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공부

행복론

by 납작콩

아파트 입구에 작은 종처럼 매달린 꽃을 찍었다. 이름은 비비추란다.

인터넷을 통해 꽃 이름을 알고, 책에서 또 찾아보았다.

‘살아있는 동안 꼭 봐야 할 우리 꽃 100’에서 권혁재는 비비추가 우리 토종 꽃이라고 소개한다. 이 책에 의하면, ‘잎이 비비 꼬여서 나서 비비이고, 취나물을 의미하는 ’취‘가 ’ 추‘로 바뀌어 비비추’란다. 비비추는 나름의 관련 전설도 있었고 좋은 꽃말도 지니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를 거의 매일같이 지나다녔을 텐데 오늘에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참 모르는 게 많다. 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깨닫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아주 조금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쌓아온 나만의 우물 안에서, 내가 형성해온 지식과 관점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게 마치 진리인 양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고 판단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며칠 전에는 동네 책방을 방문했다. 책방 옆 공터에 주차하고 책방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길목 왼쪽에는 두툼하고 촘촘하게 초록 풀들이 제법 크게 자라 있었다. 빈틈없는 초록 위에 누워도 될 만큼, 풀들이 포근해 보여서 ‘아, 예쁘다.’라는 말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는 그 초록 잎들의 이름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풀’이라고 하며 감상하고 있는 나 자신의 무지함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 존재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내 게으름의 소치이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해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각각 타고 태어난 대로 그 본질을 충분히 표현하고 실현하며 아름다움을 뿜 뿜 뿜어내고 있었다.


대형 서점과 동네 작은 책방은 각각의 장점이 있다. 대형 서점은 다양한 분야의 베스트셀러 도서들을 구매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한편, 동네 책방은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있다.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일반적인’ 또는 ‘정상적인’ 생각들에 나 스스로가 지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었는데 무슨 꿈이야.’ ‘중년에는 이렇게 살아야지.’ ‘이러이러해야지 성공한 삶이지.’ ‘수입은 어느 정도 되어야지.’ ‘노후에는 이 정도의 연금을 받아야지.’ ‘자녀들은 이 정도가 되어야 자랑할만하지.’를 비롯한 많은 ‘정상적 삶’에 대한 정의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준들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에 버거움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럴 때면 난 동네 책방을 간다. 물론 대형 서점에도 찾는다면 있겠지만, 동네 책방에서는 쉽게 손이 잡히는 적지 않은 책들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곤 한다.


그날도 동네 책방에서 여러 책을 보았다. 어느 작가는 퇴직한 이후에 글쓰기를 하기 위한 글감을 찾기 위해 혼자 임진강 평화 누리길을 걸었단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역사 이야기를 적고 손으로 그린 그림을 함께 엮어 책을 냈다. 어느 작가는 핸드폰으로 계절별로 피는 들꽃들을 찍어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썼다. 어느 작가는 우리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허브에 관한 미국 허벌리스트의 책을 번역했다. 이 책 저책 보다가, 책방 앞에서 초록 풀들의 이름을 몰랐던 나의 무지가 떠올라서 한 권의 책을 골랐다. 그 책을 읽고 오늘 아침에 우연히 만나게 된 비비추에 대하여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주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생명체들인데도 무심코 지나쳤던 그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오늘도 아침에 깨어서 책을 펴 들고 들꽃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읽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사실, 이번 주 토요일에 대학원 졸업에 필요한 영어시험이 있는데, 그 공부는 하지 않고 꽃 이름을 열심히 되뇌고 있다. 참……. 이래도 되는지. 내일은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