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관련한 엉뚱한 비례관계

행복론

by 납작콩

벼가 많이도 자랐다.


오랜만에 아침 산책을 했다. 아침인데도 바깥 기온은 높았다. 늘 걸었던 아파트 주변 산책이 아니라, 오늘은 길을 건너 논밭 주변을 걸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할 길은 없었다.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는 평평한 논밭길이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요즈음 불볕더위 속에서 실내에 있거나 차만 타고 다니다가, 바깥공기의 뜨거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얕보았던 게다. 햇빛을 가려줄 모자도 · 갈증을 가셔 줄 물도 없이 나와서 산책을 했다니.


원래 예상했던 산책 경로를 반으로 줄여서 걸었다.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땀을 겨우 참아내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식탁에 올려져 있는 물을 따라서 마셨다.


더위를 참아낼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얼음을 꺼내 컵에 담았을 것이다. ‘댕그랑, 댕그랑’ 그러고는 냉장고 안의 생수를 꺼내 컵에 부었을 것이다. 물이 얼음 사이로 스며들며 얼음을 녹이는 것을 감상도 하고 천천히 시원한 물을 음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무더위 속에서 그럴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물 한잔이면 충분했다.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공부는 못해도 되니 학교에 잘 다녀 주기만 하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바랬던 것처럼.


한국에서의 적응 과정을 너무도 힘들게 거쳐왔다. 딸은. 6학년 2학기부터 중학교에 다니는 기간 내내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딸아이의 고통스러운 적응기를 지켜보면서 나의 세계관은 몇 번은 재구성되었다. 그 재구성된 세계관은 지난해까지 학교에서의 근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학교에 매일매일 와서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기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는 딴생각하며 집중하지 못하더라도 해맑은 아이들이 예뻐 보였다. 말없이 구석에서 책만 읽으며 학교에서 일과를 보내는 아이의 상처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조회와 종례 시간에는 모두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안부부터 묻게 되었다.


잠시 그 아이들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들 살아내고 있겠지.


나의 삶 속에 고통이 깊어지면서 일상 속에서의 당연함이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나의 삶 속에 아픔이 커지면서 주변의 아픈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크기도 커졌다.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에 어떤 예상치 못한 고통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고통과 아픔이 내 안에서 지어낼 감사함과 포용력의 크기를 기대하며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