾아서 보여 주었다. 마침 배우 안 세하의 학폭 의혹이 있던 때라 그 뉴스도 보여 주었다.
지난해 딸의 학폭으로 직장까지 그만두게 된 대통령 의전비서관에 대한 뉴스도 보여 줬다. 마침 그날 저녁 손녀가 공부한 내용이 ㅡ안네 프랑크의 일기 ㅡ여서 인간을 미워하는 마음이 인종 대량 학살이라는 폭력까지 이르게 된 나치 히틀러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손녀는 유대인들이 불쌍하다며 훌쩍였다.
비로소 자기에게 괴롭힘 당한 아이의 입장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았다.
옳지 못한 일을 친구가 시키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면 거절해야 한다.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들어야 유지되는 관계는 친구가 아니라 노예야.
너를 노예로 여기는 아이라면 친구 할 필요가 없지. 스스로 P와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 힘들면 할머니에게 이야기해 줘.
우리 같이 생각을 해보면 좋은 해결책이 나올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아주 힘들어 보였다.
P의 눈은 나를 피하고 있었다. 죄책감과 비난이 섞인 표정이었다.
L의 엄마가 P의 할머니에게도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는데 P는 이 모든 게 우리 손녀가 고자질해서 생긴 일이라 여기고 손녀에게 화를 많이 냈던 모양이었다. P의 엄마와도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이들 문제에 내가 개입할 때는 아니라고 여겼다.
중국인 엄마와 의사소통이 잘 될 리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들도 정글과 같은 그들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요령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 아이들이라 의사소통도 충분했다고도 할 수 없었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
우선 반성문을 쓰도록 했다. 글쓰기를 싫어하더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아이들은 군말 없이 글을 잘 쓴다. 반성문 쓰기를 빌미 삼아 글쓰기도 가르칠 수가 있어서 내 딸들도 반성문 쓰면서 글쓰기가 늘었을 정도다.
영어공부를 주로 하다 보니 한글 쓰기는 영어보다 더 어려워했다. 그래도 기가 죽어 열심히 쓰기는 했다.
손녀의 반성한다는 표현이 너무 귀여워 웃음을 참아야 했다.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24색 형광 펜과 함께 사과의 편지를 써서 L에게 주도록 했다.
P에게는 손녀가 쓴 것처럼 해서 내가 영어로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베껴 쓰도록 했다.
P안녕
네가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말하고 싶어. 내가 L을 때렸다고 우리 할머니와 L의 엄마에게 말했어.
나는 너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았어.
자기 엄마에게 나와 네가 함께 자기를 때렸다고 말한 사람은 L이야.
L의 엄마가 우리 할머니에게 우리가 한 일을 다 말하셨어.
그리고 L 엄마는 모든 것을 용서하겠으니 앞으로 서로 존중하고 잘 지내기 바란다고 했어.
나도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어.
나는 네가 내 친구라서 참 좋아.
하지만 폭력적인 행동은 하지 말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J가
그리고는 버스와 학교 여기저기에 cctv가 숨겨져 있고 모든 차에도 블랙박스가 있어서 카메라가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니 세상에 몰래 저지를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부풀려 겁을 좀 주었고 P에게도 말하라고 하면서
L의 엄마, 아빠가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너희들은 이번에 운이 너무 좋았다고도 했다.
할머니가 거짓말을 좀 했더라고 나중 자라서 우리 손녀가 후회할 일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면 나는 그 비난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다음 날
하교 버스에서 내린 손녀의 표정이 한결 밝았다.
다행이었다.
그 사건 이후 세 명의 아이들 다 사이가 전보다 좋아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산 넘어 또 산-임을 잘 안다.
또 산이 나오겠지.
아무리 높고 거친 산이라도 나무도 잘 보고숲도 잘 보면 산을 넘어갈 길을 찾을 수 있겠지.
사실 이런 일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 누구에게나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꼼꼼하게 아이를 챙기고 있으니 나와는 상관없겠지 하던 문제 한 가지가 잘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