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들의 합창소리

행복론

by 납작콩

우리 집에 매미가 찾아왔다.

반나절을 저러고 있었다. 발을 모기장에 걸치고.


아침잠을 덜 깬 상태에서 창문을 열기 위해 부엌 쪽 베란다로 갔다.

“어, 매미가 있네.”

요즈음 한참 자신의 소리를 뽐내는 바람에 소리로 이미 만나고 있었던 친구다. 문을 열려고 했던 것을 미루고 다시 방으로 가서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날아가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있다. 아래에서 한번, 위에서 한번, 옆에서 한번, 사선으로 한번…… 마치 모델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처럼 이 친구가 어떻게 하면 돋보일지를 고민하며 여러 번 찍었다. 하지만, 이리 찍고 저리 찍어도 모기장을 사이에 둔 관계로 결국은 그리 좋은 모습을 연출해내지는 못했다.


반나절이 지나자 그대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매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

그리고는 인터넷에 ‘창문에 매미가’로 검색을 해 보았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많았다.

‘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살아있음과 죽었음의 비율을 반반으로 갖게 되었다.

그러고는 다시 몇 번의 사진을 찍고, 매미가 있는 모기장 옆을 툭 쳐 보았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명랑한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살아있으니 다행이었으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는 매미에게 어찌나 서운하던지.

모기장 위의 매미를 만난 후 며칠이 지났다.


여느 때와 같이 나만의 공간인 베란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앞의 창문을 열고 조금씩 들어오는 바깥공기를 맡으며 컴퓨터를 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여기에 앉아야만 글이 써진다. 그냥 글감을 메모해놓으려고 컴퓨터를 열었는데 꽤 긴 문장이 써진다. ‘역시, 이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야.’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매미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언어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짜~, 차~ ‘아니야 이렇게 세지는 않아.’ 그럼 샤~ ‘이렇게 약하지도 않아.’

들리는 그대로 언어로 옮겨보고자 하나, 잘 안된다. 1대 1 대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들리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초라해진다.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합창했던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합창할 때는 지휘자의 지휘봉과 손을 집중해서 본다.

특별히, 노래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잘 맞추기만 해도 반 이상은 하게 된다고 생각하곤 했다. 혹시라도 그 시작과 끝을 맞추지 못하고 혼자만 빗나간 소리를 내게 되면 합창단원들의 원망 어린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시작과 끝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 지키려고 노력하곤 했다.


이런 나에 비하면, 매미들은 합창의 전문가인듯하다.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를 표현하듯, 선창 하는 한 놈을 따라 모두가 한꺼번에 소리를 합치고 점점 줄어든다. 뚝 끊어지는 소리의 마감이 깔끔하다.

모든 음마다 붙은 테누토를 표현하듯, 이번에는 모두가 같이 소리를 내기 시작해 일정한 크기로 끝까지 끌고 간다. 호흡을 길게 들이마신 후 중간에 쉼 없이 정해진 음을 노래한다.

스타카토처럼, 몇 놈이 삣, 삣, 삣, 삣, 그 뒤에 한 그룹이 삐~~~ 그리고 모든 매미가 다 같이 차~~~ 한다.

매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으레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다.

시골 논두렁 옆에 볼록 튀어나온 흙길을 걸으며 흥얼거리던 것이 기억나고, 수박 넝쿨이 우거진 곳 한가운데 있는 평상에서 수박을 잘라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나와 함께 하는 어렸을 적 기억의 조각일 것이다. 그 기억의 기대고 매미 소리에 좀 더 심취하다 보면 그때 내가 느꼈던 행복이 마음에 스며든다.


내 무릎 위에서는 반려견이 배를 바짝 대고 누워서 편안히 잔다. 자기 이불 밑에 숨거나 어느 구석진 곳에 숨기 좋아하는 그 아이. 맘껏 숨어있으라고 그 아이를 배 쪽으로 밀고 나머지 무릎 위에 컴퓨터를 올리고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매미 소리와 장면들도 나중에 연상될 내 추억으로 간직되겠지.